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세계 교회 역사] “죽음아, 네가 죽으리라”
어느덧 1월 하순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대한 추위가 늦게 도착했다고 합니다. 강추위로 일주일을 시작합니다. 따뜻하고 건강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 세계 교회 역사는 순교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서 공인 되기 직전 가장 큰 박해가 있었는데요. 그때 죽임을 당한 사라고사의 빈켄티우스 이야기입니다.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아 죽는 사건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도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사망하고 집과 고향에서 추방됩니다.
기독교는 순교의 피 위에 더 굳건히 세워진다고 하지요.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날마다 죽고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걷는 삶입니다. 그러니 삶이 고통스럽다고 힘들다고 불평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니까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 있으나 죽으나 유일한 위로는 ‘나의 몸과 영혼이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겠습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의 원래 출처가 된 시이자 설교문을 쓴 영국의 존 던과도 만나보십시오.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시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고백과 기도 역시 오늘 우리에게 담대함과 위로를 선사합니다.
존 폭스의 ‘순교자 열전’에 따르면 당시 다키아(현 루마니아 지역) 출신 총독이 사라고사의 주교였던 발레리우스와 부제 빈켄티우스를 체포해 감옥에 가뒀습니다. 이후 발레리우스는 추방됐고 빈켄티우스는 고문을 당해 팔다리의 탈구를 당했고, 살은 갈고리에 찢긴 상태로 아래에서는 불이 타오르고 위에서는 살을 파고드는 대못이 달린 석쇠 위에 올려지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런 격심한 고통도 그의 영혼을 파멸시키거나 결의를 꺾지 못했습니다고 합니다. 다시 감옥에 수감된 그는 어두운 지하 감방에 투옥됐는데 그 감방은 날카로운 부싯돌과 깨진 유리조각이 깔려 있는 고통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이 같은 박해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시절에 일어난 일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 불과 9년 전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아내와 딸은 모두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따라서 당시엔 교회의 평화가 보장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군대에서 시작됐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양자이자 4명 황제 중 한 명인 갈레리우스가 그리스도인을 증오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신자들이 군에 입대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많은 신자들은 군인으로 자원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기독교인들이 입대를 거부하고 병영을 이탈하자 처형됐습니다.
군대의 사기를 위해 갈레리우스는 군대에서 모든 기독교인들을 쫓아내도록 디오클레티아누스를 종용했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기독교인 병사에게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갈레리우스가 담당했던 다뉴브강 주둔군 안에서는 상당수 병사가 처형됐다고 합니다.
이런 사건이 있은 후 갈레리우스는 기독교인들을 증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303년 2월 23일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인에 대한 새로운 칙령을 반포했습니다. 목표는 고위 관직에서 기독교인 축출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당국은 기독교 건물과 서적도 파괴했으며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고문하고 심지어 처형까지 집행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실 내 기독교인 신자에게 이교 신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명령했고 당시 수상이었던 도로테우스는 순교의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제국 전체에 걸쳐 교회와 경전들이 불탔으며 모든 기독교인 지도자에 대한 체포와 신자들의 제사를 명령했습니다. 교회 역사가들은 당시 박해가 초대 교회 이래로 가장 잔인하고 혹독한 박해였다고 평가합니다.
핍박의 방법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고 폭스는 전합니다. 고문대와 채찍, 단도와 십자가, 독약 등이 동원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체 일부분이 잘리거나 뽑혔고 팔다리가 심하게 탈구됐으며 대중 앞에서 뜨겁게 달궈진 쇠로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북아프리카 교회의 한 비문에는 ‘신성한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안의 법 아래서 고난을 당한’ 34명의 남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아시아의 프리기아에서는 공동체 전체가 전멸했고 이집트에서는 8년 동안 무자비한 탄압이 이어졌으며 콥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통치는 ‘순교자의 시대’라는 칭호를 얻었다고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CT)는 평했습니다.
