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北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

2024. 1. 22.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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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8기 9차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했고,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남한을 '불변의 주적'이라고 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있어 우리가 국제사회나 다른 국가에 비해 더 강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중국이나 러시아가 탈북자를 강제 북송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에도 민족이라는 특수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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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8기 9차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했고,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남한을 ‘불변의 주적’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이러한 노선 변화를 놓고 우리도 앞으로 북한을 같은 민족보다는 별개 국가로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김정은의 주장은 남북 공존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며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더 우월하다는 착각에서 나온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김정은이 바라는 것은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이고 이는 남북한이 한 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우리 영토를 ‘수복’하겠다고 공언한 논리적 모순에서도 잘 드러난다.

헌법은 우리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3조)로 명시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3조는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남북 간 거래는 ‘민족 간의 내부 거래’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만 간주했다면 유엔 동시 가입이나 남북 정상회담 자체가 성사될 수 없었다. 이처럼 이미 우리는 남북관계에서 국가급 행위자 관계와 민족 개념을 동시에 적용해 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여전히 민족 개념은 유효하다. 일반적 국가 관계에서 자신들의 체제나 이념을 다른 국가에 전파하려는 것은 내정간섭 논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있어 우리가 국제사회나 다른 국가에 비해 더 강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중국이나 러시아가 탈북자를 강제 북송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에도 민족이라는 특수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우리의 민족 개념은 북한의 기만적 ‘민족’팔이와는 달라야 한다. 북한은 그동안 수시로 민족이라는 단어를 앞세웠지만 내심 이것은 북한의 사상에 동조하는 이들만을 칭하는 계급적 민족 개념을 담고 있었다. ‘민족 공조’는 우리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그들의 주장에 호응하라는 ‘통일전선’의 동의어였다. 민족 개념이 우리 사회 일부에 의해 나약한 평화를 설파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민족 개념과 대북 ‘억제(deterrence)’가 자연스럽게 조화돼야 한다. 완벽한 대비태세를 통해 북한의 핵 집착을 깨뜨려야 대화나 협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민족 개념은 북한 주민과의 소통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 과거 국권 상실의 암울한 시대에 한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민족 개념이었지만, 분단 이후 남북한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우리의 사상과 체제를 북한 주민들이 누릴 기회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 바로 김정은과 북한 권력엘리트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제는 북한 주민에 대한 정보 제공의 확대와 인권 의식의 함양을 통해 진정한 민족 개념이 유린당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각성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민족 개념은 개방과 협력이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 사회의 다문화 가정 아동이나 부모의 인종적 배경이 다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 ‘잡종’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폐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와는 다른, 포용적 민족 개념을 통해 세계와 함께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 같은 민족으로서의 북한, 국가급 행위자로서의 북한을 다루는 일은 결코 상반된 접근이 아니다. 현존하는 정치적 실체로서 북한을 다루어가고 국제적인 차원에서 북한의 일탈을 지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민족적 견지에서 북한 체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것 역시 자유민주주의 기반의 통일을 위한 필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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