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의 아트에콜로지] 예술적 경험으로 태어나는 신 기념비 시대
누군가를 추모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역사적 사건의 기념과 추도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예전의 대형 조각들과 기념관들은 대개 절대 권위를 지닌 종교나 왕권의 상징물이었다. 그들이 지닌 절대 권력과 영향력을 일방적·수직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하지만 요즘 국제적으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으며, 그 도시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 곳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원 혹은 기념비와 같은 공공 미술이다. 추모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과 태도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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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에 대한 관점과 태도 변화
일상 공간서 추모하며 역사 생각
현재를 사는 이들과의 소통 중시
추모 건축, 위로·결속의 힘 지녀
」
대표적인 예로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만든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비 (Holocaust Memorial)가 꼽힌다. 유대인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2005년 베를린의 한복판,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에 설치된 비석 광장이다. 약 1만9073㎡ 부지에 격자 모양으로 놓인 콘크리트 비석 2711개는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관을 바로 연상하게 한다. 특히 비석들 사이로 만들어진 미로의 길은 다소 공포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땅의 중심부로 갈수록 바닥이 가라앉고 점점 높은 비석에 짓눌리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되는데, 당시 유대인이 경험했던 공포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건축가는 설명한다.
여러 가지 논란은 있었지만, 20년 가까이 지나면서 홀로코스트 기념비는 우리 삶의 일부로 들어왔다. 이 공간은 베를린의 최고의 만남의 장소가 됐고, 아이들은 게임하듯 비석 위를 점프해 뛰어다니기도 한다.
희생된 600만명의 유대인에 대한 추모가 단순 과거 기록을 전달하는 박제된 박물관이나 묘지가 아니라, 지친 다리를 쉬어가고 머무르고 사유하는 생생한 생활의 공간으로 나타난 것이다. 유대인의 비극과 아픔을 공간의 상징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지속적인 소통을 통한 암묵적 반성을 드러내는 것 같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1996년 시작되어 2000년 영국 현대미술 작가인 레이첼 화이트 리드가 만든 오스트리아 빈 유덴플라츠의 홀로코스트 기념비가 있다. 작지만(10×7.3×3.8m) 베를린의 대형 프로젝트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된 기념 공간이다. 가스실 하나의 셀 크기로 만들어진 이 방은 읽을 수 없는, 제목도 모르는 책이 담긴 도서관 내부 선반을 주조한 작품이다. 문의 형상이 있지만 들어갈 수 없고, 책이 가득하지만 책의 제목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이 텍스트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름 없는 도서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소 유대인 중심의 해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여전히 동네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추모의 꽃을 가져다 놓는 그러한 일상의 작품이기도 하다. ‘책의 민족’으로 불리는 유대인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자, 분서갱유를 서슴지 않았던 나치의 악행을 상징하는 조각이 이제는 시간을 더해가며 더욱 시적인 장소가 되어간다.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은 뉴욕의 9·11 참사를 기리는 메모리얼 파크다. 21세기의 벽두 2001년에 일어난 이 대형 참사는 2753명의 사상자를 낸 비극이었다. 미국 정부는 이 상처를 치유하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메모리얼 파크 설립을 결정했다. 뉴욕 맨해튼의 3만㎡의 대지에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고 명명된 이 프로젝트의 개념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추모공간을 관통하는 주제는 ‘기억’이다. 이 ‘기억’의 소환을 위해 본 설계를 한 마이클 아라드(Michael Arad) 와 피터 워커(Peter Walker)는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라는 이름의 인공폭포를 세웠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똑같은 크기로 건설된 인공 폭포는 쉬지 않고 흐르도록 설계됐다. 흐르는 물줄기는 눈물이자 생명, 정화, 부활을 상징하는 중의적 개념이다.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 주변 난간에 빼곡히 새겨진 3000여명 희생자의 이름을 보며 ‘기억’의 완성을 체감한다.
추모와 추도의 방법이 변하고 있다. 누군가의 모습을 빼닮게 빚은 조각을 만들거나, 거대한 공공건축과 조형물의 시대는 가고 있다. 아무리 멋진 것을 만든다 해도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 되면 그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은 ‘일상의 공간에서 추모하며 공동체와 역사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과의 소통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가고 싶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중요한 맥락을 제시한다.
도시의 추모 건축은 역사의 사건과 공동체의 상처를 ‘기억’함으로써 시민을 위로하고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힘을 가진다. 예술의 힘이 사람이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하게 하는 것’ 이라면 그러한 예술적 추모의 모습이 이제 우리의 도시에서도 보여져야 하지 않을까.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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