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겸손과 용기를 가르쳐 주는 책

유영숙 2024. 1. 2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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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를 읽고

[유영숙 기자]

박완서 작가 에세이를 읽었다. 에세이라서 가볍게 읽어도 되지만, 3일 동안 꾹꾹 눌러서 정독하였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가슴이 설렜고 궁금했다.

에세이는 1970년대부터 90년대에 쓰인 46편의 에세이다. 작가의 눈길이 닿고 생각이 머물러 있던 당시의 사건과 상황, 주제가 고스란히 담긴 이 세심한 기록을 통해 30여 년간 우리 사회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 책 표지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 책 표지(박완서 작, 세계사 출판, 2024)
ⓒ 유영숙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2002년 출간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재편집하여 1월 22일 세계사컨텐츠그룹에서 출간한 책이다. 책은 세 개의 챕터로 되어 있다. '눈에 안 보일 뿐 있기는 있는 것,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다. 글을 읽으면 박완서 작가가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듯 정겹다. 1970년부터의 시대상도 잘 반영되어 그 시대를 살아온 나에겐 추억을 불러일으켜주는 글이 되었다.

1970년대에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이었으며 대학생이었다. 80년대에는 교사로 살았고, 90년대에는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았기에 시대상을 반영한 박완서 작가 에세이가 공감되었다. 읽으며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었다. 읽다보니 그동안 내가 쓴 에세이는 어린아이 글처럼 느껴졌다.

글쓰기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그 여러 권보다 글쓰기의 길을 알려주는 귀중한 책이 되었다. 아마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며 기억할 거다. 작가는 음식을 가린다든지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잔다든가 하는 까다로운 성질은 아니지만, 친구나 친척 집에 묵는 일을 적극 피했다. 심지어 딸네 집에서도 여간해서는 자는 일이 없으셨다. 폐 끼치는 일이 싫기 때문이다.
 
나는 자식들과의 이런 멀고 가까운 거리를 좋아하고, 가장 멀리, 우주 밖으로 사라진 자식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도 있는 신비 또한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남겨진 자유가 소중하여 그 안에는 자식들도 들이고 싶지 않다.
-「내가 걸어온 길」 중

그런데도 부산에 있는 베네딕도 수녀원은 고향과 같은 곳이라 해마다 며칠이라고 묵고 와야 마음이 개운해지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가장 힘들었을 때 이해인 수녀님께서 수녀원에 편히 쉴 만한 방이 하나 있으니 언제라도 오라는 고마운 말씀을 듣고 언덕 방의 손님이 되었다. 작가는 손님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공경과 관심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이해인 수녀님과의 인연이 참 귀하다.
 
이 책에는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비롯해 제목부터가 정겹고 다정한 46편의 글들은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불후의 명작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 사물과 인간에 대한 애정, 사회에 대한 솔직하고 예리한 통찰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삶에 대한 겸손과 용기를 가르쳐 준다. 때로는 눈물겹고 때로는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유익하고도 재미있는 글의 힘! 긴 시간을 거슬러 다시 펴내는 이 희망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읽힐 수 있기를 기도한다.
- 이해인 수녀님 추천사 중
 
아래는 요즘 내 마음과 같은 글이다. 젊었을 때는 누구보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 사진을 찍으면 노인의 얼굴이 보여 되도록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하지만 꼭 찍어야 할 일이 아니면 안 찍는다. 작가의 마음이 공감되면서 나를 위로하게 되었다. 사람 마음은 다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노인들을 보고 있으면 슬퍼진다. 외롭거나 불쌍한 노인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도 늙어가고 있고 곧 노인 소리를 듣게 되더라는 걸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자주 의식하게 되고부터인 것 같다. 노인을 보면 슬퍼지고부터는 사진 찍기가 싫다. 공개되어야 할 사진을 찍기는 더욱 싫다. 두렵기조차 하다.
 -「소멸과 생성의 수수께끼」 중
 
46편의 글 중에서 마음에 가장 들어오는 글이 「주말농장」 글이다. 작가는 '나는 초등학교쯤은 시골에서 마친 사람을 좋아하고 중고등학교까지도 시골에서 나온 사람이면 더욱 좋아한다'고 한다. 작가처럼 나도 내가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는 얘기를 남에게 할 때 자랑스러워 으스대며 마구 신이 난다.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 
  
박완서 작가 에세이를 읽으며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옛날을 추억하며 행복했던 것처럼 다른 분들도 이 글을 읽으며 행복한 마음이 들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이 글이 작가를 그리워하고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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