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빅텐트’…제3세력 바람 불까 [신율의 정치 읽기]

2024. 1. 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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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아닌 총선서 빅텐트 주장, 韓 정치사 처음
빅텐트 신당, 기호에 의한 주도권 갈등 커질 듯
권력 쟁취 과정서 양보와 헌신 가능할지 관심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1월 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새로운미래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위원장, 이낙연 전 대표, 금태섭 새로운선택 대표. (연합뉴스)
요새 ‘빅텐트’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빅텐트, 그리고 정파 등록제라는 단어는 이미 2000년대 후반 우리나라 정치판에 등장했다. 당시 빅텐트가 거론된 이유는 대선 때문이었다. 야당들이 빅텐트에 모여 이른바 정파 등록제를 관철시켜 야권 단일 후보로 대선을 치르자는 취지였다.

지금은 총선에서 빅텐트 주장이 나온다. 한국 정치사에서 거의 처음이다. 빅텐트의 필요성에 대해 현재 거의 모든 신당이 동의한다. 지금과 같은 소규모로는 각자가 바람(風)을 일으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선거의 3요소는 선거 구도, 바람 그리고 인물이다.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을 공천해 본선에 뛰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보가 훌륭하다고 선거판을 흔들기는 매우 힘들다. 실제 정치판에서는 선거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을 5% 정도로 평가한다. 선거의 3요소 중 가장 압도적인 것은 당연히 선거 구도다.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가 바람이다.

주목할 점은, 신당은 모두 야당이라 일단 선거 구도 측면에서는 불리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권 3년 차에 치르는 선거인 만큼, 아무래도 정권에 대한 평가적 요소가 강할 수밖에 없다. 또 선거를 90여일 앞둔 시점까지 야당이 독주를 서슴지 않고 있으니, 이 또한 신당에 불리한 환경은 아니다. 즉, 정권 심판론으로 선거 구도가 짜여지든 아니면 거대 야당 심판론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든, 신당에는 이래저래 유리한 상황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야당의 가장 중요한 무기라 할 수 있는 바람을 각각 신당이 자력으로 일으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게 신당의 고민거리다. 반면 이들이 정권 심판론과 거대 야당 심판론을 기치로 내건 빅텐트 밑으로 모이면, 바람을 일으키기 용이해진다. 이에 대해서는 신당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문제는 빅텐트 설치 이후다. 빅텐트에 모인 신당이 각자 독립성을 유지한 채 정권 심판론과 거대 야당 심판론 기치 아래 출마 지역을 분할하고 각자 맡은 지역에서 후보를 내고 선거에 임하는 방식을 선택할지, 아니면 빅텐트에 모이고 나서 합당할 것인지에 대해 쉽게 의견을 모으기 어렵다는 의미다. 빅텐트 아래 모이고 느슨한 형태의 선거연대를 추구할 경우, A정당은 호남 지역에 집중적으로 출마하고 B정당은 영남 지역에 출마하기로 약속하고, 수도권에서도 정당마다 출마 지역을 나눠 ‘빅텐트 단독 후보’를 출마시키자는 것까지는 얼마든지 합의할 수 있다.

이때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원칙과 상식’이 만드는 ‘미래대연합’에는 이미 현역 의원 3명이 포함돼 있지만, 다른 신당, 예를 들어 이준석 위원장의 ‘개혁신당’이나, 양향자 의원의 ‘한국의희망’ 그리고 금태섭 전 의원이 주축이 된 ‘새로운선택’ 그리고 이낙연 전 대표의 ‘새로운미래’에는 현역 의원이 한 명도 없다. 민주당 비명계 의원들이 추가 탈당할 경우, 아무래도 현역 의원이 3명이나 포진한 ‘미래대연합’에 입당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에서는 기호가 중요한데, 현재 시점으로 보면 ‘미래대연합’이 기호 3번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반대로, 빅텐트에 참여하는 다른 신당은 기호가 5번 이하일 확률이 높다. 빅텐트에 참여하는 정당들이 아무리 평등을 외친다 해도, 선거를 치르는 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어진다.

선거 기호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선거에서 기호는 매우 중요하다. 이른바 ‘순서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2년 한국정치학회보 제46집 2호에 실린, 김범수 박사와 서재권 박사의 논문 ‘투표 용지의 순서 효과와 기호 효과: 제4회 동시지방선거 기초의원선거 분석’을 보면, 기초의회선거에서 투표 용지상에 앞선 순위에 기재될수록, 그리고 정당 복수 추천에 의해 기호 ‘가’를 배정받은 후보자의 경우, 득표 이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순위 효과는 ‘현직 효과 혹은 학력과 연령과 같은 후보자 특성에 기인한 득표 이득에 필적하거나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선거에서 기호 몇 번을 달고 출마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당연히 빅텐트에 참여하는 신당 사이에서 기호에 의한 ‘주도권’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아예 합당 같은 ‘긴밀한 연합’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11일 YTN 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한 ‘새로운선택’ 금태섭 대표는 “적당히 느슨하게 연대해갖고는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합당과 같은 ‘강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합당한다 해도 문제는 발생한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에서 추가로 의원 탈당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들이 과연 보수와 진보가 혼재돼 있는 정당을 자신의 ‘행선지’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을까다. 양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은 아무리 탈당을 했다 해도, 자신의 이념적 기반이 ‘흔들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다. 장기적인 정치 생명을 생각할 때, 현재와 같이 극단적으로 양분화된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생각하면, 지역구 관리를 아주 잘한 의원이 아니라면, 보수와 진보를 총망라한 정당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일단 빅텐트로 뭉쳤다가 2월 말이나 3월 초쯤 하나의 정당으로 합치자는 것이다.

여기서도 또 다른 변수가 있다. 바로 선거 제도 변화 가능성이다. 현행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이번 선거를 치른다면, 아마도 이준석 위원장의 ‘개혁신당’은, 지금만큼 빅텐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신당 중 가장 공고한 팬덤을 갖고 있는 신당이 바로 ‘개혁신당’이기 때문이다. 팬덤을 가진 정당은 병립형 비례제보다는 연동형 비례제에서 훨씬 많은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 또한, 팬덤이 없는 신당이라 해도, 연동형 비례제 아래에서는 의석 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되면, 빅텐트에 참여하는 정당 수가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거대 양당이 권역별 병립형 비례제로 합의하면 대부분 신당이 빅텐트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에서, 양당이 어떤 방식의 선거 제도를 선택할 것인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신당이 추진하는 빅텐트 혹은 합당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이번 총선은 3당 체제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3당이 선거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제3의 세력이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결국 이들이 과연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바람은 쉽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신당들이 화학적 결합 정도는 아니더라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갈등 없이 동일한 목소리를 내야만 여론도 호응하고, 이를 통해 바람도 발생할 것이다.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이른바 ‘정파’로 선거를 치른다 해도, 어느 정도 화학적 동질성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현재 신당들은 ‘양보’와 ‘헌신’을 주장한다. 이런 상황이 유지된다면, 화학적 결합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따라서 ‘절박성의 유효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빅텐트 성공 여부도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권력 쟁취 과정에서도 양보와 헌신이 가능할지 지켜볼 일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4호 (2024.01.24~2024.0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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