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대 0 패배, '축구 꼴찌' 국가대표팀의 대반전
[김준모 기자]
▲ <넥스트 골 윈즈> 스틸컷 |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스포츠에서 가장 가슴 뛰는 순간을 뽑으라면 단연 언더독의 반란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농놀(농구놀이) 열풍'을 일으킨 <더 퍼스트 슬램덩크> <리바운드> 역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자이언트 킬링을 보여주며 뜨거운 열정과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넥스트 골 윈즈>는 2024년 이 열기를 이어갈 영화라 할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세계인의 축구 축제, 월드컵 예선 역사상 가장 짜릿했던 순간을 담아냈다.
아메리칸사모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못하는 나라다. FIFA 랭킹 최하위에 위치한 이들의 실력을 잘 보여주는 기록이 2001년 호주와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31대 0이라는 역사상 최다 점수 차로 당한 패배다. 작품은 이 굴욕의 역사를 오프닝으로 택하며 어떤 반전이 펼쳐질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그리고 성적하락과 인성논란으로 미국에서 퇴출 당한 감독 토마스 론겐이 지도자로 오게 된다.
작품의 표면적인 면만 보았을 때는 지난해 개봉했던 한국영화 <드림>이 연상된다. 축구 소재에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엘리트 출신 지도자가 최약체 팀을 맡아 언더독의 반란을 이끌어 낸다. 여기에 이병헌 감독처럼 연출을 맡은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역시 코미디에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기회의 의미가 담긴 '넥스트 골'이 비슷한 주제의식을 전달할 것이란 인상을 준다.
▲ <넥스트 골 윈즈>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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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여느 언더독 영화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작품은 언더독의 공식을 따르면서 디즈니가 꾸준히 추구해 온 고유한 정신을 장점으로 보여준다. 언더독 작품이 반전을 써 나가는 공식은 한 가지다. 패배주의에 잠식되어 있던 주인공들의 정신개조다. 뛰어난 지도자 혹은 함께하는 동료와의 일련의 사건들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그 대표적인 스포츠 드라마가 <록키>다. 비록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더라도 눈에 띄는 선전과 자신이 정한 목표의 충족은 인간승리라는 거창한 칭호를 붙일 만큼의 감동을 준다. 토마스는 심각한 선수들의 문제를 부족한 경쟁심에서 본다. 따뜻한 날씨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 이곳의 주민들은 나른하고 낙천적이다. 이들에게 결여된 정신력을 부여하며 열정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모습은 기존에 정해진 공식과 같다.
▲ <넥스트 골 윈즈>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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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를 이끌어 내는 핵심 캐릭터가 자이야라 할 수 있다. FIFA 월드컵 예선 최초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축구선수로 디즈니가 추구하는 다양성의 가치에 잘 어울리는 이 인물은 갈등과 결속 그리고 성장 서사의 중심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필드 위의 전사를 원하는 감독에게 꽃 같이 예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자이야는 눈엣가시처럼 다가온다. 때문에 토마스는 그녀를 이질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허나 선수들은 자이야를 파파피네(fa'afafine)라 부르며 특별한 존재이자 팀의 중심으로 여긴다. 파파피네는 사모아 문화에서 차별의 대상이 아닌 고유한 존재로 인정을 받으며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토마스 역시 다른 팀원들처럼 자이야의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팀은 결속을 이룬다. 자이야 역시 토마스를 위해 투쟁을 결심하며 두 사람은 아버지와 딸과 같은 애틋한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조조 래빗>을 통해 웃음과 감동의 완벽한 균형을 보여줬던 타이카 와이티티는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저력을 과시한다. "이 이야기의 경우 영감을 찾으려 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있었으니까"라는 감독의 말처럼 실화 그 자체가 주는 강한 울림에 특유의 유머러스한 스타일을 접목해 흥미로운 언더독 신화를 창조해냈다. 새해에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넥스트 골'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더 큰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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