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종합 우승 ‘크리스털 글러브’ 받는 게 새해 첫 목표”
“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을 말할 때 ‘김길리’라는 제 이름이 바로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매 경기를 뛸 때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김길리(20·성남시청)는 2023-2024시즌 국제빙상연맹(ISU) 1~4차 월드컵에서 4개 대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는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였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끌 차세대 스타로도 꼽힌다. 지난달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펼쳐졌던 월드컵 4차 대회에서는 여자 1500m 1·2차 레이스를 모두 석권하며 생애 첫 2관왕에 등극했다. 김길리는 시니어 데뷔 후 두 번째 시즌 만에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대표팀의 무서운 막내로 자리매김했다.
월드컵 4차 대회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기를 가졌던 김길리는 진천선수촌에서 다시 합숙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다음 달 연달아 열리는 월드컵 5·6차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김길리는 지난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남은 월드컵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안정적으로 순위를 유지하고 싶다”며 “시즌 종합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크리스털 글러브’를 받는 게 새해 첫 번째 목표”라고 밝혔다.
올 시즌 ISU 월드컵 여자부에서 865점을 쌓은 김길리는 랭킹 1위에 올라 종합우승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월드컵 시즌을 마치면 오는 3월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도 나설 예정이다. 김길리는 “지금은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 같다. 월드컵 이후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도 개인전 금메달에 도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길리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태권도, 축구, 발레, 야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즐겼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경기를 보고난 뒤 피겨스케이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일곱 살 무렵쯤에는 “피겨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인연을 맺은 게 쇼트트랙이었다. 김길리는 “어머니께서 여름 특강을 등록해주셨는데, 알고 보니 피겨가 아닌 쇼트트랙 강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사는 곳 주변에 피겨 강습이 없어서 쇼트트랙을 배우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며 웃었다.
김길리는 곧 쇼트트랙의 매력에 빠졌다. 스케이트를 탈수록 점점 속도가 붙었다. 그 속도를 온몸으로 직접 느끼는 짜릿함과 즐거움도 알게 됐다. 김길리는 “경쟁자를 추월하는 것도 재밌었다. 조금씩 실력이 늘면서 기록을 단축해 나가는 것 역시 하나의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강습을 받았던 그는 생활체육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을 계기로 쇼트트랙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김길리는 중·고교 시절 각종 주니어 대회에서 성적을 내며 두각을 나타냈다. 2020년에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1000m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지난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종합 1위로 생애 첫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성인 무대에 처음 출전했던 지난 시즌 월드컵 종합랭킹에서 4위를 차지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한 시즌 만에 최고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위치로 빠르게 올라섰다.
급성장의 비결을 묻자 김길리는 “꾸준한 훈련의 성과가 시즌 중에 나오는 것 같다”고 답했다. 비시즌 동안 근력과 지구력, 체력 등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 훈련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힘이 있어야 지치지 않고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것 같다. 스피드를 올리거나 유지하는 것도 기본적인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가 160㎝인 김길리는 쇼트트랙 선수로는 체구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신체조건의 단점을 보완하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후미에서 기회를 노리다 바깥쪽으로 순식간에 치고 나가는 탁월한 아웃코스 추월 기술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웃코스 추월은 인코스와 달리 몸싸움 빈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바깥쪽으로 달리면서 추월까지 하려면 안쪽에서 달리는 경쟁 선수들보다 긴 거리를 더 빠르게 타야 한다. 스피드는 물론 충분한 체력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또 다리를 움직이는 동작인 스트로크 횟수를 늘려 짧은 보폭으로도 빠르게 속도를 높이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김길리는 “아웃코스 추월 기술도 선수마다 특색이 있다”면서 “저의 경우에는 추월을 마친 뒤 흔들리지 않고 꾸준한 스케이팅을 유지하는 능력이 강점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팬들은 빠른 속도로 추월하는 김길리의 플레이를 보고 ‘람보르길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에 빗댄 별명이다. 김길리는 “많은 이들이 슈퍼카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정말 만족스럽고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며 “이런 별명 때문에 더 잘 달리는 선수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슈퍼카에 뒤처지지 않는 선수가 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니어 무대 2년차인 그는 국제대회 경험이 쌓일수록 느끼는 점이 많다고 했다. 김길리는 “주니어 때와 달리 스피드 차이가 크게 나고, 각 레이스 상황에 대처하는 경기 운영 능력들이 훨씬 좋다. 능숙하고 노련한 선수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들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경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월등한 신체조건을 갖춘 외국 선수들을 자주 만나면서 보완점도 찾았다. 김길리는 “아직은 외국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힘이나 스피드 측면에서 많이 약하다는 걸 느낀다”며 “빠른 속도를 내면서 타는 연습을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평소엔 운동에 시간을 쏟지만 짬을 내어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선수촌 밖에 나오면 친구들을 만나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게 소소한 행복이라고 한다. 김길리는 “친구들과 있을 때는 운동 얘기나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4년생인 그는 전성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미 대표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김길리는 “아직은 한참 멀었다”며 “진정한 에이스가 되려면 훨씬 더 잘해야 할 것 같다”며 수줍어했다.
‘국가대표 김길리’의 최종 목표는 또렷했다. 김길리는 “꾸준히 실력을 키워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며 “국가대표답게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도 멋진 경기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김길리는 한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쇼트트랙 선수로 성장하는 꿈을 품고 있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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