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추방' 극우 계획에 獨 25만명 시위 "나치 정당 금지"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정치인들이 이민자를 대거 추방하는 계획을 논의했다는 보도로 촉발된 극우 세력 규탄 움직임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독일 전역에서 약 25만명이 AfD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AfD를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도이치벨레(DW)에 따르면 이날 오후 함부르크·프랑크푸르트·하노버·카셀·도르트문트·부퍼탈·뉘른베스트 등 독일 100여개 도시에서 약 25만명이 극우 정당 AfD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람들은 'AfD는 파시스트 정당', '다시 1933년(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임명)은 안돼'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민주주의 수호' 행진을 벌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민자와 외국인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내는 AfD로 인해 독일에서 나치 정당이 재부상하고, 2차 세계대전 때 벌어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같은 공포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고 DW는 전했다.
AP통신은 "독일에선 지난 몇 년간 극우에 반대하는 시위가 수차례 열렸지만, 이번 주말 독일 전역에서 일어난 시위의 규모는 주목할 만하다"면서 "주최 측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와 시위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21일에는 베를린·뮌헨·쾰른·드레스덴 등에서 더 큰 규모의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AfD를 비판하는 움직임은 현지 탐사 매체 코렉티브가 지난 10일 "지난해 11월 베를린 서부 외곽 도시인 포츠담의 한 호텔에서 AfD 소속 정치인들이 네오나치 극단주의자들과 회동하고, 이주민 수백만 명을 독일에서 쫓아내는 계획을 논의했다"고 보도한 뒤 시작됐다.
지난 13일부터 주요 도시에서 AfD 규탄 시위가 열렸고, 다른 도시로 번지면서 일주일 넘게 지속하고 있다. 나치 과거사의 영향으로 극우 세력에 극도로 민감한 독일 정치 풍토에서 이주민 수백만 명을 내쫓는다는 보도는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다. 특히 나치가 지난 1940년 400만명의 유대인을 마다가스카르로 추방하려던 계획, 1942년 유럽에 있는 유대인을 학살하려는 계획 등과 비교되면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도 AfD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주말 시위에 참여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민자 추방 계획에 대해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며,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라고 밝혔다. 라틴아메리카 출신인 독일 시민은 BBC에 "나는 위협을 느끼고 이미 독일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이제 독일에서 편안하게 살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2013년 출범한 AfD는 반(反)이슬람·반난민·반유대주의·반녹색 정책을 표방한다. 독일 연방헌법수호청(BfV)의 감시를 받는 독일 내 우익 극단 조직 중 하나로, 회원 2만8500명 중 1만여 명이 극단주의자로 분류된다. 지난 2022년 12월 독일에서 무장 쿠데타를 모의했다 체포된 극단주의자 25명 중에도 AfD의 하원의원 출신이 포함됐다.
그런데도 현재 지지율은 23%로 최대 야당 연합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32%)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독일은 지난해 3년 만에 역성장하는 등 경제가 부진한 가운데, 전쟁을 피해 시리아·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 규모가 커지자 기존 독일인들의 불만이 커졌다.
AfD는 이런 민심을 파고들었고, 극우는 물론 중도층으로 지지층을 넓히면서 지난해 7월 지자체장 선거 2곳에서 소속 후보를 당선시켰다. 오는 9월 튀링겐·작센·브란덴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치러질 주의회 선거에서도 AfD 당선자를 배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여론 조사도 있다.
하지만 이민자 추방 계획으로 수세에 몰리자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이번 보도에 나온 모임은 우리 당이 조직하지 않았고, 우린 이 계획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독일 시민권을 가진 모든 사람은 우리 국민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이같은 입장 표명과는 달리 AfD 정치인들 일부는 이민자 추방 계획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AfD 소속 브란덴부르크주 의원인 르네 슈프링어는 "이 계획은 AfD가 집권하면 완수해야 할 약속"이라면서 "우리는 수백만 명의 외국인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아예 AfD를 해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볼프강 티어제 전 독일 연방하원 의장(사회민주당)은 "AfD는 민주주의의 적과 체제 전복을 꾀하는 이들로 구성됐다"며 "정당 자체에 대한 금지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련해 낸시 페이저 독일 내무장관(사회민주당)은 "AfD에 대한 '정당 금지령' 방안을 배제하지 않겠지만, 마지막 단계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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