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승 행진에 가려진 클린스만호 민낯
[박시인 기자]
▲ 지난 20일 열린 요르단과의 2023 아시안컵 조별리그 2차전을 앞두고, 기념촬영 중인 한국 대표팀 선수들 |
ⓒ 대한축구협회 |
역대 최고의 스쿼드라는 찬사 속에 64년 만의 아시안컵에서 우승할 적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패배가 없고, 조별리그 단계라고는 하지만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의 약체라 할 수 있는 중동의 바레인, 요르단과의 경기를 통해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클린스만호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말았다.
공격 축구 지향하는 클린스만호
지난 3월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 사령탑 부임 첫 기자회견에서 공격 축구를 선언했다. 후방에서의 빌드업과 점유율을 높이는 능동적인 축구에 집중한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과는 달리 빠르고 직선적이면서 공격 숫자를 늘려 최대한 많은 골을 넣는 방식을 선호한 클린스만 감독이다.
또, 대부분의 경기에서 2명의 공격수를 배치하는, 이른바 비교적 공격 성향이 강한 4-4-2 포메이션을 가동한 바 있다. 하지만 비교적 클래식컬한 시스템에 부합하는 전술 운용이었다. 좌우 풀백을 최대한 높이고, 좌우 윙어 역시 벌리는 방식이다. 이러한 기조는 2명의 중앙 미드필더에게 굉장한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때마침 클린스만호는 출범 후 초반 5경기 연속 무승(3무 2패)에 그치며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클린스만 감독의 재택 근무 및 외유 논란까지 겹치며 팬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9월 사우디 아라비아전 승리를 시작으로 튀니지, 베트남, 싱가포르, 중국, 이라크를 상대로 매경기 화끈한 대량득점을 통해 6연승을 기록했다. 손흥민이 클린스만 감독 부임 후 가장 많은 득점을 책임졌으며, 이강인은 공격 전술의 핵심으로 급부상하며, 새로운 에이스임을 입증했다.
▲ 조규성-이강인-황인범. 이강인이 지난 바레인과의 아시안컵 1차전에서 득점한 이후 기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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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전방 압박 대처법 미흡... 넓은 간격 문제 해결 필수
한국은 바레인과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전반 38분 황인범의 선제골이 터지기 전까지 졸전을 펼쳤다. 후반 6분 알 하샤시에게 동점골을 내줬지만 이후 이강인이 개인 역량을 발휘해 멀티골을 터트리며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왼쪽 풀백 이기제의 부진과 밀집 수비 파훼법의 과제를 떠안고 요르단과의 2차전에 나섰다.
요르단은 클린스만호의 약점은 더욱 크게 부각시켰다. 바레인과 다르게 전방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한국은 좌우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 황인범이 높은 위치까지 올라감에 따라 하프 라인 밑에는 2명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만이 남겨졌다.
문제는 수비 라인에서 공격진까지의 간격이 넓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센터백에서 좌우 풀백으로의 패스 거리마저 길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박용우도 상대 공격수의 협력 압박에 고전하며 시선을 앞으로 향하지 못한 채 잦은 실수를 연발했다.
좌우 측면으로의 패스 경로가 막히자 한국 수비진들은 미드필드를 생략한 롱패스의 빈도를 높일 수 밖에 없었다. 장신 공격수 조규성이 머리로 떨궈주는 세컨볼을 따내야만 요르단 진영에서 공격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조규성은 공중볼 경합 4회 시도 중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하며 요르단의 장신 수비수에 꽁꽁 묶였다.
또, 상대 진영으로 깊숙히 올라간 공격수들이 좀더 내려와서 간격을 좁혀야만 패스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다. 1명의 풀백이 중앙으로 좁히며 빌드업 상황에 관여하는 것은 현대 축구의 트렌드다. 그런데 2명의 좌우 풀백이 모두 올라감에 따라 센터백들에게 가해지는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다.
2경기 연속 좌우 풀백으로 이기제, 설영우를 넣는 플랜A는 줄곧 실패하고 있다. 느린 주력과 수비력에서 허점을 나타난 이기제를 빼고, 김태환을 넣으며 설영우를 왼쪽으로 돌렸을때 경기력이 좀 더 향상됐다. 후방에서의 빌드업 체계를 다시 점검하고, 상하좌우 폭을 좁히며 간격 컨트롤을 개선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지난해 연승하는 경기에서도 이러한 약점들을 해결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손흥민, 이강인, 황희찬 등 올 시즌 절정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 유럽파들이 압도적인 개인 역량으로 상쇄한 측면이 강했다. 그동안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이강인의 일대일 돌파와 왼발 킥력에 의존했던 한국은 요르단전에서 이강인이 상대에게 차단 당하자 이렇다 할 활로를 찾지 못했다.
디테일한 부분 전술이 아닌 1, 2선 공격진들에게 자유도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매 경기 시원한 공격 축구와 대승이라는 이면에 약점이 가려진 것이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클린스만호가 중동팀과 경기한 것은 사우디 아라비아, 이라크 등 두 차례가 전부다. 이 2경기 모두 답답한 경기력 끝에 1-0으로 승리했다.
중동팀에 대한 예방주사만 맞았을뿐 이에 대한 피드백과 개선은 전혀 이뤄진게 없이 아시안컵 본선에 돌입한 대가를 혹독히 치른 셈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이라크보다 더 약체로 분류되는 바레인, 요르단은 한국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선전을 펼쳤다. 평가전이 아닌 아시안컵과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는 모두가 상대팀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나온다. 그래서 어느 한 팀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이유다.
과연 클린스만호가 대회 초반 드러난 문제를 잘 파악하고, 남은 말레이시아와의 3차전과 토너먼트에서 달라진 경기력을 선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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