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불사하겠다”더니 핵심 무기 수출…북한의 아이러니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위협적인 수사로 인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 대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한 이야기다. 북한이 조성한 전쟁 공포감에 과장된 부분이 적지 않다는 뜻이 담겨있다. 당장 전면전을 준비한다고 보기 어려운 북한의 내부 사정을 감안하면 체제 결속과 남남갈등을 노린 일종의 심리전 아니냐는 얘기도 군 내부에선 나온다.
‘전쟁 불사’ 화두 꺼낸 김정은…커지는 전쟁 불안감
한반도에 곧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불안은 지난해 말 김정은의 발언에서 본격화됐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26~3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말했다. 이후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중요 군수공장 시찰에선 “대한민국 족속들을 우리의 주적으로 단정했다”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한다면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급기야 김정은은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을 점령한다는 내용을 헌법에 담으라고 지시하며 “전쟁을 피할 생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말폭탄’으로 드러난 전쟁 불사론과 함께 군사적 움직임도 이뤄졌다. 북한은 지난 5~7일 사흘 연속 9·19 군사합의가 규정한 적대행위 중지 구역에 포사격을 감행했다. 지난 14일 새해 첫 미사일 도발로 고체연료 기반 중장거리급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더니 19일엔 핵 무인 수중공격정 ‘해일’의 중요 시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국제사회 전문가들의 진단이 가세하면서 위기감이 더 커지는 양상이다.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북한의 최근 메시지는 통상적인 허세가 아니다”고 진단했다.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올해 핵전쟁 가능성을 최소한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 외치면서 신형 무기는 해외로…경제난 얼마나 심하길래
반면 군 당국은 북한의 행태가 수위 높은 ‘협박’에 가깝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신 장관은 지난 17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며 “북한의 공갈에 흔들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군 당국의 이 같은 판단 근거로는 북한이 러시아에 수출하는 군수 물자의 ‘양’이 상당하다는 점이 꼽힌다. 수년간 공 들여 개발된 신형 대남용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대표적이다. 군 당국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과 600㎜ 초대형 방사포인 KN-25가 러시아에 흘러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군 당국자는 “모두 수십발 규모로 해당 미사일이 양산되는 즉시 수출됐다”며 “전면전을 준비한다고 보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2022년 4월 처음 시험 발사한 사거리 100~180㎞의 신형 근거리 탄도미사일(CRBM)을 러시아로 수출할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포탄 역시 최대 수백만 발이 러시아로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연말까지 북한이 러시아로 보낸 컨테이너는 약 5000개다. 152㎜ 포탄 기준으로는 약 230만 발을, 122㎜ 방사포탄 기준으로는 약 40만 발을 채울 수 있다. 북한이 전시 대비 포탄 비축량을 설정해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재래식 전쟁의 물량 공세 국면을 염두에 둔다면 이 같은 수출량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이 실시했다고 주장한 신형 무기 시험에도 과장이 섞여있다고 군과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대통령실은 북한이 주장한 핵 무인 수중공격정 ‘해일’의 중요 시험에 대해 “현재까지 분석을 종합해 볼 때 북 주장은 과장되고 조작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만약 시험했다면 일종의 어뢰로 추정되는데, 핵 추진 체계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며 “직경 1m 이하의 어뢰에 들어갈 만한 소형 원자로 개발 사례는 전무하다”고 설명했다.
북한 엄포는 내부 결속용, 한·미 관계 균열 의도도
그래서 이 정도의 수출을 시도해야 할 만큼 내부 경제 사정이 악화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경제난으로 인한 내부 동요를 막고 체제 내부의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김정은이 의도적으로 전쟁 준비 등을 입에 올리고 있다는 게 군 당국의 평가다. 신 장관은 최근 한 포럼에서 북한의 대남 엄포는 내부용이라며 “주민을 향해 ‘다른 마음을 먹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말헀다.
올해 한·미의 주요 선거를 앞두고 의도적으로 한반도 긴장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남·남 갈등을 유발해 한·미 공조를 둘러싼 국론 분열을 꾀하고, 미 새 행정부와 관계 설정 전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군 안팎에선 그러나 "전면전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국지전 수준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방한계선(NLL)과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치고 빠지기’식 도발을 펼친 뒤 한·미의 대응 태세를 시험해 볼 수 있다. 군 당국자는 “북한이 도발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즉·강·끝(즉각·강력히·끝까지)’으로 불리는 3원칙으로 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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