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들의 쇼핑몰', '선산'... 신작 스릴러, 뭐 볼까?
[이정희 기자]
지난주 디즈니 플러스와 넷플릭스에서 동시에 신작 스릴러 두 편이 출격했다. 바로 <킬러들의 쇼핑몰>과 <선산>이다. 1월 17일 1, 2부를 공개한 <킬러들의 쇼핑몰>은 강지영 작가 원작의 <살인자의 쇼핑몰>을 각색한 작품이다. 한편 <선산>은 연상호, 민홍남, 황은영의 원안을 바탕으로 강태경이 글을 쓰고, 조눈과 리도가 그림을 그린 웹툰 <선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스타일리시 뉴웨이브 액션'을 표방하는 <킬러들의 쇼핑몰>과 이른바 '연니버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선산>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 킬러들의 쇼핑몰 |
ⓒ 디즈니 플러스 |
<킬러들의 쇼핑몰>을 연 건 담벼락이 무너진 허허벌판 위에 있는 단독 주택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액션 신이다. 벌판 저 너머에서는 한 무리의 킬러들이 이 집을 향해 전진하고, 그 너머에서는 스나이퍼 이성조(서현우 분)가 연신 거실 안으로 총탄을 날리고 있다. 거실 안에서 이 총탄 세례를 피하고 있는 건 여주인공 정지안(김혜준 분)과 지안의 동창생으로 삼촌을 도왔다는 배정민(박지빈 분)과 삼촌의 중국어 선생님이라던 소민혜(금해나 분)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격전의 전장에서 잠시 벗어나 시간을 되돌린다. 이 사태를 일이킨 삼촌이 죽기 전, 아니 그 보다도 더 오래 전 사라졌던 삼촌이 7년 만에 집에 나타난 그 시절말이다. 삼촌 장례식장에서 마을 친구들이 지방 조폭이라느니, 북파 공작원이라느니 하던 삼촌 정진만(이동욱 분), 그런데 그가 나타나자마자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리고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지안이의 아버지와 엄마도 죽음을 맞이했다. 지안이도 집에 들이닥친 괴한들로부터 겨우 목숨을 건졌다.
다짜고짜 들이닥친 지안이네 가정의 비극,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대해 드라마는 설명하는 대신, 충격으로 말조차 잊은 지안과 삼촌이라는, 본의 아니게 가족이 되어버린 두 사람이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풀어간다. 강지영 작가 <심여사는 킬러>가 그렇다. 정육점을 하던 남편이 음주 운전으로 죽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가진 걸 모두 날렸다. 아들은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군대를 가고 고등학교 다니는 딸과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한다. 그때 월 300에 상여금 500% '고퀴'의 구인 광고가 나타났다. '킬러'를 구한단다.
호구지책으로 킬러가 된다는 기발한 상상력처럼 말조차 잃은 지안의 방 앞에서 자기 뺨을 하염없이 때리던 삼촌은 지안의 보호자로 남아 먹고 살기 위해 킬러들에게 무기를 파는 쇼핑몰을 열었다는 황당하지만 그럴 듯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삼촌은 자살을 했다는데 슬픔에 잠길 겨를도 없이 킬러들이 들이닥친다. 삼촌이 운영하던 쇼핑몰에서 삼촌과 같은 위치에 지안이 있기 때문이다. 정진만으로부터 산 무기를 들고, 심지어 드론까지 동원해서 집을 초토화되어 간다.
처음 삼촌과 이 집으로 오던 날 무거운 자신의 짐을 감당하지 못한 채 넘어진 지안, 그런 지안을 바라보며 삼촌이 말한다. "잘 들어 정지안, 난 너의 엄마도, 아빠도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어린 지안은 울 수도 없었다. 그저 다시 일어나 짐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 식이었다. 삼촌은 늘 "잘 들어 정지안"이라며 무언가를 얘기했다. 이제 살인 드론이 판치는 상황에서 지안은 삼촌의 말을 떠올리며 상황을 헤쳐나간다. 날 다람쥐처럼 날고, 소파를 세워 자신을 엄호한다. 그런데 소파 밑에 '장총'이 숨겨져 있네. 드론의 공습에 버티는 방탄 철문처럼 말이다.
