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리스크' 놓고 국힘 분열? 단톡방에 뜬 '수상한 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포함한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를 놓고 국민의힘이 분열하는 모양새다. 지난 19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가 긴급 회동했지만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위원장을 직·간접적으로 겨냥한 반발이 분출하고 있다.
‘김 여사 사과 불가론’에 불을 지핀 건 부산 수영에 출마하려는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이었다. 그는 지난 20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김 여사는 사기 몰카 취재에 당한 피해자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이용당한 파렴치한 범죄 피해자”라며 “왜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하느냐. 사과는 가해자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튿날인 21일엔 국민의힘 의원 단체 채팅방엔 한 발 더 나간 주장이 올라왔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수행한 이용 의원은 이날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향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를 공유했다. 전날에도 이 의원은 ‘김 여사 명품 수수 논란과 관련해 사과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단체 채팅방 상황과 관련해 영남권 의원은 “이 의원 글이 올라오자 최춘식 의원과 정경희 의원도 이에 동조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 여사를 옹호하는 글 외에 이견은 공개적으로 표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에 대한 공개 반발로 읽히는 이런 움직임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적임자냐를 놓고 찬반 논란이 있긴 했지만 지난달 26일 취임 후엔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한 위원장에게 반발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이날은 현역 의원 컷오프(공천 원천 배제)를 결정하는 여론조사를 시작하기 하루 전이라 4·10 총선에 출마하려는 예비 후보자들이 한 위원장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은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실상의 공개 저격이 나온 배경을 두고 당내에선 “이 의원의 독단적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의원은 그동안 정치적 분수령이 있을 때마다 ‘윤심(尹心)’ 전달자 역할을 자임해왔다. 한 재선 의원은 “이 의원이 나섰다는 점에서 대통령실과의 교감을 배제할 수 없다”며 “총선을 앞두고 당내 분열이 드러나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친윤계 인사들이 한 위원장을 향해 각을 세운 건 김 여사 논란에 대한 태도가 미묘하게 바뀐 뒤부터다. 한 위원장은 취임 전엔 ‘김건희 특검법’과 ‘명품 수수 의혹’에 대해 “정치 공작”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난 18일 오후 “기본적으론 함정 몰카이고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라면서도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미세하게 입장을 틀었다. 이같은 발언은 같은 날 오전 윤재옥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본질은 정치 공작”이라며 의원들에게 신중한 발언을 요청한과 것과 대비돼 “여권 내 엇박자가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게다가 한 위원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김경율 비대위원이 연일 언론을 통해 김 여사와 대통령실을 공격한 것도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김 비대위원은 지난 17일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하며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을까.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고 말해 친윤계 주류의 반발을 샀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 비대위원을 서울 마포을 출마자로 깜짝 소개해 기존 당협위원장인 김성동 전 의원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부른 날이었다.
논란이 확산하자 이튿날인 지난 19일 한 위원장과 윤 원내대표가 긴급 회동했고, 한 위원장은 “제 목소리와 윤 원내대표의 목소리는 하나”라고 밝히며 갈등이 봉합되는 듯한 양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뒤에도 한 위원장은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이니 (대통령실과) 갈등이라 할 만한 건 없다”며 ‘국민 눈높이’를 언급해 이틀 연속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한 위원장에 대한 당내 일각의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태세다. 당장 한 위원장이 ‘자객 공천’ 카드로 내세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인천 계양을)과 김경율 비대위원(마포을)의 당내 경쟁자인 윤형선 전 당협위원장과 김성동 전 의원이 계속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실에서도 “한 위원장이 공정 공천 원칙을 흔들고 있다”고 직격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 의원은 “현역 의원 반발을 한 위원장이 부추긴 꼴”이라며 “자객 공천 논란에 불안해하는 현역이 꽤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신중한 태도지만 김 비대위원이 계속해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데 대한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김 비대위원 발언과 관련해 원내에서 불편하게 생각하는 의원이 많다”고 강조했다.
공개 반발이 터져나온 이상 한 위원장이 갈림길에 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진 의원은 “공개 반발이 나온 순간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과 뜻을 같이 할 지, 아니면 독자 노선을 갈지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친윤계 의원을 비판하면 대통령실과 갈등이 커질 수 있고, 반대로 아무 말도 안 하면 중도층에게 ‘윤석열 아바타’ 이미지가 강화될 것”이라며 “한 위원장으로선 딜레마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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