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옆에 공룡발자국 있는 대도시 보셨나요?

정만진 2024. 1. 22. 16: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진건학교의 대구여행] 대구가 자랑할 만한 앞산자락길

[정만진 기자]

 대구 앞산 고산골의 공룡발자국(왼쪽, 눈 온 날). 세계적으로 대도시에서 공룡발자국을 볼 수 있는 곳은 대구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
ⓒ 정만진
 
'대구 앞산 자락길'은 메타세쿼이어가 예쁘장하게 눈길을 끄는 고산골 입구에서 달비골 월곡못까지 앞산 둘레를 타고 굽이굽이 이어진다. 물론 등산용으로 조성되지 않았으므로 오르막내리막 숨 가쁘게 탈 일이 없는, 천천히 거닐듯이 즐기면 되는 도보여행 길이다.

앞산자락길은 우리나라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내용을 갖추고 있다. 이유는? 첫째, 출발점의 공룡발자국부터가 압도적이다. 대도시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마 세계에서 여기뿐일 것이다. 

둘째, 고려태조 왕건과 1910년대 국내 무장독립투쟁을 선도한 조선국권회복단 유적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 답사지이다. 셋째, 길이 부드러워 웬만한 노약자도 모두 걸을 수 있다. 

넷째, 메타세쿼이아길·이팝나무길·꽃무릇길·성불사 솔숲길 등 자연 향기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다섯째, 산이 앞뒤로 남구와 달서구를 거느리고 있어 자가용을 끌고 찾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도 있다. 

메타세쿼이어길이 끝나면 고산골로 들어선다. 과연 자락길답게 경사가 거의 없고 평탄하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길이다. 게다가 공룡발자국과 해류 등에 의해 생기는 연흔(물결자국)까지 있다.
   
 대구 앞산 고산골 공룡공원
ⓒ 정만진
 
놀랍게도 이곳은 주택가가 끝나는 지점이다. 영어 표현 '다운타운', 그런데 이곳은 상당히 높은 고지대에 속한다. 그러면 공룡이 산에 살았다는 말인가? 공룡은 물가에 살면서 풀을 뜯어먹은 빙하기 시대 동물 아닌가? 빙하기 시대에는 이 높은 곳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빙하기 시대의 대구경북은 땅이 아니었다. 거대 호수였다고 알려져 있다. 고산골 공룡발자국이 그 증거 유적이다. 공룡이 다니면서 풀을 뜯어먹고 물을 마신 흔적이 바로 이곳의 공룡발자국이다. 지금도 전국 호수 1/3 이상이 대구·경북에 있고, 공룡발자국 역시 절반 이상이 대구·경북에 있다.

그 옛날 거대한 호수였다는 곳

등산로 입구에서 길은 삼거리로 나뉜다. 직진하면 고산골 등산길로 들어간다. 자락길은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며 평지 황토 인도로 이어진다. 남구청 발행 〈앞산 자락길〉 소형 홍보물도 이 길을 '노약자 이용 가능 구간'이라 설명한다. 신발을 벗어 두 손에 든 채 조심조심 땅을 밟는다.

지금까지 1구간(메타세쿼이아길)과 2구간(맨발산책길)을 걸었다. 공룡발자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데 할애한 10분 정도를 포함해 거리 1.8km, 시간 36분가량 걸었다. 2구간 끝이자 3구간(이팝나무길) 시작점인 강당골 입구에 서서 산길을 바라본다.

3구간이 시작되는 이 골짜기에 강당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옛날에 강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이 골짜기에는 큰 못이 있었는데, 골짜기 물이 흘러내려 모이는 못가에 풍류와 학문을 즐기고 연마하려는 목적으로 강당 한 채를 건축해 놓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못은 메워졌고, 강당도 허물어져 자취를 잃었다. 강당은 다수의 사람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는 건물로, 흔히 서원의 본 건물에 붙는 이름이다.
 
 은적사 왕굴
ⓒ 정만진
 
40분가량 걸으면 은적사가 나온다. 사찰 입구에 '천년 고찰'이라는 자랑 섞인 안내판이 서 있다. 은적사는 927년 동수대전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은적사 대웅전 옆 왕굴에 사흘간 숨어 지내다가 안일암으로 옮겨갔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절이다. 그래서 '숨을 은(隱)'과 '자취 적(跡)'을 써서 은적(隱跡)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은적사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한때 대구 최대의 유원지 역할을 했던 큰골에 닿는다. 이 골에 큰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고산골, 강당골, 매자골, 안지랑골, 달비골 등등 앞산 골짜기들 중 가장 큰 골짜기이기 때문이다. 

앞산에서 가장 큰 골짜기는 '큰골'

남구청은 큰골 케이블카부터 충혼탑까지 제 4구간에 '호국선열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송두환 의사와 임용상 의사 기념비, 이시영 선생 순국 기념탑, 낙동강 승전기념관, 충혼탑이 있는 길인 까닭이다. 다만 자락길을 걸으면서 그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자락길 아래에 있다.

자락길은 4구간이 끝나면 조선국권회복단 창립지인 안일암 아래로 이어진다. 5구간과 6구간의 경계 안지랑골 최고의 답사지는 안일암과 왕굴이다. 둘은 927년 동수대전 때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도망쳐 와 숨어 지냈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안일암은 1910년대 국내 무장 독립운동을 선도했던 조선국권회복단 결성지이기도 하다.
 
 안일암 왕굴
ⓒ 정만진
 
6구간은 안지랑골에서 매자골까지 이어진다. 5구간과 6구간은 둘 다 걷는 데 30분가량 걸린다.  6구간 이후 달서구 관할 구역은 5구간과 6구간을 합한 것 정도로 거리가 짧아 대략 한 시간가량이면 완주할 수 있다. 임휴사를 거쳐 월곡지에 닿으면 앞산자락길은 끝이 난다.
오늘 답사의 결론은 "앞산자락길 종착지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단순한 연못이 아니라 역사유적을 종점으로 정하면 훨씬 깊은 뜻이 살아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평안동산 가는 산책로를 월곡지 방향으로 300m쯤 걸으면 오른쪽에 숨은 듯 나타나는 첨운재(瞻雲齋)가 바로 그곳이다.
 
 윤상태 지사가 조선국권회복단 결성을 준비했던 첨운재
ⓒ 정만진
 
첨운재는 독립지사 윤상태 선생이 1913년 조선국권회복단 결성을 앞두고 동지들과 수시로 비밀 회동을 했던 곳이다. 항일 비밀결사 준비 성지(聖地)를 어찌 둘러보지 않고 하산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첨운재를 둘러보는 것으로 '앞산자락길' 답사를 마친다.

덧붙이는 글 | 1936년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킨 독립유공자 현진건은 <희생화><고향><신문지와 철창>에 대구를 언급했을 만큼 고향 대구를 사랑했습니다. 현진건을 연구하고 현창하기 위해 활동하는 현진건학교는 그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매주 토요일 대구여행을 실시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