순위 |
국가 |
1 |
북한 |
2 |
소말리아 |
3 |
리비아 |
4 |
에리트레아 |
5 |
예멘 |
6 |
나이지리아 |
7 |
파키스탄 |
8 |
수단 |
9 |
이란 |
10 |
아프가니스탄 |
11 |
인도 |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 주에서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한 낙태를 불법으로 보고 처벌했습니다.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의 노마 맥코비라는 여성이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다고 주장하며 낙태 수술을 요청하게 되는데, 임신부의 생명이 위독하지 않고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했습니다. 이에 맥코비는 변호사 린다 커피, 사라 웨딩턴을 대리로 해 텍사스주를 상대로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또 소송 피고인이었던 댈러스카운티 지방검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의 이름을 따 소송의 명칭이 ‘로 대 웨이드(Roe v. Wade)’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지방법원을 거쳐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 이 소송은 대법원에서 1973년 1월 22일 7대 2로 낙태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낙태를 처벌하는 대부분 법률이 미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임신한 여성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시기인 출산 직전 3개월 전까지는 어떤 이유로든 임신 상태에서 벗어날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로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각 주와 연방 법률들은 폐지됐습니다.
그런데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2년 6월 24일, 임신 15주 이후의 임신 중지를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에서 합헌 판결을 내리면서 미국에서 반세기 동안 헌법으로 보호받던 여성의 낙태 자기결정권이 폐기됐습니다. 이 판결은 73년 당시 여성의 낙태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뒤집고 낙태 문제는 각 주가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 직후 정치권의 거센 반발은 물론 미국 주요 도시에서는 격렬한 찬반 시위가 벌어지면서 양측의 충돌이 확산됐습니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50개 주중 21개 주가 낙태를 완전히 금지하거나 임신 초기부터 금지하고 있습니다. 낙태권 쟁점은 최근 선거에서도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는 보수 지역인 오하이오주에서 낙태 권리를 주 헌법에 명기하는 개헌안이 주민투표를 통과했으며 낙태권이 중요 쟁점이었던 버지니아주 의회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존 던은 영문학사상 언어유희를 가장 많이 해 그의 시와 산문을 이해하기가 까다로웠습니다. 그래서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인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정치가로 입문하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1601년 앤 모어와의 비밀 결혼으로 몰락해 생의 밑바닥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중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성직자가 됐습니다.
던은 ‘노래와 소네트’ ‘거룩한 소네트’ 등으로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설교자와 산문 작가로도 더 유명했습니다. 대표적 산문이 ‘위급한 때의 기도문’(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인간은 섬이 아니다’ 등의 유명 구절을 담고 있습니다. 위급한 때의 기도문은 우리 말로 ‘인간은 섬이 아니다’(나남)로 번역돼 있으며 부제는 ‘병의 단계마다 드리는 기도’입니다.
던은 이 산문집에서 자신은 세 번 태어났다고 고백합니다. 첫째는 자연적 태생, 둘째는 영적 탄생으로 사제가 됐으며 셋째는 병에 걸렸다 나음으로써 다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던은 영국 성공회 교회인 세인트 폴 대성당의 수석사제가 되었고 1631년 사망할 때까지 그 지위에 있었습니다. 던이 수석 사제로 목회하고 있던 시기에 딸 루시가 18세의 어린 나이에 죽었습니다. 또 페스트가 유행하던 1624년 ‘비상시의 기도문’(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으로 병의 진행 과정과 내면세계를 반영한 23편의 글을 기록했습니다. 우리 말로는 ‘인간은 섬이 아니다’로 번역돼 있습니다.
던은 전염병을 피하는 대신 교구민을 지키기로 하고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오후 10시까지 성경을 연구하며 이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려 힘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페스트의 증상인 반점이 생깁니다. 이제 던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양떼가 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지금 어떻게 저를 쓰러뜨립니까.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인간을 지켜보는 일을 즐깁니까.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입니까.”