<킬러들의 쇼핑몰>은 삼촌, 조카의 애틋한 서사를 얹어 황당무계한 액션 플롯의 개연성을 만들어 간다. <타인은 지옥이다>에 이어, <배드 앤 크레이지> <구미호뎐> 등을 통해 장르물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입혀온 이동욱과 <킹덤> <구경이>를 통해 도발적인 캐릭터를 선보인 김혜준이 또 한번 자기만의 색채가 강한 정진만과 정지안으로 등장하여 시선을 끈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다 삼촌 이동욱은 죽어버리지만, "잘 들어 정지안"이라며 드라마를 채운다.
▲ 선산 |
ⓒ 넷플릭스 |
이제는 우리 스릴러물에서 익숙한 클리셰인 길게 드리워진 논밭 사이의 길, 그곳에 한 노인이 막걸리 병을 들고 걸어간다. 거나하게 취한 노인, 연신 입에서는 거친 말이 튀어나온다. 그러는 것도 잠시, 노인은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멀리서 그 노인을 바라보는 듯한 '선산(조상들의 산소가 있는 곳, 또는 그것이 있는 산)'.
'연니버스'라는 용어가 있다. 마치 마블처럼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확고한 연상호 감독의 작품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일찍이 <돼지의 왕> <사이비>를 시작으로, <부산행> <서울역>을 거쳐, <방법> <지옥> <정이>에 이르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그의 작품 속에서 사람들은 '이익'으로 쟁투하고, 서로를 겁박하다 쓰러져 나간다. <선산>에서도 다르지 않다. 죽어버린 노인,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노인이 소유한 '선산'을 두고 이해가 엇갈린다. 교수의 저작을 대필해주고도 전임 자리를 놓친 시간강사 윤서하(김현주 분)는 일면식도 없는 작은 아버지라며 외면하다 '선산'이 있다는 소리에 표정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 선산에 침을 삼키는 건 윤서하만이 아니다. 장례식장에 등장한 김영호(류경수 분)는 나도 이 집안 자식이라며 선산의 권리를 주장한다. 건물까지 지어놓고도 개발을 못해서 피가 마르는 마을 이장은 나서서 장례를 마을장으로 주관하며 선산 처리에 앞장선다.
얽히고설킨 인간 관계는 선산을 둘러싼 이들만이 아니다. <선산>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주요한 또 다른 갈등은 한때는 둘도 없는 선후배였지만, 이제는 마주보기 조차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린 최성준(박희순 분) 형사와 박상민(박병은 분) 반장이다. 최성준의 아들로 인해 박 반장은 지팡이를 짚게 되었고, 후배였지만 이젠 반장이 되어버린 그의 열등감과 자괴감이 사사건건 사건의 진행을 엇나가게 한다.
이렇게 이권과 이해로 직조된 갈등을 배경으로 본격적으로 살인이 시작된다. 한 회에 한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고, 미스터리는 남일 시를 배경으로 증폭해 나간다. 그리고 그 미스터리에 연상호 감독 특유의 정서를 물씬 풍기는 굿판과 김영호 등 무언가에 홀린 듯한 인물들의 비이성적 행동, 그리고 그런 정서를 한껏 조장하는 장르물 특유의 음악이 드라마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선산'으로부터 시작된 '저주'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드라마가 이른바 '연니버스'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켰는지는 의문이다. 이제는 장르물에서 너무 흔해져버린 설정들과 분위기, 그리고 한껏 분위기만 잡다 동네 아줌마 말만 듣고도 해결되는 어설픈 사건들이 진지하게 호연을 펼친 배우들마저 머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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