[김윤의 퍼스펙티브] 의대 정원 확대, 잘못된 의료제도 개편과 병행해야
부족한 의사, 얼마나 어떻게 늘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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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병원·동네의원 합쳐 2050년에 의사 6만5500명 부족
중장기적 공급난 해소하려면 의대 정원 4500명 확대해야
필수의료 대책 없이 정원만 늘려선 의료취약지 해결 못해
실손보험 이용한 과잉진료 줄이고 의료 생태계 바꿔나가길
」
의대 증원과 함께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 진료 대란을 해결하고, 지방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기존의 잘못된 의료제도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도 함께 밝혀야 한다. 필수의료를 전공하는 의사가 늘어나도록 의료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의대 증원은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지금 의대 정원을 크게 늘려도 전문의 배출이 늘어나기까지는 10년 넘는 시간이 걸리니 당장 효과를 낼 대책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로잡을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근거를 제시하면서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하고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하게 만들 대책을 내놓기를 기대하면서, 의사를 얼마나 어떻게 늘려야 하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여섯 명 중 한 명, 필수의료 취약지 거주
전국 226개 시·군·구를 응급·심뇌혈관·분만 진료 같은 필수의료를 1시간 이내에 이용하는 의료생활권으로 묶으면 모두 55개 중진료권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이들 중 절반 가까운 25개 중진료권은 심장병·뇌졸중 같은 응급환자의 절반 이상이 다른 지역에 가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필수의료 취약지’였다. 우리 국민 여섯 명 중 한 명이 필수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지역에 살고 있다. 전체 입원환자 중 자기 지역 병원에서 치료받는 비율인 ‘자체충족률’이 60% 이하인 중진료권도 24개에 달했다. 강원도 속초와 동해처럼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뿐만 아니라 수도권의 이천·여주·시흥에도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 아예 없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중등증 입원환자의 네 명 중 세 명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필수의료의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큰 종합병원을 늘리면서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보는 의사를 함께 늘려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대도시 수준의 필수의료를 보장하려면 종합병원 의사가 1만2500명 더 있어야 한다. 이렇게 종합병원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취약지의 응급환자와 입원환자 사망률을 15~30% 낮출 수 있다.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진료하는 동네 의원도 부족하다. 동네 의원이 많은 대도시 소진료권의 인구당 의사 수는 군 지역과 비교해 일곱 배 많았다. 만성질환을 잘 관리해 합병증 발생을 예방하고 사망률을 낮추려면 인구 1만명당 동네 의원 의사 수가 최소 10.7명은 있어야 하는데 이 수준에 도달하려면 동네 의원 의사가 2만2000명 더 있어야 한다. 이렇게 동네 의원을 늘리면 매년 사망자를 2만명, 건강보험 진료비를 약 6조원 줄일 수 있다.
큰 종합병원과 동네 의원에 부족한 의사 수를 합하면 3만2500명에 달한다. 지금보다 의사 수가 적어도 1.3배는 되어야 우리 국민이 어디에 살든지 간에 필수의료는 차별 없이 보장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도시에서 시골로 ‘의료 낙수효과’ 미미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서울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2050년에 부족한 의사 수는 최소 2만5000명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수요 추계는 지금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가정하였기 때문에 미래 의사 수요를 과소 추계한 것이다. 지금 당장 의사가 30%가량 부족한 것을 고려하면 2050년 부족한 의사 수는 3만3000명이 돼야 맞다.
지금 당장 부족한 의사 수와 2050년에 부족한 의사 수를 합하면 약 6만5500명이 된다.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려 2035년부터 전문의 배출이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의대 정원을 약 4500명 늘려야 2050년까지 부족한 의사를 충원할 수 있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서 잘못된 의료제도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의료제도를 고치지 않고 의사 배출만 늘리면 의사가 부족한 곳에 의사가 늘어나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5~2019년 사이 대도시와 시골에서 의사가 얼마나 늘었는가를 살펴보면 ‘낙수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에 의사가 부족한 의료취약지는 의사가 거의 늘지 않았지만 의사가 많은 대도시 진료권의 경우 의료취약지보다 종합병원 의사는 두 배, 동네 의원 의사는 아홉 배 늘어났다.
