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브랜딩과 <고기리막국수> 브랜딩은 통한다

김윤정 2024. 1. 2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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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시x리브랜딩> ... 우리는 왜 막국수집을 브랜딩 하는가

[김윤정 기자]

지난 주에도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살얼음이 살짝 언 동치미막국수를 먹기 위해서죠.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 막국수를 맛보러 강원도에 가는 것은 저희 부부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은 묻습니다. "고향이 강원도이신가 봐요? 자주 가시는 걸 보니."

사실 저희 부부는 강원도에 연고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도 자주 다니다 보니 고성 막국수집은 물론이고, 속초 김밥집, 영랑호 커피 사장님과도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신발을 벗어들고 호수 산책로에 있는 돌 지압판까지 꾹꾹 밟다보면 그곳 동네주민이 된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직장, 주거, 교육 때문에 당장 터전을 옮기지는 못하지만, 늘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곤 하지요. 이처럼 지역 거주민 말고도 저희처럼 다양한 형태와 목적으로 지역을 찾는 사람을 '생활인구' 또는 '관계인구'라고 부른다는 걸 <도시X리브랜딩>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선택받지 못하면 브랜드가 사라지듯이, 선택받지 못한 도시는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도시를 새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도시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리브랜딩은 가능하다고 설득합니다. 더 나아가 살고 싶은 도시, 여행하고 싶은 도시, 일하고 싶은 도시 등 차별화를 뛰어넘는 자기다움을 공고히 해야 도시가 생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뉴욕, 베를린, 포르투 등 세계 여러 도시부터 가까운 부산, 인천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던 도시의 존재 이유를 브랜드 전문가, PR 컨설던트, 30년 차 기자 이렇게 3명의 저자에게 듣고 있노라니, 갑자기 저희 부부가 운영하는 <고기리막국수>의 브랜딩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국 100여 군데 '막국수 여행', 음식의 본질을 깨닫는 여정
 
 <고기리막국수>를 운영하는 유수창, 김윤정 부부. 김윤정 대표는 '고기리 막국수'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라는 책을 펴냈다.
ⓒ 김윤정 제공
세상에는 수많은 식당이 있습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대한민국에서 손님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식당 사장님들의 로망이 뭔지 아세요? 손님들이 줄 서는 가게입니다. 꼭 식당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팔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 나 자신이 상품인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내가 팔기보다는 내 상품을 원하는 수요가 많은 상태를 늘 꿈꾸지만, 현실은 어렵기만 합니다. 

13년 전 어느 겨울, 저는 계약금 500만 원을 들고 낯선 동네에 서 있었습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었습니다. 우리의 막국수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낮은 곳에 위치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과거 압구정동에서 운영했던, 250석 규모의 일식당은 철저히 망했습니다. 주변과 경쟁해야 한다는 마음에 유행하는 메뉴를 만들기 시작했고, 새로 생긴 곳 역시 우리 메뉴를 어김없이 팔고 있었습니다. 특색 없는 가게들로 가득해진 압구정 상권은 서서히 무너졌고, 저희 역시 같이 무너지고 말았죠.

막국수집을 열긴 했지만, 손님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이 왜 우리 집에 오지 않지?' 이 의문은 그때부터 '손님들이 왜 우리 막국수집에 와야 하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실패해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으니까요. 

냉정하게 우리 음식이 돈을 지급하고 사 먹을 가치가 있는지 바라보았습니다. 그 당시 시작했던, 전국 100여 군데의 막국수 여행은 우리가 만드는 음식의 본질을 깨닫는 여정이었습니다.

'다른 집보다 내가 더 잘해야' 하는 마음을 버리고 나니 비로소 막국수가 보였고, 새로운 막국수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없던 우리만의 '들기름막국수'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즈음 <고기리막국수>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조금씩 생겨나게 되었죠. 우리는 서서히 손님들의 소리를 받아들이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도시는 도시답게, 고기리는 고기리답게!"
 
 2023년 12월 20일에 출간된 책 <도시×리브랜딩>(오마이북, 박상희·이한기·이광호).
ⓒ 오마이북
그런데 선택받아야 하는 것은 단지 식당만이 아닙니다. '전국의 곳곳을 누비며 우리가 추구하는 맛을 찾고자 노력했을 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차별적인 경쟁력은 물론이고, 우리 식당의 브랜딩이 훨씬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초조해하며 읽어내린 <도시X리브랜딩>은 이같은 제 질문에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모두가 잘 아는 도시 브랜드 캠페인 'I♥NY'은 오랫동안 빈곤과 범죄의 상징이었던 뉴욕을 매력 있고 활력 넘치는 도시 이미지로 바꿔냈습니다. 또한, 9·11 테러 이후에는 도시를 위로하고 재건하는 힘을 보여줬지요.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까지 울림을 주는 'I♥NY' 캠페인은 단지 슬로건과 디자인의 힘뿐만은 아닐 겁니다. 도시의 정책이 정체성에 맞게 추진되고, 그 실체에 맞는 활동으로 이어진 결과물이겠지요. 무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뤄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뉴욕을 사랑하게 만들어주었죠.

물론 도시 브랜딩은 여러가지 요소로 인해 기업 브랜딩과 똑같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X리브랜딩>은 슬로건이나 홍보에 앞서서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브랜딩 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로 인해 도시 거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게 하는 것, 이렇게 도시 브랜딩의 지향점을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오! 작은 가게도 그런 점에선 다르지 않아요.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손님들은 자주 오셨으면 하는 게 바람이거든요. 

예전에는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행동이 달라도 알아차릴 방법이 없었는데요. 정보는 보편화되고 접근이 쉬워진 SNS 시대에는 속이려고 해야 속일 수가 없는 투명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식당에 걸려있는 작은 문구 하나라도 손님들의 직접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식당은 오래가지 못할 테지요. 도시 리브랜딩 역시 브랜드 정체성과 브랜드 실체와 일치하게 만들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바탕이 돼야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이유로 그 도시를 선택하게 할 겁니다.

<도시X리브랜딩> 책을 읽다 보면, 시애틀, 멜버른,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포틀랜드, 리버풀, 프라하 등 가고 싶은 도시가 더욱 많아집니다.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갔다가 홍콩, 스위스,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Art Basel)을 구경하고, 방콕의 란 재파이(Raan Jay Fai) 길거리 식당에서 볶음국수를 먹다 보면 왠지 저자의 사인이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이 책의 공저자인 이한기 기자님이 제게 이렇게 써 주셨죠? "도시는 도시답게, 고기리는 고기리답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윤정은 <고기리막국수> 대표입니다.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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