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유죄라도 지지" 80%...'샤이 트럼프'는 더는 없었다 [특파원 리포트]
" "트럼프가 돌아왔다!" "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가 확정되자 축하 파티에 와 있던 지지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파티는 주도(州都) 디모인의 아이오와 이벤트센터의 대형 홀에서 열렸다. 입구에선 번쩍이는 성조기 재킷을 입은 금발 여성들이 초청자를 확인했고, 어린 자녀까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를 맞춰 쓰고 온 가족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미 대선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는 트럼프의 압승(득표율 51%)으로 끝나며, 그의 위세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체감온도 영하 30도 밑으로 떨어진 극한의 날씨였지만, 유세장과 코커스 투표소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몰렸다. 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이들은 더는 '샤이 트럼프(수줍은 지지자)' 아니었다. 상당수가 멀리서 취재하러운 외국 기자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 중 20여 년 전 아이오와로 이사 온 군인 가족 레슬리 커틴, 선거 운동원인 '코커스 캡틴'으로 자원한 브레드 보스테드, 코커스 기간 내내 트럼프 지지 동영상을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는 브랜든 딜리 등을 심층 인터뷰했다. 잇단 '사법 리스크'에도, 동맹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우려에도 어째서 트럼프를 향한 지지자들의 충성도는 그대로인지, 이들과 대화에서 답을 엿볼 수 있었다.
"이미 부자인 트럼프, 그래서 신뢰"
디모인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심프슨 칼리지의 트럼프 유세장에서 만난 보스테드는 "트럼프가 이미 헬기와 제트기, 저택까지 보유하고 있는 부자여서 신뢰한다"고 말했다. 부를 늘리기 위해 정치를 사다리 삼을 필요가 없는 인물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게 무엇인지만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경쟁 후보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공화당의 전통적 '큰 손' 코크 가문 등으로부터 거액의 후원을 받았다. 보스테드는 이를 지적하며 "후원자의 논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후보는 싫다"고 말했다.
커틴 역시 헤일리 후보를 "군산복합체의 친구"라며 "낙태나 국경 문제에 똑 부러진 입장이 없는 어중간한(wishy-washy) 정치인"이라고 비난했다.
아이오와 공화당원들 사이엔 기존 미국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트럼프가 처음 대선에 출마한 2016년만 해도 아이오와에서 트럼프의 가치관에 동의한다는 공화당원은 5%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코커스를 앞두고는 43%나 됐다. 이런 현상은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NBC방송은 "트럼프가 더는 공화당의 납치범이 아니라 공화당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정치분석가 척 토드는 "트럼프의 당이 된 공화당에서 누군가 내부 개혁을 시도한다면 차라리 새로운 보수당을 만드는 게 나을 것"이라고까지 분석했다.
"외교는 트럼프가 잘해"
커틴은 트럼프였기 때문에 북한을 길들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강하기 때문에 북한을 향해 '하지 마, 시도조차 하지 마'라고 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바이든은 약하기 때문에 지금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쏘는 등 도발을 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발생한 이유가 "전 세계가 바이든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트럼프였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허용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트럼프 축하파티에서 만난 딜리는 "트럼프 당선이 한국에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인들에게 이익이 되고, 그래야 전 세계에 이익이 되고 지구에도 평화가 온다는 논리였다.
지지자들은 특히 트럼프의 업적으로 이민자 대책을 꼽았다. 딜리는 바이든 집권 기간 "국경이 개방돼 불법 이민자, 갱단원 등 검증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사람이 이 나라에 넘치게 됐다"면서 "경제적으로도 그의 정책은 재앙이었다"고 말했다.
아이오와 인구에서 이민자 비율은 5% 정도다. 전국 평균이 14% 정도니까 상당히 이민자가 적은 편이다. 그나마 이 지역으로 오는 이민자의 절반은 백인이다.
그런데도 AP통신에 따르면 이번 아이오와 코커스 참가자 10명 중 4명은 '이민자'를 미국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꼽았다. 남부 국경 장벽 설치를 지지하는 이들도 10명 중 9명이나 됐다.
아이오와에서 이럴 정도니 '이민자 때리기'는 앞으로 전국 경선에서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카드다. 트럼프가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헤일리 후보를 굳이 '니키 님라다 헤일리'라고 적으며 인도계 이민자 출신임을 부각하는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재판 받는 모습에 더 충성"
보스테드는 "바이든 정부의 사법체계가 트럼프를 쫓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 마음이 트럼프에게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법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자유를 좋아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따라서 트럼프가 재판을 받는 모습이 뉴스에 나올수록 "지지자들은 더 충성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실제 코커스 직전 실시된 NBC-디모인레지스터 여론조사에서 아이오와 공화당 유권자의 61%는 대선 전 트럼프가 유죄 판결을 받아도 지지 후보 선택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19%는 오히려 트럼프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봤고, 트럼프 지지율이 떨어질 거란 응답은 18%에 그쳤다.
지난 17일, 경선 유세로 한창 바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 남부연방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법정에 출석할 의무가 없는데도 굳이 나와 소란을 일으키다 판사로부터 퇴정 경고까지 받았다. 재판 후엔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것이 조작"이라고 항변했다. 오히려 '사법리스크'를 활용해 앞으로 선거 전까지 법정을 유세장으로 삼을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디모인=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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