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무늬로 마음 사로잡는, 환상적인 가창오리 군무

박향숙 2024. 1. 2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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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새를 품어주는 군산 금강호와 성산 나포 십자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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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숙 기자]

겨울풍경이 아름다운 여행지로 매년 떠오르는 곳 중 하나가 군산에 있다. 성산면 나포십자뜰 앞 금강하구변으로 찾아온 겨울진객 가창오리 쉼터다.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남편 덕에 매년 이 철새손님들에게 눈인사 꽤나 하고 다니며 수십만 마리가 일제히 하늘에서 그려내는 환상적인 춤동작을 보고 싶어서 마음이 출렁거린다. 

가창오리(Sibirionetta formosa)는 오리 속의 철새이다. 겨울이면 북방 한계지인 시베리아동부 캄차카반도에서 출발하여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월동한다. 가창오리 명명설 다양하지만 그들의 비행 시 놀이소리를 들어보면 가히 뛰어난 가수를 뺨칠 정도니 자연계의 가창(歌唱) 선수들이 아닌가 싶다. 매년 한국에서 월동하는 주요 서식지로 군산 금강하구와 충남 천수만,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등이 있다.
 
▲ 가창오리들의 황홀한 비상 십만여 마리의 가창오리가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날다(2023.1월)
ⓒ 박향숙
 
이 오리는 평균 몸길이 35~40cm, 날개길이 21cm의 몸체로서 다채로운 색깔을 띤다. 특히 눈을 시작점으로 얼굴에 나 있는 천연색 줄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대부분의 동물 수컷이 그렇듯, 가창오리 수컷도 몸 전체가 청록색, 노란색, 붉은색, 그리고 검정과, 흰색등의 배합으로 화려하게 이를 데 없지만 암컷은 수수하고 부드러운 갈대빛을 띤다. 

한때는 보호종이었지만 최근 개체수가 증가하여 환경부에서도 2012년 5월에 멸종위기동물 목록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밀렵은 불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전 세계를 통틀어 평균 30여만 마리로 보고되고 있다. 

가창오리는 군집 생활을 하는 습성이 있어서 아름다운 군무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철새전염병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한때 군산에서 금강을 찾는 가창오리를 겨울관광상품으로 시도한 적이 있었다. 거대하게 철새조망대를 설치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시 정책이 있었는데, 이 전염병여파로 정책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는 이도 많다. 그러나 역지사지해 보면 사람의 이기심이 늘 자연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아마 오리들 입장에서 보면 웃음만 나올 일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숫자 상당히 줄어든 겨울철새들 

올해도 전국 주요 습지에 가창오리를 포함한 겨울철새 130만 여마리가 머무르고 있다고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보고했다. 이 보고에 따르면 지난 1월 12일에서 14일, 사흘 동안 전국 주요 철새도래지 200곳에서 '겨울철 조류 동시 총조사(센서스)'를 실시한 결과 겨울철새 96종 130만 2500여 마리가 관찰됐다고 한다. 이는 작년 동월(약 140만여 마리)에 비교하여 상당히 줄어든 수라고 한다.

이들 중 오릿과 조류 중에서도 가창오리 36만 2천545마리, 쇠기러기 15만 7천72마리, 청둥오리 14만 7천79마리, 큰 기러기 10만 9천213마리, 흰뺨검둥오리 9만 851마리 등이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지역별로 보면 금강호에서 발견된 겨울철새가 36만 5천여 마리로 가장 많고 그중 군집성이 강한 가창오리가 95% 정도라고 보고한 글을 읽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창오리 군무를 기다리며 나포뜰(군산 성산면 3km에 달하는 농경지로 금강호와 마주하고 있다) 앞쪽과 서천마을 쪽을 몇 차례 돌아다녔다. 가창오리는 오릿과 에서 쇠오리 다음으로 몸체가 작아서 군집을 하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이 노출되는 새다. 또한 적의 움직임에 매우 민감하여 경계심이 강하고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먹이 섭취 후에도 강물 한가운데에서 휴식을 취하며 노닌다. 

