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은 사는 거 아니다"…씁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송승섭의 금융라이트]

세종=송승섭 2024. 1. 2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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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째 이어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경제는 성장했는데, 韓 저평가는 그대로
미흡한 주주환원과 취약한 지배구조 탓
금투세·상속세 개편으로 해결한다는 尹
세금제도 바꾼다고 기업가치 달라질까?

“국장은 하는 거 아니다.”

한국에서 주식투자를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이런 조언을 들어봤을 겁니다. 국장은 한국주식시장의 줄임말로 ‘국내 주식을 사지 마라’는 뜻이죠.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고 토로합니다. 한국 기업의 가치가 저평가돼있는데, 오를 기미가 안 보이거든요. 이런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고 합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왜 생길까요? 어떻게 해야 사라질까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학계와 금융업계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말입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주가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기 시작하면서요. 물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진짜 존재하는지에 관한 논박이 있긴 합니다만. 상당한 연구에서 2000년 이후 한국 주식시장이 여러 방면에서 저평가됐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한국증권학회에서는 2006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단과 원인분석’이라는 연구를 발표합니다. 한국 상위 50개 기업을 먼저 선정하고, 비슷한 외국 기업 50곳을 비교한 결과였는데요.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 기업의 주가현금흐름비율(PCR)이 외국보다 최대 3배가량 적었습니다. 심지어 필리핀보다 낮았고요. 그만큼 한국 기업의 투자가치가 낮았다는 겁니다.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의 주가장부가비율 및 주가수익비율 비교분석한 표. 짙은 파란 선으로 표시된 한국 지표가 바닥에 머물러 있는 게 두드러진다. 한국의 주가장부가비율은 2005~2011년 기준 45개국 중 43위, 2012~2021년 기준 45개국 중 41위였다. 주가수익비율의 경우 2005~2011년 기준 40개국 중 20위, 2012~2021년 기준 38개국 중 29위로 중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및 자료설명 = 자본시장연구원.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요?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5월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이라는 연구를 공개했습니다. 45개국 3만2428개 상장기업의 2005~2021년 자료를 이용해 주가장부가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을 들여다봤죠. 한국은 2012~2021년까지 PBR이 평균 1.2로 선진국(2.2), 신흥국(2.0), 아시아태평양(1.7), 전 세계(2.2)보다 낮았습니다. PER은 17.0으로 외국보다 17~23% 적었고요. 경제는 성장했는데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그대로 남아있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첫 번째로 꼽히는 게 미흡한 ‘주주환원’입니다. 주주환원이란 회사가 얻은 이익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일입니다. 주식회사 주인은 ‘사장님’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주식을 가진 모든 사람이 주인입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주주환원율은 주요 45개국 중 2010년부터 2018년까지 40위 이하로 최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기업의 주식을 사서 주인이 됐는데 이익이 나도 공유하지 않느니, 투자자로서는 ‘가치가 낮은 기업’이라 생각할 수밖에요.

저조한 주주환원은 ‘기업 지배구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에 따르면 2020년 기업지배구조 평가에서 한국은 아시아 12개국 중 9위로 하위권에 위치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극소수인 기업 지배주주를 위해 전체 주주 혹은 회사에 손해가 되는 일까지도 벌어집니다. 이에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 증시를 콕 집으면서 “한국 기업은 취약한 기업 지배 구조와 소액주주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로 인해 낮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네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국내 주식 투자자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1~2년도 아니고 수십년 전부터 문제라고 외쳐온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으니까요. 역대 정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다루긴 했습니다만 투자자들의 성에 차진 않았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주로 남북관계에 평화가 찾아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찾아올 거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예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됐고,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뀌었다는 발언을 했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추진을 밝히면서 “임기 중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의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서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7일에는 과도한 상속세를 언급하면서 “이런 과도한 세제들을 개혁해나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방법으로 ‘투자자에게 물리는 세금 철폐’와 ‘높은 상속세율 인하’를 꼽은 겁니다.

세금제도를 개선한다고 기업가치가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금투세 폐지 입장을 철회하라고 요구 중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성명서를 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소수 재벌 일가 중심의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 및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자본시장 등에서 기인한 것”이라면서 “아직 시행하지도 않은 금투세로 나타난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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