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림택권 (5) 인민군으로 징집… 총도 없이 행군만 하다 몰래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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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열여섯 살 나이로 이제 막 중학생 티를 벗으려던 나와 친구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그해 8월부터 9월까지 경북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벌어진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로 평가받는다.
사실 6·25전쟁 발발 직전부터 전쟁을 준비하는 비밀단체가 있었다고 한다.
6·25전쟁이 터진 직후 징집된 그 친구는 이후 소식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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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상처 내고 할미꽃 독 바르는
누님의 극약처방에도 불구 결국 징집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열여섯 살 나이로 이제 막 중학생 티를 벗으려던 나와 친구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그해 8월부터 9월까지 경북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벌어진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로 평가받는다. 이 전투에서 북한 인민군은 거의 몰살됐다고 한다. 당시 전투는 대한민국 국군이 대구로 진출하려던 인민군의 대공세를 저지하고 그 기세를 꺾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영향으로 만 14세가 넘는 북한 남자는 모두 인민군으로 징집됐다.
사실 6·25전쟁 발발 직전부터 전쟁을 준비하는 비밀단체가 있었다고 한다. 훗날 날 ‘택권동무’라 부르던 내 친구도 거기에 속해 있었다고 들었다. 6·25전쟁이 터진 직후 징집된 그 친구는 이후 소식이 끊겼다.
나 역시 징집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징집 통보를 받은 그 날 읍사무소를 찾았다. 하지만 징집 절차가 길어지며 난 일단 귀가 조처됐다. 저녁이 돼서야 20리 정도 떨어진 집에 도착하니 혼인 후 출가해 전도사로 사역하던 누님이 집에 계셨다.
누님은 “택권아, 여기 앉아봐. 이렇게 하면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을 거야”라며 어디선가 할미꽃 뿌리를 가져왔다. 누님은 내 발등을 돌로 막 긁어 상처를 낸 뒤 그 위에 할미꽃 뿌리 즙을 덧발랐다. 발을 붕대로 감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그날은 밤새 발등이 욱신거리며 아파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알고 보니 할미꽃 뿌리에 독이 있어 상처가 덧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날 누님과 함께 다리를 절뚝거리며 읍사무소로 갔다. 당시 징집 담당자는 그런 날 보며 “이놈, 이거 다리가 이런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고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누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난 징집을 피할 수 없었다. 오히려 훗날 남한으로 피난을 갈 때 그 상처 부위가 욱신거려 고생만 했다.
막상 징집이 됐지만 우리에겐 총 한 자루도 쥐어지지 않았다. 낮에는 비행기가 하늘을 까맣게 덮어 소위 융단폭격을 가할 때라 쉽사리 이동하지 못했기에 야산에서 숨어 지냈다. 밤이 되면 정처 없이 행군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같이 징집된 친구와 도망치자고 말을 맞췄다.
우리는 인민군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노렸다. 그런데 그만 내가 소변을 보는 사이 그 친구는 혼자 도망쳐 버렸다. 결국 혼자 몰래 산에서 내려왔다. 낡은 초가집이 보이기에 먹을거리라도 얻을 겸 갔더니 노부부가 살고 계셨다. 나이 탓에 미처 피란을 떠나지 못하셨던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쯤이냐고 물으니 고향에서 불과 걸어서 이틀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게 4개월여 만인 10월 무렵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시 발각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집에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낮에는 인근 수수밭에 몸을 숨긴 채 지내다 밤이 되면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유엔군이 곧 북진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며칠이 지났을까 인민군이 한둘씩 안 보이더니 결국 후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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