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30m 거리... "이태원 파출소, 45분 지나도록 참사 몰랐다"

김성욱 2024. 1. 2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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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공판기]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공판... 재판부 "근데 왜 이런 보고서 썼나"

[김성욱 기자]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지난 2022년 12월 23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판사 : "(이태원 참사 당일 2022년 10월 29일) 오후 11시경까지는 이태원 파출소 내에서 이태원 사고 같은 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는 건가."
용산경찰서 최아무개 경위 : "네."
판사 : "그럼 이런 문서가 작성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최아무개 경위 : "…"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불과 130미터 떨어진 이태원 파출소에서 참사 발생 후 45분이 지나도록 참사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는 경찰 내부 직원의 법정 증언이 나왔다.

참사 당시 용산경찰서 생활안전과 소속이었던 최아무개 경위는 22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 경위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현장 도착 시간을 조작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로 이 전 서장과 함께 기소된 인물이다.

재판부가 지적한 문서는 '이태원 핼로윈 데이 현장 조치상황(1보)'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최 경위가 작성한 이 문건에는 '22시 13분 : 이태원 파출소장 현장 입장 후 초동조치 119 출동요청', '22시 17분 : (용산)경찰서장(이임재) 현장 도착 후 교통소통을 위해 녹사평역-제일기획 차량 통제 지시' 등이 쓰여있다. 하지만 검찰이 확보한 CCTV 등에 따르면, 이임재 전 서장은 참사 당일 오후 10시 17분이 아닌 오후 11시 5분께야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시점은 오후 10시 15분이다.

최아무개 경위는 거듭 "시간을 착각했다"고 주장했다. 최 경위는 "한 시간 반 정도 지나고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기억을 더듬는 과정에서 시간을 따로 체크하지 못했다"고 했다. 최 경위는 참사 당일 오후 11시 50분께 이태원 파출소에서 해당 보고서를 작성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나서 최 경위의 논리적 허점을 지적했다. 판사는 "증인은 앞서 (참사 당일) 오후 11시까지는 이태원 파출소 내에서 전혀 이런 큰 사고가 벌어졌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지 않나"라며 "한 시간 반 전 기억을 되짚어서 작성했다고 해도, 증인의 기억과도 전혀 다른 내용을 보고서에 기재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판사는 "이렇게 시간을 임의로 기재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나"라고도 했다.

오후 11시까지 몰랐다는 이태원 파출소... "근데 왜 이렇게 썼나"

최 경위는 보고서 작성 과정 때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간을 앞당기라는 이임재 전 서장 측 지시는 없었다고 했다. 최 경위는 현재도 용산경찰서 내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검찰에 의해 위증 혐의로 추가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측은 이날 재판에서도 참사 당일 오후 11시 전까지는 참사 상황을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은 지난 19일 이 전 서장이 국회 국정조사(2023년 1월 4일)에서 "사실은 그 이전에 이태원 사고 상황을 인지했음에도 참사 당일 오후 11시 1분경 최초로 인지했다고 허위 증언했다"라며 이 전 서장을 추가 기소했다.

이날 공판에는 이태원 참사 이전인 2022년 10월 4일 작성된 '가을 축제 행사 안전관리 실태 및 사고 위험요인 SRI'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경찰관 김아무개씨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씨는 참사 당시 용산경찰서 공공안녕정보외사과 공공안녕정보계 소속이었고, 해당 보고서에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포함시켰다.

김씨는 '이 보고서가 이임재 전 서장에게 보고됐나'라는 검찰 측 질문에 "직접 보고하는 위치가 아니라 보고됐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김씨는 과거 경찰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참사 당시 경찰이 이태원 인파 관리보다 집회 관리에 더 집중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던 데 대해 "지금 똑같이 물어본다면 모르겠다고 답변할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정하고 대답한 게 좀 안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등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였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아래와 같이 진술했었다.
 
"그분들(경찰 간부)의 입장을 대변하기는 조금 애매한데, 그 시기에 관내에 맞불 집회가 있어서 그 집회에 좀 더 집중했던 것 같고, 당연히 이태원 할로윈 축제를 알고 계시긴 했을 테지만 업무 집중을 집회 쪽으로 좀 더 집중하지 않았나 합니다." - 이태원 참사 당시 용산경찰서 공공안녕정보외사과 공공안녕안정보계 소속이었던 경찰관 김아무개씨 경찰 진술 조서 중
 
 
김씨 역시 현재도 용산경찰서 내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태원 현장에 정보과·경비과 경찰 없었나" 강조한 재판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왼쪽)이 지난 2023년 1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1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 남소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재판부는 이태원 참사 당시 인근 집회에 경찰력을 쏟느라 핼러윈 축제에 정보과나 경비과 경찰관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에 대해 강조했다. 재판부는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현장 말고, 이태원 일대에 정보과 직원이나 경비과 직원이 배치된 사실이 없었던 게 맞나"라고 물었다.

이에 검찰 측이 "핼러윈 데이에 정보관이 한명도 안 나갔던 것이 맞고, 이와 달리 2022년 이태원 지구촌 축제(10월 15~16일) 때엔 과장 2명을 포함해 정보관 5명이 나갔다"고 했다. 이임재 전 서장 측 변호인이 곧장 "지구촌 축제는 핼로윈 축제와 주관 부서가 다르다"고 반박했지만, 재판부는 "물론 담당부서가 다르지만 인파 운집이라는 것은 동일한 현상"이라며 "경비과나 정보과에서 이태원 핼러윈 데이 때 현장에 (경찰을) 배치한 것이 있는지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이는 이임재 전 서장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 전 서장은 이태원 참사 전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로 3년 만에 핼러윈 축제가 열려 인파가 예상됨에도 사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고, 참사 당시(2022년 10월 29일) 압사 신고를 11차례 이상 접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등에 따르면 참사 당일 '압사'라는 말이 들어간 첫 신고는 오후 6시 34분에 접수됐고, 이후 사고 시점인 오후 10시 15분까지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신고가 11건 접수됐다. 이 전 서장은 참사 전 용산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주변에서 열린 집회를 관리하고 있었다. 해당 집회는 오후 8시 30분에서 오후 9시 사이 종료됐다. 이후 이 전 서장은 식사를 한 뒤 한남동에 위치한 대통령 관저(대통령 입주 전)까지 돌아본 후 오후 11시 5분에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다.

다음 공판에는 본래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지만, 김 청장도 최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뒤로 밀리게 됐다. 그간 '꼬리 자르기' 비판을 받아온 검찰은 지난 19일 참사 발생 447일만에야 김광호 서울경창철장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김 청장 역시 이임재 전 서장과 같이 인파 사고 위험성을 사전에 알고도 적절한 경찰력 배치 및 지휘·감독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혐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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