이런 생태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진 한 장 찍겠다고 떼를 지어 와서 소란을 피우니 가창오리가 그 환상적인 군무를 가까이서 보여줄 리가 없다. 말 그대로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그들에게 마음의 덕과 예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런 그들이 작년 이맘때쯤 먼저 손을 내밀며 나를 환대하였으니 가창오리들의 춤사위를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작년에 오리의 군무를 한번 보고 나서 원도 한도 사라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에 종종 인사차 그들을 만나러 나간다. 그곳에 가면 뜻밖에 다른 겨울철새들도 가득하다. 얼마 전에는 사교성이 좋은 쇠오리들의 장난치는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서 넋 놓고 그들의 수다를 오랫동안 들었다.
 
▲ 가창오리의 벗, 쇠오리들의 놀이 호수 가운데는 가창오리, 언덕 경계에는 쇠오리. 새들의 성격이 다채롭다
ⓒ 박향숙
가창오리와 다르게 쇠오리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듯하다. 괜스레 나도 그들의 놀이 속에 끼어서 마음속으로 호각을 불어준다. 풀밭에 올라와 일제히 달리기 신호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내 마음의 호각소리를 들려주면 신기하게도 그들은 강물 위로 미끄럼 타듯 내려가며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해 준다. 이심전심이 통하는 순간이다. 

금강호에 둥지를 튼 가창오리는 1월 말경 고향 시베리아반도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시작한다. 귀향길에 충남의 삽교호에서도 머물고 일부는 군산보다 더 아래 지역인 영산강에서 쉬어가기도 한다고 들었다. 새들의 귀향시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깨에 고성능 카메라를 메고, 갈대숲에 서서 몇 날며칠을 서성거린다. 가창오리들의 멋진 군무비행사진을 한 장이라도 찍고 싶어 행운을 기다리는 것이다. 

조류전문가이자 군산 새만금생태조사단 단장인 오동필 씨의 말에 따르면, 시베리아를 포함해 러시아 전역의 호수에 퍼져있는 오리들이 때가 되면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따뜻한 남쪽, 그중에서도 우리 한국을 찾는 그들은 분명 우리나라와 기이한 인연이 있을 거라고 했다. 아마도 그 증표 중의 하나가 가창오리 머리부터 이어지는 태극문양의 무늬가 아닌가 싶다며 애정 어린 웃음을 보였다. 
 
▲ 비상을 위한 예열작업에 한창인 가창오리 궂은 비 속에서 결국 비상하는 모습을 놓치고 돌아와서 아쉽다(2024.1.21)
ⓒ 박향숙
지난 21일에도 가창오리들이 저녁밥을 먹으러 비행할 시간에 맞추어 갔지만 비 오는 날씨에 한 시간을 기다려도 그들은 비상하지 않았다. 정찰을 나간 선발대가 구름에 막혀 늦게 오는지도 모른다며, 감기로 고생하는 나를 뒤돌아서게 했다. 그래도 오늘은 더 가까이, 더 많은 수의 오리들이 비상을 위해 부지런히 예열하는 모습을 가득 담았다. 특히 거대한 무리의 끝자락을 따라 노니는 새끼오리들이 한 자락 바람결에도 놀란 날갯짓으로 호들갑 떨며 이내 부모 품으로 찾아드는 모습은 애가 타도록 아름다웠다. 
우리가 할 일 중 첫째는 철새에 대한 미덕을 쌓는 일이다. 조망할 때의 도리를 미리 익혀 그들에게 위협의 존재가 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또한 가을에 낙곡하나 없이 다 싹쓸이하는 현대농업의 기계들이 철새들에겐 참으로 무정할 터이니 일부러 곡식을 놓아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평화롭게 풀씨나 낙곡을 먹으며 금강호에서 따뜻한 겨울을 지내고 돌아가도록 공존과 나눔의 마음을 베풀길 바랄 뿐이다.
 
▲ 가창오리의 군무 세상에서 가장 큰 붕새로 변신한 가창오리군무(2023.1월)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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