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대만의 재발견” 2024 선거 취재기
“총통부 앞의 이 길은 ‘카이다거란 대도’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제서우루(介壽路·개수로)’라 불리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앞서 살았던 원주민의 명칭을 기념해 ‘카이다거란 대도’라고 합니다. 이곳은 대만의 민주주의 발전 여정에서 가장 의미 있는 길입니다. 권위주의에 대항한 수많은 민주화 운동이 모두 여기에서 일어났습니다.”
대만 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11일 밤 타이베이 총통부 앞 거리. 민진당 유세의 마지막 연사 라이칭더(賴清德)는 대만의 민주주의와 세계화를 역설했다. 이때 20만 인파 사이에서 아버지의 목말을 탄 대여섯살 된 꼬마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았다. 성숙한 대만 선거 민주주의의 미래가 그의 눈망울에 담겨있었다.
13일 선거 당일에는 정오쯤부터 중앙선거위원회를 찾았다. 사전 등록한 외신 취재증을 보여주니 18층 투개표 상황실로 안내했다. 초로의 직원은 상황실을 찾아온 첫 번째 외국 기자라며 반갑게 맞았다. 고시 출신이라는 중선위 직원은 철저한 중립을 자부했다. 손 개표를 고집하는 이유를 물었다. “정권교체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만 민주주의의 비결”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자개표보다 시간 소요도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개표 현황이 업데이트되는 동안 외국 선거 참관단을 네다섯 팀 보았다. 중화권에서 유일무이한 선거 민주주의를 세계와 공유하고 있었다.
출장을 앞두고 민진·국민·민중 3당에 취재 편의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1분. 메일 발송부터 민진당 관계자의 메신저 친구신청까지 걸린 시간이다. 국민당은 이틀 뒤 회신했다. 1인 정당 민중당은 답이 없었다.
선거 운동도 인상적이었다. 유세 플래카드는 없었다. 벽보도 없었다. 현지의 지인은 유세 공해에 선거 사무실에만 사진 게재를 허용하고 벽보는 관공서 게시판에만 허용한 전후 사정을 들려줬다. 청정 선거운동이었다.
당국의 취재 편의는 개표 참관에서 끝나지 않았다. 14일 전문가 분석 자리도 마련했다. “민진당은 섬 내 주류 민의를 대표할 수 없다”는 베이징의 첫 반응을 딩수판 정치대 동아시아연구소 명예교수는 “주류가 아닌데 상대하겠나. 4년 후를 기다리겠다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타이베이에서 만난 또 다른 교수의 조언이 의미심장했다. “대만의 정보 당국은 외부의 선거 개입과 탐지 및 대처에서 최신 경험을 보유했다”며 “올해 선거를 치러야 할 세계 60개 민주주의 국가, 42억 명에 꼭 필요한 노하우”라고 했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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