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자민당 끝난다"기시다 '파벌 해산' 승부수 통하나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민당은 끝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자신이 이끌던 자민당 내 '기시다파'의 해산을 발표하기 전날인 지난 18일, 주변에 결심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민당 내 파벌들의 비자금 문제로 국민 여론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파벌 해산'이라는 강수를 둘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기시다파(46명)에 이어 소속 의원이 96명인 당내 최대 파벌 '아베파'와 38명의 의원이 속한 '니카이파'가 19일 연이어 해산을 선언하면서 일본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1955년 창당 이후 자민당 내 정책 집단이자, '당 내부의 당'으로 기능해 온 파벌이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소속 의원 수 각각 2위와 3위인 아소파(56명)와 모테기파(53명), 그밖의 소수 파벌인 모리야마파(8명)가 아직 남아있지만, 자민당 전체 의원 374명 중 70%는 무파벌 의원이 되는 셈이다.
"공격을 위한 해산" 기시다의 베팅
일본 언론들은 이번 파벌 해산 선언을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 승부수로 평가했다. 지난해 가을 이후 점차 하락하던 정권 지지율은 연말 '위험 수준'으로 불리는 10%대까지 급락했다. 더 심각한 것은 자민당 지지율이다. 지지통신의 1월 조사에서 기시다 정권 지지율은 18.6%로 지난해 12월(17.1%)보다 소폭 올랐지만 자민당 지지율은 더 낮은 14.6%였다. 이는 1960년 조사 개시 이후 최저 수치다.
지난해 말 도쿄지검 특수부 수사로 드러난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은 아베파와 니카이파, 기시다파가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파티의 수익금 일부를 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의원들에게 돌려줘 비자금화한 사건이다. 수사가 현직 의원 구속으로까지 일파만파 번지면서 "파벌을 해체하라"의 여론도 높아갔다. 해산한 기시다파는 1957년 결성돼 '고치카이(宏池會)'란 이름으로 당내 리버럴계 명문 파벌의 역사를 이어왔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동료 의원들에게 "후퇴가 아니라 공격을 위한 해산"이라며 "나는 이것(파벌 해산)이 맞다고 믿는다"고 설득했다.
총리는 일단 승부수를 던졌지만 언론들의 평가는 조심스럽다. 우선 기시다 총리를 만드는 데 협력했던 파벌인 아소파와 모테기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총리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쇄신본부'를 만들어놓고도 다른 파벌들과 논의 없이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이다. 아소파를 이끄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부총재는 "문제는 파벌이 아니라 정치자금 취급 방법"이라며 파벌을 존속하겠단 의향을 기시다 총리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은 지난 1988년 일어난 대형 뇌물 사건인 '리크루트 스캔들' 이후에도 '파벌 해체'를 선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후 '정책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의원들의 모임이 하나둘 다시 결성됐고, 결국 현재의 파벌로 부활한 전례가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민당이 그동안 파벌 해산과 부활을 거듭해 왔다는 점에서 파벌이 완전히 사라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치쇄신본부, '파벌 전폐' 결정하나
자민당 정치자금 수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아베파 소속 국회의원 3명과 아베파·기시다파·니카이파의 전·현직 회계 책임자 등을 기소하는 것으로 지난 19일 사실상 수사를 종결했다. 각 파벌의 지도부는 "회계담당자와 비자금 조성을 의논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기소를 피해갔다.
그 가운데 기시다 총리를 좌장으로 한 정치쇄신본부는 25일 당 개혁을 위한 중간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보고서에 '파벌 전폐'를 담아야 한다는 주장과, 파벌을 유지하면서 개혁 방안을 찾자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일본 언론들은 정치자금규정법을 개정해 비자금 문제의 책임이 회계담당자뿐아니라 정치인이나 당 지도부까지 미치도록 '연좌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당내에서는 "파벌 문제 해소와 연좌제 도입으로 총리의 지지율도 오르고 구심력도 돌아올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표출되고 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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