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제' 크리시 하인드가 현재와 미래를 담은 문제작 [B메이저 - AZ 록 여행기]
[최우규 기자]
우리가 군부독재의 총칼 앞에서 몸을 숙이고 있을 때였다. 영미권에는 펑크(Punk) 문화가 불어닥쳤다. 기성세대, 기득권, 권위에 반발과 저항으로 맞섰다. '잘 나가는 것, 잘난 체하는 것들은 다 싫어. 내 멋대로 할래.' 무정부주의, 허무주의, 무절제가 펑크 정신이다.
음악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펑크 세례를 받은 뮤지션들은 이랬다. "다 비켜. 복잡한 코드는 필요 없어. 딱 세 개면 돼."
펑크 록 중심에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이라는 영국인이 등장한다. 그는 1972년 런던에서 옷 가게를 열었다. 나중에 세계적 디자이너가 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가 파트너였다. 맥라렌은 1974년 미국 뉴욕 패션 행사에서 펑크 록 비조(鼻祖) 뉴욕 돌스(New York Dolls)를 만났다. 매니저를 1년 정도 하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섹스 피스톨스(the Sex Pistols) 매니저가 됐다. 맥라렌과 웨스트우드는 예술적 감성을 피스톨스에 퍼부어 펑크 패션을 선도했다. 찢어진 바지와 셔츠, 문신, 모히칸이나 벼락 맞은 머리 스타일 등이다.
펑크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 짧은 절정을 맛보고 사그라지는 듯했다. 후예들이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냈다. 말 그대로 뉴 웨이브(New Wave)다. 펑크의 단순하면서도 직설적 노래를 기본으로 깔았다. 그 위에 신시사이저를 내세우는 일렉트로닉 뮤직, 디스코, 팝 등을 합쳤다.
펑크 록과 뉴 웨이브를 이은 징검다리 중 굵은 돌이 프리텐더스(The Pretenders)다. 대중음악에서 프리텐더스가 차지하는 위상에 비춰보면 국내에서는 놀랄 만큼 찬밥 신세다. 프리텐더스는 펑크가 낳고 뉴 웨이브가 기른 밴드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디록, 얼터너티브 록, 더 나아가 브릿팝의 고모쯤 된다. 여성 보컬을 내세운 수많은 인디·모던록 밴드에서 프리텐더스 리더 크리시 하인드(Chrissie Hynde)를 떠올려도 그 사람 잘못이 아니다.
프리텐더스의 리드 보컬이면서 작사·작곡, 리듬 기타를 맡은 하인드는 1951년생이다. 본명은 크리스틴 엘렌 하인드(Christine Ellen Hynde)로, 미국 오하이오 주 애크론 시 출신이다. 켄트 주립대학에서 미술 전공을 하면서 처음 밴드에 몸 담았다. 1973년 영국으로 가서 음악 잡지 기자 생활을 하고, 맥라렌의 옷 가게에 취직했다. 여기서 펑크 록과 인연을 만든다.
5년 간의 좌절 끝에 1978년 프리텐더스를 만든다. 다른 세 명은 제임스 하니맨-스콧(James Honeyman-Scott, 기타), 피터 파돈(Peter Fardon, 베이스), 마틴 체임버스(Martin Chambers, 드럼)다.
▲ 펑크 뉴웨이브 밴드 Pretenders의 데뷔 음반에 밴드 멤버들 모습이 실려 있다. |
ⓒ 최우규 |
세 번째 '업 더 넥(Up The Neck)'도 문제작이다. 청량함마저 느껴지는 뉴웨이브 곡인데, 반전이 있다. 가사가 선정적이다. 아침에 잠에서 깬 여자가 뜨거웠던 전날 밤을 회상한다.
A면 마지막 곡은 '스톱 유어 소빙(Stop Your Sobbing)'이다. 밴드의 첫 싱글이다. 이미 잘 나가던 밴드 킹크스(The Kinks) 노래다. 당시 하인드는 킹크스 보컬 레이 데이비스(Ray Davies)와 사귀었다. 킹크스 노래가 철없는 소년의 투정이라면 프리텐더스는 사랑이 뭔지 아는 아가씨의 하소연이다.
A면에 펑크 록과 뉴 웨이브라는 과거와 현재를 담았다면, B면에는 뉴 웨이브와 인디·얼터너티브 록 원형이라는 현재와 미래를 배치했다.
B면 첫 곡은 '키드(Kid)'로,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 1960년대풍 멜로디지만 신선하고 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남녀노소가 좋아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두 번째 곡은 '프라이비트 라이프(Private Life)'로, 6분이 넘는다. 대중성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해 만든 듯하다. 둔중하게 시작하는 베이스, 찰랑거리는 기타에 살짝 변형시킨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한다. 뉴웨이브 밴드 폴리스(The Police) 음악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 펑크록 뉴웨이브 밴드 Prentenders 데뷔 음반 뒷면에는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겨 있다. |
ⓒ 최우규 |
2005년 프리텐더스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됐다. 수락 연설에서 하인드는 프리텐더스를 드나든 모든 멤버를 호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프리텐더스가 트리뷰트 밴드(유명 밴드 모습과 음악을 본뜬 연주를 하는 밴드)처럼 보였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는 하니맨-스캇과 판든에게 헌정 연주를 해왔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없었다면 그들이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로큰롤이죠."
펑크와 뉴 웨이브의 여제가 밝힌 초심이다. 프리텐더스는 여전히 현역이다. 지난해 12번째 스튜디오 앨범 <릴렌틀레스(Relentless)>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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