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억’ 소리 저출산 대책

신준섭 2024. 1. 22.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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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 경제부 기자

여야, 억대 지원금 경쟁
재정 부담에다 이민자에
수혜 쏠릴 가능성 등 우려

‘아이 낳으면 ○억원 지원.’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이런 얘기는 황당무계한 얘기였다.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 때 허경영 당시 경제공화당 대선 후보가 꺼낸 ‘결혼 수당 1억원 지급’ 공약은 조롱거리 취급을 받았다. 결혼하고 애를 낳는 일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인식이 사회를 지배한 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선 당시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1.26명이었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이 2022년 기준 0.78명까지 떨어진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부터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세법개정을 통해 신혼부부의 경우 1인당 1억원씩 증여세를 공제하기로 했다. 기존 공제액(10년간 5000만원)을 포함하면 1인당 1억5000만원씩 최대 3억원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증여가 가능해졌다. 국토교통부는 ‘신혼부부 특례대출’ 카드를 꺼내들었다. 신혼부부가 출산하면 1~2%대 저금리로 최대 5억원까지 대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총선을 앞둔 여야도 저출산 극복과 관련한 ‘억대 지원 경쟁’에 뛰어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선수를 쳤다. 민주당은 지난 18일 저출산 대책으로 현금성 지원책을 내놨다. 모든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로 가구당 1억원을 대출해주고 첫째를 낳으면 무이자, 둘째를 낳으면 원금 50% 감면, 셋째를 낳으면 전액을 감면하겠다고 밝혔다. 여당도 당론은 아니지만 비슷한 공약이 나온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6일 SNS를 통해 ‘헝가리 모델’을 제안했다. 결혼 시 2억원을 20년간 1% 수준의 저금리로 대출해주고 자녀를 1명 낳을 때마다 원금의 3분의 1씩 탕감해주자는 아이디어다.

경쟁적인 억대 지원책은 방향만 보면 틀렸다고 하기 힘들다. 합계출산율이 대부분 1.5명을 넘는 유럽연합(EU) 국가들은 현금성 지원 정책으로 양육비를 경감해 출산율 반등을 이끌었다. 한국이 이를 벤치마킹했다고 봐야 한다. 근로정책 흐름과 비슷하기도 하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확대 등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근로 환경을 만들어 온 EU 사례가 한국에도 속속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는 세제가 아이를 둔 가정에 초점을 맞춘 EU와 같은 방향성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연말정산 시 다인 가구보다 1인 가구가 세금을 더 많이 내도록 해 소위 ‘싱글세’로 불렸던 세제가 도입된다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한국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다만 이런 정책 방향이 성공으로 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려되는 부분이 세 가지 정도 눈에 띄는 탓이다. 우선 지속적인 재정이다. EU 국가 근로자들은 한국 근로자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낸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중 개인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57%다. 한 해 전이기는 하지만 2021년 기준 OECD 평균(8.32%)보다 낮다. 한국인 개개인이 내는 소득세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저출산 지원을 위한 복지 재정만 늘릴 경우 향후 재정이 이를 감당해낼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이민 정책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 정책의 수혜자가 이민자들로 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숙제가 될 수 있다.

가장 큰 우려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다. 과연 돈을 많이 준다고 애를 낳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크다. 한국개발연구원의 한 박사는 인스타그램 유행 이후 한국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내가 얼마나 잘사나’ 보여주는 식의 인스타그램이 2030세대 주류가 되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정부 지원책을 꺼내드는 게 맞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정말 뭐가 문제인지 누구도 답을 모르는 상황인 만큼 더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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