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조규성, '2002년 설기현'처럼 다시 살아날까

양형석 2024. 1. 22. 09: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3 아시안컵] 조별리그 2경기서 결정적 기회 놓친 한국의 주전 스트라이커

[양형석 기자]

 20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2차전 요르단과 한국의 경기. 대표팀 조규성이 중거리 슛을 시도하고 있다. 2024.1.21
ⓒ 연합뉴스
 
64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지난 20일 요르단과의 조별리그 E조 2번째 경기에서 2대 2로 비겼다. 1승 1무가 된 한국은 요르단과 똑같이 승점 4점을 기록했지만 5득점 3실점으로 6득점 2실점의 요르단에게 골 득실에서 뒤진 E조 2위가 됐다. 이제 한국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려면 오는 25일 말레이시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대승을 거둔 후 요르단과 바레인전의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미 승점 4점을 확보한 만큼 한국이 16강 진출을 걱정해야 할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당초 한국의 조별리그 목표는 요르단전까지 2승을 거두고 일찌감치 조 1위를 확정한 후 말레이시아전에서 로테이션을 가동하며 토너먼트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올랐던 FIFA 랭킹 23위 대한민국이 아직 월드컵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FIFA 랭킹 87위 요르단을 상대로 고전 끝에 무승부를 기록한 것은 졸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특히 한국은 조별리그 2경기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 조규성(FC미트윌란)이 몇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날리며 힘을 잃었다. 조규성은 바레인전에 이어 요르단전에서도 좋은 기회에서 유효 슈팅조차 만들지 못했다. 일부 축구 팬들은 조규성의 SNS를 찾아가 도를 넘는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현재 조규성이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고전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2002 월드컵의 설기현이다.

조별리그 부진, 16강전 동점골로 날렸던 설기현

이동국, 김은중(수원FC) 등 또래 스타들과 함께 동 나이대 최고의 유망주로 불리며 1999년 U-20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인 설기현은 2000년 벨기에 리그의 로열 앤트워프FC로 이적했다. 벨기에리그 이적 후 부상으로 시드니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설기현은 2000-2001 시즌 27경기에서 11골을 기록하며 차범근(분데스리가 레전드 네트워크 앰버서더)에 이어 유럽리그에서 두 자리 골을 기록한 역대 두 번째 선수가 됐다.

설기현은 2001년 벨기에리그의 명문 RSC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했고 2001년 9월에는 한국선수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187cm, 82kg의 당당한 체격에 양발을 사용할 줄 알고 유럽리그 경험까지 갖춘 설기현은 거스 히딩크 감독(PSV 에인트호번 기술고문)의 눈에 들어 2002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선발됐다. 설기현은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기록하면서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으로 낙점됐다.

하지만 설기현은 2002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축구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왼쪽 측면공격수로 출전한 설기현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단 하나의 공격포인트도 기록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과의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는 좋은 득점기회를 수 차례 무산시키기도 했다. 안정환의 극적인 동점골과 최용수의 독수리슛(?)에 가려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이날 설기현이 한두 번만 기회를 살렸어도 한국은 여유 있게 승점 3점을 추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기현은 조별리그의 아쉬움을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한 번에 날려 버렸다. 설기현은 0대 1로 뒤지며 패색이 짙던 후반 43분 이탈리아 수비를 맞고 흘러나온 공을 왼발로 차 넣으며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다. 설기현의 골에 힘 입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간 한국은 연장 후반에 터진 안정환의 골든골로 월드컵 3회 우승에 빛나는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설기현은 조별리그에서의 부진을 가장 중요할 때 단 한 방으로 털어 버렸다.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린 설기현은 2004년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EFL 챔피언십 울버햄튼 원더러스FC로 이적했다. 울버햄튼에서 두 시즌 동안 10골 12도움을 기록한 설기현은 2006년 7월 승격팀 레딩FC로 팀을 옮기면서 박지성과 이영표에 이어 한국인 3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레딩과 풀럼FC를 거친 설기현은 2008-2009 시즌까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며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이 필요한 조규성

안양공고와 광주대 시절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다가 대학 2학년 때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한 조규성은 2019년 FC안양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첫 해부터 36경기에서 14골 4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2 베스트11에 선정된 조규성은 2020년 1월 K리그 명문구단 전북현대 모터스로 이적했다. 전북에서의 첫 시즌 34경기에서 8골 3도움을 기록한 조규성은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천 상무FC에 입대했다.

상무에서 활약한 2년 동안 51경기에 출전해 21골 7도움을 기록한 조규성은 2021년 8월 벤투호에 처음 발탁됐고 꾸준히 대표팀에서 활약하다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월드컵 본선 데뷔전을 치른 조규성은 가나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0대 2로 뒤진 후반 13분과 16분 두 번의 헤더골을 터트리며 월드컵 단일경기에서 멀티골을 터트린 최초의 한국 선수로 등극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꾸준히 유럽으로의 이적 루머가 들리던 조규성은 작년 7월 덴마크 리그의 미트윌란으로 이적했다. 조규성은 미트윌란에서도 17라운드까지 8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 잡았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부임 후에도 꾸준히 대표팀에 소집돼 한국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그리고 카타르에서 열리는 2023 아시안컵은 조규성이 자신의 주가를 한 번 더 끌어 올릴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하지만 조규성은 조별리그 2경기에서 한국 축구의 원톱 스트라이커로서 기대했던 활약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조규성은 15일 바레인전에서 전반 29분 이재성((FSV 마인츠 05)의 땅볼 크로스를 허무하게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조규성은 20일 요르단전에서도 전반 종료 직전 이기제(수원삼성 블루윙즈)의 중거리슛에 이어진 세컨볼 기회에서 시도한 슛이 원바운드 후 공중으로 뜨고 말았다. 이 골이 들어갔다면 한국은 2대 2 동점으로 후반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역대 최고의 공격진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원톱 스트라이커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는 조규성과 국가대표 경험이 부족한 오현규(셀틱FC) 정도 밖에 없다. 물론 주장 손흥민(토트넘 핫스퍼FC)을 최전방에 배치할 수도 있지만 현재 한국에게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조규성이 부진을 씻고 멋지게 부활하는 것이다. 조별리그에서 큰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 조규성은 22년 전의 설기현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빛날 수 있을까.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