던은 시시각각 찾아오는 고통과 죽음을 저주하면서도 성경 인물인 욥과 예레미야, 다윗의 시련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구합니다. 의사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염려하고 전염의 위험 탓에 가족이나 친지와 떨어져 고립될 것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두려움에 떨던 던은 하나님의 궁극적 뜻이 징계가 아닌 자비임을 발견하고 평안을 되찾습니다.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가 남긴 기록들은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합니다. “가난과 부족함이 있어야 감사의 덕을 발휘할 수 있고 어려운 상황에 몰려야만 인내의 덕을 발휘할 수 있다” “모든 인류는 같은 저자가 쓴 한 권의 책 속에 산다. 한 사람이 죽을 때는 책에서 한 장이 찢겨나가는 게 아니라 그 장이 더 나은 언어로 번역된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7편에 등장하는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종소리는 죽은 자를 위한 교회의 조종(弔鐘) 소리를 말합니다. 던은 병상에서 교회의 종소리를 듣습니다. 당시 런던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교회에서 종을 치면서 그를 애도했습니다. 던은 “그 종소리가 누구를 위한 것이든 그 종소리는 죽은 자뿐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종소리도 될 것이다. 종소리는 그 종이 자신을 위하여 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하여 울린다’고 썼습니다.
이어 “어떠한 인간도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의 ‘섬’일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바다에 떠있는 ‘대륙’의 일부이다. 하나의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사라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진다. … 당신 자신의 소유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한 인간의 죽음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니 나는 인류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고 하지 마라. 그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던이 이 기도문을 쓴 것은 죽음 앞까지 다가갔다가 겨우 살아남았을 때였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죽음을 깊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던은 기도문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죽음아, 뽐내지 마라/ 어떤 이들은 너를 강하고 두렵다고 했지만 너는 그렇지 못하나니/ 한숨 자고 나면 우리는 영원히 깨어나 더 이상 죽음은 없으리라/ 죽음아 네가 죽으리라” 라고 담대하게 노래합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0~57)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도 주인공 로버트 조던이 결국 죽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어코 그의 미션을 완수합니다. 존 던의 시처럼 조던도 소설 속에서 “죽음은 다만 의무를 이행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죽음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죽음보다는 맡은 임무를 완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182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7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의사, 모친은 상인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모스크바 사립 기숙학교를 졸업, 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에서 공부하고 공병국에 근무하다 퇴직했습니다.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을 발표합니다. 작품은 도시 뒷골목에 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비극과 그들의 심리적 갈등을 그려낸 중편소설로서 사실주의적 휴머니즘을 기치로 내걸었던 당시 비평계의 거물 비사리온 벨린스키로부터 호평을 받고, ‘새로운 고골’이란 호칭을 안깁니다.
1849년 반정부 비밀 조직인 페트라셉스키에 관여해 정치적 범법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러나 처형 직전 황제의 특사로 징역형으로 감형, 시베리아로 유형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의 옴스크감옥에서 4년을 지내면서 공상적 혁명가에서 신비주의자로 변모, 석방 후 옥중 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죽음의 집의 기록’ ‘상처받은 사람들’을 발표해 문단으로 복귀합니다.
이후 수년간 농노해방 뒤 야기된 정치적 반동과 사회 변화가 도래했고 1864년 아내와 형이 죽는 등 개인 생활에도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사건의 회오리 속에서 그의 정신적 고뇌가 담긴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출간됐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문학적 전환점이 됐으며 ‘죄와 벌’로 시작되는 도스토옙스키 창작 경력의 제2기를 예고합니다.
이후 소설은 작가의 위대한 소설인 관념적 소설들로 이어집니다. 죄와 벌을 비롯해 ‘도박자’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탄생합니다.
[참고 서적]
<초대교회사> 유스토 곤잘레스 지음/서영일 옮김/은성
<순교자 열전> 존 폭스 지음/홍병룡 옮김/포이에마
<인간은 섬이 아니다> 존 던 지음/김명복 옮김/나남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2>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김욱동 옮김/민음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2·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김연경 옮김/민음사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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