먼저 부족한 의사를 더 부족하게 만드는 응급·중증·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의 공급 과잉을 해소해야 한다. 가뜩이나 부족한 의사가 여러 병원으로 분산되면서 24시간 365일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병원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응급·중증·소아 환자의 수요에 맞게 적절한 수의 병원만 전문센터로 지정하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의사 인력을 전문센터에 집중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부족한 의사 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병원당 환자 수가 늘면서 의료의 질도 좋아진다.
지역응급센터 세 곳 중 두 곳, 심장병 환자와 뇌졸중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은 세 곳 중 한 곳, 종합병원 세 곳 중 두 곳만 소아 전문센터로 지정하면 골든타임을 유지하면서도 의사 인력 부족을 완화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전문센터의 응급과 중증 환자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진료비를 획기적으로 올려줘도 건강보험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재정이 늘어나지도 않고,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응급·중환자 진료 전문의 확충해야
둘째,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보는 의사를 크게 늘려야 한다. 전문센터의 전문의 인력 기준을 크게 높이고 이를 충족한 병원만 높은 건강보험 진료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 가능한 일이다. 진료 분야별로 적어도 6~7명의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인력 기준을 정하면 필수의료를 선택하는 의사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높일 수 있다. 건강보험 진료비 인상분 중 일정 금액을 필수의료 분야 의사 월급으로 주도록 하면 개원의와 수입 격차도 줄일 수 있다. 새로 배출되는 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 같은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의 30~50%가 동네 의원을 개원하고 있으니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적절한 워라밸과 월급만 보장하면 필수의료 의사를 늘릴 수 있다.
셋째, 지역 병원들과 힘을 합쳐 의료취약지 필수의료를 책임지겠다는 대학병원에만 늘린 의대 정원을 배정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늘어난 의대 정원을 지렛대로 무한경쟁, 각자도생의 의료체계를 협력과 상생의 의료생태계로 바꿔나갈 수 있다. 지역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도 실력만 있으면 대학교수가 될 수 있도록 하고, 대학병원 교수들이 지역 병원에 나가서 환자를 진료하도록 하면 대학병원과 지역병원 사이에 협력하는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여기에 대학병원은 중환자를 진료하고, 지역병원은 경증환자를 진료할 때 높은 진료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의사 부족, 과잉 진료, 의료 질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동네 병·의원이 실손보험을 이용해 과잉진료를 하고, 비급여 진료비를 높게 책정해 지나치게 높은 수익을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로 인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보고 있는 의사들이 동네 병·의원으로 급격하게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 민간 의료보험처럼 가입자와 보험회사 뿐만 아니라 환자를 진료하는 병·의원도 실손보험 계약에 참여하도록 하면, 동네 병·의원의 과잉진료와 함께 비급여 진료비 가격도 관리할 수 있다. 지금처럼 동네 병·의원 개원의들이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로 수입을 계속 늘려나가면 건강보험 진료비를 아무리 올려도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의사들이 동네 병·의원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정부는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근거를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지금 당장 의사가 얼마나 부족하고, 앞으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등 의료 수요가 늘어나면서 미래에 의사가 얼마나 더 부족해질 것인가를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깜깜이 증원’을 하면, 의사협회는 이를 핑계로 더 반발할 것이고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할 수 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발표할 때 무정부적인 의료공급체계를 ‘질서 있는 의료시장’으로 개편하는 의료개혁 방안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무정부적인 의료공급체계는 그대로 둔 체 건강보험 진료비만 올려봐야 응급실 뺑뺑이, 소아 진료대란, 지방 의료 붕괴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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