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옆에 공룡발자국 있는 대도시 보셨나요?
[정만진 기자]
▲ 대구 앞산 고산골의 공룡발자국(왼쪽, 눈 온 날). 세계적으로 대도시에서 공룡발자국을 볼 수 있는 곳은 대구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 |
ⓒ 정만진 |
'대구 앞산 자락길'은 메타세쿼이어가 예쁘장하게 눈길을 끄는 고산골 입구에서 달비골 월곡못까지 앞산 둘레를 타고 굽이굽이 이어진다. 물론 등산용으로 조성되지 않았으므로 오르막내리막 숨 가쁘게 탈 일이 없는, 천천히 거닐듯이 즐기면 되는 도보여행 길이다.
앞산자락길은 우리나라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내용을 갖추고 있다. 이유는? 첫째, 출발점의 공룡발자국부터가 압도적이다. 대도시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마 세계에서 여기뿐일 것이다.
둘째, 고려태조 왕건과 1910년대 국내 무장독립투쟁을 선도한 조선국권회복단 유적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 답사지이다. 셋째, 길이 부드러워 웬만한 노약자도 모두 걸을 수 있다.
넷째, 메타세쿼이아길·이팝나무길·꽃무릇길·성불사 솔숲길 등 자연 향기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다섯째, 산이 앞뒤로 남구와 달서구를 거느리고 있어 자가용을 끌고 찾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도 있다.
▲ 대구 앞산 고산골 공룡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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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곳은 주택가가 끝나는 지점이다. 영어 표현 '다운타운', 그런데 이곳은 상당히 높은 고지대에 속한다. 그러면 공룡이 산에 살았다는 말인가? 공룡은 물가에 살면서 풀을 뜯어먹은 빙하기 시대 동물 아닌가? 빙하기 시대에는 이 높은 곳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빙하기 시대의 대구경북은 땅이 아니었다. 거대 호수였다고 알려져 있다. 고산골 공룡발자국이 그 증거 유적이다. 공룡이 다니면서 풀을 뜯어먹고 물을 마신 흔적이 바로 이곳의 공룡발자국이다. 지금도 전국 호수 1/3 이상이 대구·경북에 있고, 공룡발자국 역시 절반 이상이 대구·경북에 있다.
그 옛날 거대한 호수였다는 곳
등산로 입구에서 길은 삼거리로 나뉜다. 직진하면 고산골 등산길로 들어간다. 자락길은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며 평지 황토 인도로 이어진다. 남구청 발행 〈앞산 자락길〉 소형 홍보물도 이 길을 '노약자 이용 가능 구간'이라 설명한다. 신발을 벗어 두 손에 든 채 조심조심 땅을 밟는다.
지금까지 1구간(메타세쿼이아길)과 2구간(맨발산책길)을 걸었다. 공룡발자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데 할애한 10분 정도를 포함해 거리 1.8km, 시간 36분가량 걸었다. 2구간 끝이자 3구간(이팝나무길) 시작점인 강당골 입구에 서서 산길을 바라본다.
▲ 은적사 왕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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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가량 걸으면 은적사가 나온다. 사찰 입구에 '천년 고찰'이라는 자랑 섞인 안내판이 서 있다. 은적사는 927년 동수대전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은적사 대웅전 옆 왕굴에 사흘간 숨어 지내다가 안일암으로 옮겨갔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절이다. 그래서 '숨을 은(隱)'과 '자취 적(跡)'을 써서 은적(隱跡)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은적사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한때 대구 최대의 유원지 역할을 했던 큰골에 닿는다. 이 골에 큰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고산골, 강당골, 매자골, 안지랑골, 달비골 등등 앞산 골짜기들 중 가장 큰 골짜기이기 때문이다.
앞산에서 가장 큰 골짜기는 '큰골'
남구청은 큰골 케이블카부터 충혼탑까지 제 4구간에 '호국선열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송두환 의사와 임용상 의사 기념비, 이시영 선생 순국 기념탑, 낙동강 승전기념관, 충혼탑이 있는 길인 까닭이다. 다만 자락길을 걸으면서 그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자락길 아래에 있다.
▲ 안일암 왕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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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구간은 안지랑골에서 매자골까지 이어진다. 5구간과 6구간은 둘 다 걷는 데 30분가량 걸린다. 6구간 이후 달서구 관할 구역은 5구간과 6구간을 합한 것 정도로 거리가 짧아 대략 한 시간가량이면 완주할 수 있다. 임휴사를 거쳐 월곡지에 닿으면 앞산자락길은 끝이 난다.
▲ 윤상태 지사가 조선국권회복단 결성을 준비했던 첨운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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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운재는 독립지사 윤상태 선생이 1913년 조선국권회복단 결성을 앞두고 동지들과 수시로 비밀 회동을 했던 곳이다. 항일 비밀결사 준비 성지(聖地)를 어찌 둘러보지 않고 하산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첨운재를 둘러보는 것으로 '앞산자락길' 답사를 마친다.
덧붙이는 글 | 1936년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킨 독립유공자 현진건은 <희생화><고향><신문지와 철창>에 대구를 언급했을 만큼 고향 대구를 사랑했습니다. 현진건을 연구하고 현창하기 위해 활동하는 현진건학교는 그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매주 토요일 대구여행을 실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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