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K 파티’ CES를 바라보며
“이 정도면 서울 코엑스, 일산 킨텍스라고 해도 믿겠다.” 지난 9~1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인 소비자가전쇼(CES) 취재 현장의 기자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다. 삼성, SK 등 국내 대기업과 아마존, BMW 등 글로벌 기업이 모인 LVCC(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와 스타트업들이 모인 유레카 파크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유레카 파크는 마치 ‘K 파티’가 열린 곳 같았다. 한글로 쓰인 한식당 전단지가 눈에 띄었고, 전시장의 절반 정도를 한국 기업과 한국인들이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올해 CES 참가 기업에 한국(772개)은 미국(1148개), 중국(1104개)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스타트업으로 좁혀보면 512개사 참가해 미국(250개), 일본(44개)을 압도했다. 134개 국내 기업이 혁신상을 받았고,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 사티아 나델라가 유레카 파크의 국내 스타트업 부스를 찾아 시선을 끌었다. 유레카 파크에는 지방자치단체와 창업 지원 기관, 대학들이 마련한 부스들이 곳곳에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대구, 광주 등 지자체의 부스가 독일 전체 스타트업이 모인 인근의 ‘독일 파빌리온’보다 큰 규모였다는 점이다. 프랑스나 일본 부스는 독일보다는 컸지만, 국내 공공기관 부스보다 규모가 작았다. 독일과 프랑스, 일본이 선별한 스타트업의 경쟁력이 우리나라보다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마침 현장에서 지난해 독일 출장 기간 인터뷰했던 베를린의 AI 기업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독일은 정부와 기관이 엄선한 스타트업들이 참가했고, 해외 기업들과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매출을 내기 위해 CES에 온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떨까. 현지에서 만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는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국내 스타트업들이 많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프랑스가 ‘라 프렌치 테크’ 란 깃발 아래 모이고 일본도 국가 브랜드를 갖고 자국 스타트업들을 추려 모였지만, 우리나라는 구심점과 브랜드 없이 지자체와 기관 이름을 앞세운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CES에 참석한 국내 스타트업 임원은 “지자체 등 국내 기관이 개최하는 행사와 만찬에 의무적으로 참석하느라 해외 기업 관계자들과 교류하거나 그들의 서비스나 기술을 살펴볼 시간이 생각만큼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상당한 예산을 써 기관 이름으로 부스를 마련하고, 스타트업들이 CES 참가에 의의를 두는 사이 다른 국가는 선별한 참가 기업들이 조용히 성과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올해 CES를 두고 ‘한국인 파티’란 지적이 나온다. 그 파티의 실속을 우리는 제대로 챙겼을까. CES를 통해 지자체와 기관, 스타트업들은 국내 홍보용 이외에는 무엇을 얻었는지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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