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도시재생의 꽃,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바스크 지방의 중심도시, 빌바오의 강변에 물결치는 모양의 금속판 건물이 반짝이고 있다. 미국 건축가 프랑크 게리의 설계로 1997년 개관한 이 건물은 해체주의 건축의 대표작이다. 해체주의는 르네상스 이후 견고하게 구축해 온 이성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해체하여 근본에서 다시 출발하자는 20세기 후반의 문학과 철학의 사조다. 해체주의적 건축이란 직교 좌표체계를 탈피해 부정형의 공간을 만들고, 고정된 관념과 규범을 탈피한 자유분방한 건축을 지칭한다.
3만3000여 개의 반짝이는 티타늄판을 마치 비늘같이 이어붙여 만든 이 미술관은 어찌 보면 항해하는 돛단배와 같고, 하늘에서 보면 활짝 핀 꽃송이 같다. 이 현란한 외관 안에는 19개의 전시장이 있는데, 10개는 사각형의 정형 공간이며 9개는 부정형으로 내부 공간의 변화도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CATIA V3라는 당시 최신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이 임의적이고 복잡한 건물을 설계 시공할 수 있었다.
조선과 철강 중심이었던 빌바오는 급속하게 쇠락하는 도시를 재생시키기 위해 대담한 모험을 선택했다. 빌바오시가 인프라와 건설비용을 전담하고, 뉴욕의 구겐하임 재단이 브랜드와 컬렉션을 제공해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이 탄생했다. 세상에 없는 특이한 건축물로 관광객을 유치해 도시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으려 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개관 3년간 400만의 국제 관광객이 몰렸고 5억 유로의 경제 창출과 1억 유로의 세수가 증대했다.
이른바 ‘빌바오 효과’ 또는 ‘구겐하임 효과’는 전 세계 도시들에 구원의 성공사례가 되었다. 또 하나의 빌바오 효과를 꿈꾸며 랜드마크 짓기와 문화 브랜드 유치에 앞다투었다. 퐁피두 메츠, 던디 V&A, 아부다비 루브르 등 새로운 문화제국주의 양상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예술-과학 도시의 야심을 펼친 발렌시아는 7억 유로의 빚에 시달리고 베를린 등지에 진출했던 또 다른 구겐하임은 폐관했다. 오래 피는 꽃은 드물지만 피지도 못하고 시드는 꽃은 흔하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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