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계획이 앞서는 일, 이제 안 하겠습니다

윤용정 2024. 1. 2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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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자 2024년] 빨리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 속도로' 끝까지 달리는 것

'네 글자 2024'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기획입니다. 2024년 자신의 새해의 목표, 하고 싶은 도전과 소망 등을 네 글자로 만들어 다른 독자들과 나눕니다. <편집자말>

[윤용정 기자]

'난 게으르다. 난 꾸준하지 못하다. 난 왜 이 모양일까?' 2024년의 시작과 동시에 나를 찾아온 코로나 때문인지, 새로운 1년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2024년이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나서야 내가 왜 2023년에 목표한 일들을 이루지 못했는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2023년이 시작될 때, 일 년 동안 이루고 싶은 일들을 다이어리에 적었다. 마라톤 하프코스 뛰기, 이탈리아 여행 가기 등 총 열 가지였는데 내가 이뤄낸 건 딱 한 가지, '라디오 프로에 사연 보내서 소개되기'였다. 

2022년도에 날마다 산책을 하며 듣던 라디오 프로에 가끔 사연을 보냈지만 소개되지 않았다. 2023년에는 꼭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을 적어 두고, 거의 날마다 짧은 사연들을 문자로 보냈다. 결국 어느 날 디제이의 목소리로 내 얘기가 흘러나왔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거 아닌 일일 수 있지만 내겐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다.

그날을 떠올리다 보니, 내가 2023년에 세운 목표를 왜 이루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라디오프로에 사연이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꾸준히 사연을 보내는 행동을 했다.

하지만 '마라톤 하프코스 뛰기'나 '이탈리아 여행 가기'라는 목표에 대해서는 꾸준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여행을 가지 못한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기에 큰 아쉬움이 없지만, 하프코스 달리기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2022년 8월에 나는 문득 마라톤 대회를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달 뒤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신청을 했다. 5km, 마라톤 대회에서 가장 짧은 거리지만 그전까지 지하철이 코 앞에 왔을 때를 빼곤 달려본 적이 없기에 연습이 필요했다.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 가서 한 바퀴를 달려보니 숨이 턱 끝까지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5km는 생각보다 아주 많이 길었다. 한여름 무더운 날씨에 저녁마다 공원에 나가 달리기를 했다. 1km, 2km, 10분, 20분, 거리와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5km를 한 번에 달릴 수 있게 됐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 목표를 잡았다. 6km, 7km, 그렇게 한 달 뒤에는 10km를 완주했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에는 머릿속이 비워지고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하게 되는 게 좋았다.

기록을 늘린다거나 달리기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는 욕심 없이 오직 달리기를 즐기는 마음으로 주말마다 한 시간 이상 달리기를 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는 10분도 못 달리던 내가 10km를 달려도 별로 힘들지 않은 사람이 돼 있었다.
 
▲ 마라톤 대회 처음 10km 완주한 날
ⓒ 윤용정
 
꾸준히 하니까 되는구나! 성취감을 맛본 나는 2023년에 수많은 계획을 세웠다. 작년에 유행했던 '갓생 살기, 미라클모닝'도 그중 하나였다. 유튜브나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감사일기를 쓰고, 영어공부를 하고, 30분간 책을 읽었다. 집안일을 해놓고 회사에 출근했다가 오후 6시에 퇴근해서 또 집안일을 하고 글을 쓰다가 밤늦게 잠들었다. 주말에는 봉사활동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글쓰기 모임이나 강연을 들으러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몸이 너무 피곤해졌고, 심장에 약간의 이상 증상이 느껴졌다. 피곤과 겨울 추위를 핑계 삼아 오늘 할 달리기를 내일로, 주말로, 다음 달로 미루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10분도 달리기 힘든 사람이 됐다. 물론, 미라클모닝도 한 달짜리로 끝났다.

2023년은 그렇게 의욕이 앞서 한 달 반짝 무리를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 1년이란 시간은 나같이 꾸준함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1년짜리 거대한 목표를 세워놓고 실패했다고 좌절하기보다는, 내게 맞는 한 달짜리 작은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오늘부터 나는 아침 8시에 30분간 산책을 한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 행동은 체력을 기르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4주 뒤에도 내가 산책을 잘하고 있다면 다른 계획을 하나 더 추가하기로 했다. 4주 뒤에는 천천히 달리기를 할 수도 있고, 아침에 산책을 하고 저녁에 달리기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꾸준히,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기를 이어가는 게 내 목표다.

마라톤 대회에 가보면 풍선이나 깃발을 달고 달리는 페이스 메이커가 있다. 페이스 메이커는 경기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들어 내는 선수다. 10km 대회에 처음 나갔을 때 나는 페이스 메이커 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달렸지만 조급해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신경 쓰지 않고, 내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게 맞는 속도로 달렸기에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끝까지 달리는 거라 생각한다. 2024년에 내가 꼭 기억하고픈 네 글자는 '내 속도로'이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신경 쓰지 말고, 내 속도에 맞춰 느리더라도 꾸준히 나아가는 2024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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