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100주기 “방부처리 시신, 이제 어머니 옆에 매장하자” 제안
옛 소련 초대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 사망 100주년에 방부처리된 그의 시신을 매장하자는 제안이 나와 논란이다.
러시아 자유민주당(LDPR) 대표이자 하원 국제문제위원장인 레오니트 슬루츠키 하원(국가두마) 의원은 21일(현지시간)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레닌의 시신을 땅에 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4년 1월 21일 사망한 레닌의 시신은 방부 처리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있는 영묘 유리관에 안치돼 있다. 레닌 묘는 과거에는 소련 국민이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곳에 줄을 섰지만, 오늘날엔 러시아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다.
슬루츠키 의원은 “레닌은 어머니의 옆에 묻히고 싶어했다”면서 “최소한 죽은 사람의 안식은 기독교인과 문명인들에게 중요한 의식이자 존경과 기억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 제안에 러시아의 공산주의 정당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알렉산드르 유셴코 러시아연방공산당 대변인은 이미 의사결정이 끝난 시신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공산주의 정당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세르게이 말린코비치 중앙위원장은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하원에 슬루츠키의 의원 권한을 박탈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슬루츠키 의원은 사회 불화를 부추겼다. 무책임한 정치인의 의원 지위를 영원히 박탈해야 한다”며 오래전 해결된 문제를 왜 들추냐고 비판했다.
러시아여론조사센터 브치옴은 레닌 100주기 여론조사에서 러시아인 57%가 레닌 시신 매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레닌 100주기는 일반 러시아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거 소련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레닌은 여전히 숭배의 대상이라고 AFP 등 외신들이 전했다. 러시아 공산당 깃발과 레닌의 초상화를 들고 현장에 참석한 이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크렘린궁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7년 러시아 혁명 100주년 때와 마찬가지로 기념행사에 참여하거나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레닌이 러시아 제국을 우크라이나 같은 국가로 분열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이유로 레닌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푸틴은 레닌이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 우크라이나의 민족성과 독립성을 인정하는 바람에 두 나라 간 비극이 시작되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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