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캐릭터연필·예술가연필…3000여 자루가 써낸 연필의 추억
연필은 연필심과 나무 두 가지의 단순 조합으로 탄생한 소소한 도구이지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표현의 수단입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해주고 잊기 쉬운 생각을 검은 글씨로 구체화해 기억하기 쉽게 돕죠. 시대가 변해 디지털 매체에 주인공 자리를 내줬지만 누군가에게 연필은 여전히 소중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요.
강원도 동해시에는 국내 최초 연필 테마 박물관 ‘연필뮤지엄’이 있습니다. 묵호역에서 5분 거리, 논골담길과 묵호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동해의 랜드마크 중 하나죠. 영국에서 유명한 ‘더웬트 연필박물관’을 벤치마킹한 연필뮤지엄은 동해시가 건물을 건립해 유치한 것으로, 이인기 대표가 30여 개국 100여 개 도시를 다니면서 수집한 다양한 테마의 연필 3000여 점이 전시됐어요.
이 대표는 연필뮤지엄을 설립한 이유로 “우리나라는 소장하는 물건들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이 좀 적어요. 같이 나누며 즐기고 보자는 의미로 만들게 됐죠”라고 밝혔습니다.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자극이 되거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드러냈죠. 현재 소장한 연필은 1만 자루가 넘는다고 했어요. “전시장에 있는 연필의 2배가 넘는 연필이 수장고에 있어요. 전시 공간이 작은 게 너무 아쉽습니다.”
흑연이 연필로 탄생하기까지의 제작 과정, 역사에 남아 있는 연필의 기록, 해외 유명인들이 사랑한 연필 등 연필의 모든 것을 담아낸 연필뮤지엄은 세계 여러 나라의 독특하고 스타일리시한 연필을 직접 보고 느끼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합니다. 필로티 구조의 2층 입구에 들어서니 천장에 매달린 연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박물관 관람 티켓도 귀여운 연필 모양이라 소장 가치가 있죠.
먼저 ‘캐릭터실’로 들어가니 전 세계 캐릭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월트 디즈니’의 캐릭터가 담긴 연필들을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 연필들이 전시돼 있었어요. ‘예술연필실’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현대미술관·메트로폴리탄·모마·테이트모던 등 세계적인 뮤지엄, 가우디·앤디워홀·피카소 등 예술가 갤러리에서 제작한 창의적인 디자인의 연필들을 만났죠. 유명 브랜드별 연필 디자인도 시선을 모읍니다. 많은 기업과 브랜드는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한 자루의 연필에 녹여 자신만의 이미지를 드러냈어요.
전시장에선 다양한 블랙윙 연필도 볼 수 있죠. 평생 완벽한 연필을 찾았던 『에덴의 동쪽』 작가 존 스타인벡이 인생 최고의 연필로 택한 것이 바로 블랙윙입니다. 그는 블랙윙 602를 두고 “지금껏 써본 것 중 최고, 값이 세 배는 더 비싸지만 검고 부드러운데도 잘 부러지지 않는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죠. 블랙윙은 심이 진하고 단단한 편이지만 종이 위를 활강하듯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매력을 가졌어요. 몸통 끝에 달린 납작한 모양의 지우개를 분리할 수 있고 리필도 가능해 소장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죠.
최초의 연필은 1560년경 이탈리아의 베르나코티 부부가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나무막대의 속을 파고 흑연 심을 끼워 사용했죠. 1795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에 있던 니콜라 자크콩테는 흑연에 점토를 섞어 오늘날과 같은 연필을 만들었어요. 2층 바닥에서부터 3층 천장까지 꿰뚫은 대형 연필을 끼고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연필의 탄생과 역사, 제작 과정 등 다양한 이야기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연필이 노란색이 많은 이유, 연필은 왜 육각형일까, 연필 글씨가 지워지는 이유, 지우개 달린 연필은 왜 만들었을까, 100년 지난 연필 글씨는 복원될 수 있을까’ 등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요.
3층에는 연필을 직접 만져보고 글씨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포스트잇에 저만의 추억을 남긴 흔적들을 벽 가득 붙여둔 게 인상적이죠. 연필의 단짝친구인 연필깎이도 우리에게 익숙한 디자인부터 고풍스럽고 빈티지한 제품까지 잔뜩 전시됐어요. 영상실에서는 6B·4B·2B와 HB·2H 연필로 그린 선을 모아 움직임을 표현한 영상을 볼 수 있죠. 굵게 스윽~ 가늘게 사악~ 연필심의 강도에 따라 그어지는 선과 소리도 다릅니다.
딕슨, 에버하르트 파버, 스테들러 등 빈티지 연필회사의 역사와 제품들을 살펴보며 옆으로 이동하다 보면 존 스타인벡, 로알드 달, 빈센트 반 고흐 등 명사의 인생 연필이 눈에 들어오죠.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나는 파버카스텔 없이는 어떤 것도 디자인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파버카스텔을 애용했다고 해요. 빈센트 반 고흐, 괴테도 파버카스텔을 사랑했죠. 이밖에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 건축가 승효상, 작가 김훈 등이 창작할 때 쓰던 연필과 원고지 등도 전시돼 있습니다. 전시장 중앙에는 세계 곳곳에서 수집된 다양한 연필을 빈티지·캐릭터·여행과 도시·디자인 등으로 분류해둬,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이 대표는 “연필을 좀 아시는 분은 빈티지 연필 쪽을 좋아하고, 잘 모르는 분들은 명품 연필이나 특이한 연필들을 보는 걸 좋아하시더라고요”라며 각자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공간도 다 다르다고 얘기했죠. 무엇보다 박물관 곳곳의 디테일을 놓치지 말고 천천히 들여다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전시장이 크지 않은데도 디테일을 안 보고 가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설명이 없는 것 같지만 웬만한 부분들은 다 설명이 있어요. 꼼꼼히 천천히 보며 설명도 다 읽어보시면 더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겁니다.”
연필은 단순한 필기도구를 뛰어넘어 고유한 스토리를 담고 있죠. 또 누구나 쉽게 수집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요. 연필을 수집하며 느꼈던 행복과 연필을 손에 쥐고 무언가를 표현했을 때의 뿌듯함, 추억들이 그 가치를 높이죠. 가족과 동해안으로 여행을 간다면 연필뮤지엄을 방문해 연필에 담긴 많은 이야기와 감동, 색다른 모습을 만나보세요.
■ 연필뮤지엄
「 장소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240-20번지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권 발급 가능), 매주 화요일 휴관
관람료 성인 및 청소년 7000원, 어린이 4500원
」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한은정·연필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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