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였던 날 전국 여행 다니는 '인싸'로 바꿔준 이것

김경준 2024. 1. 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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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배웁니다 3] 눈치 보던 나, 넉살과 유머가 늘었다... 내게 맞는 활터 찾는 꿀팁

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김경준 기자]

"네가 아싸였다고?"

얼마 전 대학원 회식 때였다. 내가 학부 시절 아싸(아웃사이더)였다고 하니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 실없는 소리도 잘해가면서 수업 분위기를 띄우기도 하고, 사람들과 술자리 갖는 것도 좋아하는 터라 그런 반응을 보일 만도 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지금도 MBTI 검사를 하면 INFP가 나온다. 그때는 더 내성적이었던 데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일에 있어서는 좀처럼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인 탓에 나와는 생각이 다른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 지금보다 더 서툴렀다.

예전엔 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술 마시러 가는 동기들을 뒤로 하고 나는 곧바로 집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곤 했다. 그런 탓에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 받는 대학 동기가 한 명도 없다는 게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성격까지 활발해졌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인싸'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가 된 건, 약간은 활쏘기 덕분이 아닐까 싶다. 활쏘기라는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나간 것이다.

전통활쏘기(국궁)를 즐기는 방법은 많지만, 가장 일반적인 루트는 전국 곳곳에 설치된 사정(활터)에 등록하여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서울 강서구의 '공항정(空港亭)'이라고 하는 활터에 몸을 담고 있다. 공항정은 회원수가 120명이 넘을 정도로 북적이는 곳이다. 좁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니 자연스레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활터의 모습 (서울 공항정 / 2022년 6월 14일 촬영)
ⓒ 김경준
 
물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었다. 활터에 등록하는 것도 내겐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낯선 환경에 노출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도 컸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활터의 분위기는 굉장히 수직적이고 엄격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적응하기 어렵다고 하는 소문이 무성했다.

실제로 지역 불문하고 활터의 평균 연령대는 높은 편이다. 과거에는 젊은 사람들이 활 배우겠다고 찾아오면 "한창 공부하고 일할 사람이 왜 여기 오느냐"며 문전박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활터에 가보면 나와 같은 2030 또래들은 드문 편이다.

나 역시도 처음에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서는 덜컥 겁부터 났다. 그러나 정말 활을 쏴보고 싶었던 나는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집 가까운 활터의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도 활터에 대해 들었던 각종 부정적인 소문은, 적어도 내가 방문한 활터와는 거리가 먼 얘기들이었다. 오히려 젊은 사람이 전통문화에 관심 갖고 배우려는 모습이 가상하다며 어른들로부터 뜨거운 환영과 격려를 받았다. 그렇게 영업(?)을 당해버린 나는 바로 입회원서에 도장을 찍었다.

'함께'를 중시하는 활터 문화

물론 처음에는 쭈뼛쭈뼛 눈치 보기에 바빴다. 아무리 편히 대해준다고 해도 어머니 아버지뻘, 할아버지뻘 되는 분들과 한 공간에 계속 있는 게 어렵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 활터의 문화는 나이와 성별을 넘어 상호 존중의 예의를 중시한다. 아랫사람이라고 무시당하거나 하는 일도 거의 없었고,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 대해 배려해주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쏠 수 있게 우리가 비켜줘야지"라고 하면서 자리를 양보하는 어른들 모습을 보며 뭉클한 적도 있었다.
 
 편사대회 풍경 (서울 공항정 / 2022년 7월 30일 촬영)
ⓒ 김경준
 
무엇보다 활터의 문화는 '함께' 하는 것을 중시한다. 기본적으로 활을 쏠 때 '동진동퇴(同進同退)'라 하여 활을 쏘는 자리인 사대에 다함께 서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혼자 있을 때면 혼자 쏘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이 있을 때는 여럿이 짝을 맞춰 습사(활쏘기)를 진행한다.

또 활터에서는 정기적으로 삭회(월례모임)가 열리는데, 그때마다 모든 구성원이 모여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고 편을 갈라 활을 쏘며 승부를 겨루는 '편사'를 즐긴다. 요즘은 쉬이 찾아보기 힘든 전통시대의 공동체 문화를 함께 즐기면서, 나 역시도 어느 순간 활터의 일원으로 녹아들 수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쭈뼛쭈뼛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던 내가 지금은 아버지뻘 되는 활터의 어른들과도 스스럼 없이 막걸리잔을 기울이게 됐다. 덕분에 넉살도 많이 늘었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활터에서 다함께 대보름 음식을 나눠 먹는 풍경 (서울 공항정 / 2023년 2월 5일 촬영)
ⓒ 김경준
 
활터의 활동 외에도 대학 국궁동아리, 전통활쏘기 모임 등 내가 참여하고 있는 활쏘기 관련 모임만 3개나 된다. 활쏘기를 통해 만난 친구들과 함께 전국 활터로 습사여행을 다니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다. 과거 '만년 아싸'로 살면서 홀로 있는 시간들이 더 많았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물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여전히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감정노동'에 가깝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노동을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의 체력을, 나는 활쏘기를 통해 길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활쏘기는 그렇게 나의 성격을, 아니 삶을 바꿔놓았다.

[Tip] 내게 맞는 활터 찾는 법

대한궁도협회 홈페이지(http://kungdo.or.kr/)에 접속한 뒤 '커뮤니티-활터현황' 항목에서 전국 활터 주소와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다. 가까운 활터를 찾아 전화로 문의하면 담당자가 등록 절차 및 교육에 관한 사항들을 자세히 안내해줄 것이다. 근처에 활터가 여러 곳이라면 가능한 모두 방문해본 뒤 등록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활터마다 회비와 분위기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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