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사이언스&] 5월 발족 우주항공청, 한국의 NASA 될 수 있을까

최준호 2024. 1. 2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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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과학 전문기자, 논설위원

인구 11만 소도시, 경남 사천의 숨결이 거세지고 있다. 우주항공청 특별법이 발의된 지 9개월만인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하면서부터다. 오는 5월이 되면 ‘한국판 NASA’(미 항공우주국)라 불리는 우주항공청(KASA·Korea AeroSpace Administration)이 사천에서 공식 출범한다.

지난 12일 찾은 사천시 곳곳엔 흥분의 흔적이 역력했다. 아직은 서울~사천 간 오전 오후 각 한 차례만 민항기가 오가는 한적한 소도시이지만, 공항 주변에선 오전부터 제트기 굉음이 귀를 찢었다. 국산 4.5세대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의 시험비행 소리였다. KF-21 양쪽으로 FA-50 두 대가 호위하면서 비행하느라 제트기 소음이 더 컸다. 사천공항은 민·군 겸용 공항이다. 사천시청 앞 하늘엔 ‘경축, 우주항공청 특별법 국회 통과’라고 쓴 애드벌룬이 떠 있고, 거리 곳곳에 시민단체들이 내건 축하 플래카드들이 걸려있었다.

「 우주청 품은 사천 축제 분위기
이미 국내 관련산업 절반 차지
항공산업 메카 툴루즈가 모델
민간 우주산업의 마중물 돼야

‘우주항공청 도시’ 사천의 중심 KAI

경남 사천시청에 우주항공청 특별법 통과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최준호 기자

‘우주항공청 도시’ 사천의 중심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KAI 본사 겸 공장은 사천공항 바로 옆 사남면에 둥지를 틀고 있다. 정문에 들어서니 항공기동(棟) 벽면에 KF-21 이미지를 담은 초대형 현수막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들어서니 ‘우주센터’ 건물이 나타났다. 1층 로비엔 초소형 SAR 위성, 다목적 실용 위성, 차세대 중형 위성 등이 전시돼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창문 너머로 조립동 내부가 내려다보였다. 높이 17m, 면적 2650㎡(약 800평)의 조립동엔 국토교통부, 농업진흥청·산림청, KAIST·한국천문연구원이 각각 주문한 중형 인공위성 3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외에도 KAI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주도하는 425 정찰위성도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된 한국군 최초 군사정찰위성 1호기 본체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이창한 KAI 우주사업연구실장은 “KAI는 KF-21 등 공군 전투기 제작뿐만 아니라 다목적실용위성, 정지궤도 위성 등 국가 우주개발 사업에 참여해 왔다”며 “국가 위성으로는 최초로 민간 주도로 개발 중인 차세대 중형위성의 총괄 주관 역할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KAI는 인공위성 제작뿐 아니라, 한국형발사체(KSLV-Ⅱ) 누리호의 핵심 부분인 체계 총조립과 1단 추진제 탱크 제작, 엔진 4기의 일체화 작업인 ‘클러스터링’ 등 담당해 왔다.

한국판 툴루즈 꿈꾸는 사천시

사천은 현재도 국내 우주항공산업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도시이지만, 우주항공청 유치를 계기로 행정·연구·문화 등의 분야도 보강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명실공히 우주항공 분야의 글로벌 거점 역할을 하는 ‘우주항공 복합도시’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다. 사천만을 바로 옆에 낀 용현면에는 총면적 82만6000㎡(약 25만평) 규모의 항공국가산업단지가 올 10월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단장 중이다.

사천시는 ‘한국의 툴루즈’를 꿈꾼다. 프랑스 남부의 툴루즈는 항공기 제작업체인 에어버스를 시작으로 현재 1200개 우주항공기업이 있는 항공 산업의 메카이며 우주 산업의 중심지로 평가받는 도시다. 윤현찬 사천시 우주항공청설치TF팀장은 “우리 롤모델이 바로 툴루즈”라고 말했다.

정부가 사천을 우주항공청 도시로 정한 것은 사천의 산업적 입지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사천 동쪽 창원시에는 누리호 로켓엔진을 조립·생산하고, 누리호 고도화사업의 체계종합을 맡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자리 잡고 있다. 사천 서쪽으로는 나로우주센터를 품고 있는 전남 고흥이 있다. 정부는 2022년 말 민간 주도 우주산업 육성을 위한 성장 거점 지역으로, 연구·개발(R&D) 기능을 담당하는 대전과 함께 경남과 전남을 우주산업 클러스터로 지정한 바 있다.

우주항공청은 한국판 NASA가, 사천시는 한국판 툴루즈가 될 수 있을까. 정부는 우주항공청을 통해 혁신 우주항공 기업을 2000개 이상 육성하고, 우주항공 산업 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해 세계 시장 점유율 10%(420조원 규모)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이를 통해 2045년 세계 5대 우주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기대만큼 한계도 많은 우주항공청

우주항공청은 기대만큼이나 한계도 많이 지적되고 있다. 우주항공청 특별법과 함께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대통령으로 승격하는 우주개발진흥법이 통과되긴 했지만, 우주항공청 자체는 차관급이 이끄는 과기정통부 산하 청(廳) 단위 조직이라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당장 조직과 예산만 하더라도 과기정통부와 일부 산하기관, 산업통상자원부의 우주항공 분야를 이관하는 데 그친다. 항공 정책과 규제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의 기능도 애초에는 포함됐지만 결국 제외됐다. 우주항공청의 연구·개발(R&D) 기능을 위해 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을 산하 기구로 개편한 것도 논란이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주항공 분야 R&D는 항공우주연구원과 천문연구원을 넘어 과학기술 관련 전 출연연구소에 걸쳐 있다”며 “향후 KIST나 지질자원연구원 등 다른 출연연들과도 우주 관련 연구 협업을 할 수 있도록 조직과 체계를 세밀하게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인수 NASA 제트추진연구소 우주방사선 연구센터장은 “미국 NASA도 1958년 설립 직후부터 존재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며 우주항공청에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주문한다. 그는 “우주항공청은 민간 중심의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를 이끌면서도 정부 주도의 우주 탐사 기능을 균형 있게 수행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 전문기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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