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대목에 다 죽으라는 소리냐" 장미 농가 분통, 왜
졸업 대목에도 ‘웃음꽃’ 잃은 화훼농가
그의 장미 농장은 겨울에도 하우스 실내 온도를 최저 20도 이상 유지해야 하다 보니, 난방비만 월 900~1000만원이 든다. 직원 2명에 일감이 많을 때는 인부도 불러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도 월 400~500만원이 들어간다. 올겨울에는 포근한 날씨 탓에 진드기도 말썽이다. 매주 1~2회 시설 하우스 전체 동에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데, 그 비용만 회당 20만원이다.
오씨는 “경기가 좋을 때는 월매출이 2000만~2500만원까지 갔는데 경기가 어려우니, 지금은 그렇게 안 나온다”며 “유류비·전기료·인건비·자재비 등 모든 생산비가 올랐지만, 꽃값만 그대로”라며 “애써 꽃을 키워 시장에 내놔도 외국산 꽃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판국에 값싼 에콰도르 장미까지 또 들어온다고 하니 화훼농가들 다 죽으란 소리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값싼 에콰도르 장미…“장미도 카네이션처럼 사라질라”
정부는 지난해 10월 에콰도르와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협정을 타결했다. SECA 협정에 따르면 쌀, 양파 등의 관세 철폐는 유보되지만, 화훼류는 그렇지 않다. 이 협정이 발효되면 장미·국화는 12년, 카네이션은 1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관세가 철폐된다. 정부는 이르면 올 상반기에 국회에 비준 동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번 협정으로 가장 크게 타격받을 품목은 장미다. 세계적인 화훼 수출국인 에콰도르는 장미 절화(cut flowerㆍ꽃다발과 화환 제작에 쓰이는 자른 꽃)가 전체 수출 화훼품목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적도 부근에 위치해 난방비 등 고정 비용도 적어 수출단가도 낮다. 국내산이 10송이에 7000~8000원이면, 에콰도르산은 3000~4000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서 중국, 베트남, 콜롬비아와 FTA를 체결한 이후 큰 피해를 봤던 국내 화훼농가는 정부의 SECA 협정 타결에 반발하고 있다. 경남도 등에 따르면 2016년 한-콜롬비아 등 FTA 발효에 따라 국내산 카네이션의 95%, 국화 70%, 장미 30~35%가 수입산으로 이미 대체됐다고 한다. 부산·경남화훼생산자연합회 관계자는 “국내 카네이션은 사실상 씨가 말랐다”며 “SECA 협정까지 발효되면 카네이션·국화에 이어 장미까지, 앞으로 국내산 꽃을 우리 시장에서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꽃 갈아엎은 화훼농가…국회·정부 찾아간다
전국 화훼농가가 밀집한 경기, 전남,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장미 관세 철폐 유보와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11일 김해시 대동면에서는 화훼농가 80여명이 모여 ‘국회의 SECA 비준 반대’를 외치며 장미·국화·거베라 등을 트랙터로 갈아엎기도 했다.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는 오는 22일 서울 국회를 항의 방문하고, 26일 부산·경남화훼생산자연합회는 세종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농민 500명(집회 신고인원)이 참여한 가운데 항의 시위를 열 예정이다. SECA 협정을 체결한 산업통상자원부 앞까지 거리 행진도 펼친다.
이들 화훼농가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화훼산업진흥법’ 개정안 통과도 요구하고 있다. 민홍철 의원(경남 김해갑)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화환에 사용된 화훼의 원산지·재사용 여부 등 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자체 역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경남도는 지난 10일 또 전기세, 농자재값, 인건비 등 인상으로 화훼 생산비가 크게 올라 고통을 겪는다는 화훼농가 의견을 수렴해 생산비 보전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김해=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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