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J남'과 지독한 'P녀'가 만난다면?
[양형석 기자]
2000년대 초반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혈액형 별 성격'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매사 신중하지만 소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A형, 창의적이고 개성 있지만 제 멋대로인 사람은 B형, 사교성이 좋고 외형적이지만 다소 과장된 성격을 가진 사람은 O형,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AB형으로 나누는 식이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을 단 4가지로 분류한 단순함과 MBTI의 등장으로 인해 혈액형 별 성격분류는 현재 거의 쓰이지 않는다.
1944년 작가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녀의 딸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개발한 자기보고형 성격유형검사 'MBTI'는 2020년대 들어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성격진단검사로 자리 잡았다. 처음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잠시 유행하는 듯 했던 MBTI는 이제 세대를 가리지 않고 고르게 퍼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MBTI를 물어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정도로 MBTI는 이제 우리 삶에 깊이 자리 잡았다.
▲ <플랜맨>은 계획형 남성과 즉흥형 여성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다. |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
연기력과 스타성, 인성까지 갖춘 배우
중학시절 CF로 데뷔해 잡지 및 광고모델로 활동하던 한지민은 학교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연예계 활동을 최소화하다가 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전공했다. 한지민의 연기 데뷔작은 2003년 <올인>에서의 민수연(송혜교 분) 아역이었는데 실제 송혜교와 한지민의 나이 차가 고작 한 살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지민은 <올인> 이후 드라마 <좋은 사람>과 <대장금> <부활>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5년 영화 <청연>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한지민은 2007년 첫 주연작이었던 공포영화 <해부학교실>이 전국 62만 관객에 그쳤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실제로 한지민은 <해부학교실>을 끝으로 3년 넘게 영화출연 없이 드라마 활동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영화에서 보기 힘든 배우가 된 한지민은 2011년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 1인 2역을 소화하면서 478만 관객을 모으는 데 기여했다.
2011년 노희경 작가의 <빠담빠담>과 2012년 <옥탑방 왕세자>에 출연하며 다양한 매력을 뽐내던 한지민은 2014년 영화 <플랜맨>을 통해 변신을 시도했다. 한지민이 평소의 청순한 이미지를 벗어나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성격의 인디가수 유소정을 연기한 <플랜맨>은 <변호인> <겨울왕국> 등과 맞붙으며 전국 63만 관객에 그쳤다. 하지만 능청스런 코미디 연기를 소화한 한지민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관객은 거의 없었다.
한지만은 2014년 영화 <역린>에서 정순왕후를 연기하며 생애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지만 384만의 괜찮은 흥행성적에 비해 연기에서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15년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서 여성 독립운동가 연계순 역을 맡으며 750만 관객동원에 기여한 한지민은 2018년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에서 '인생연기'를 선보이며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을 포함해 무려 11개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한지민은 2021년 <해피 뉴 이어>를 끝으로 영화활동이 뜸하지만 2022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와 2023년 <힙하게>를 통해 건재한 연기와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며 대중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우리들의 블루스>에 함께 출연했던 정은혜 캐리커처 작가 겸 배우와 드라마 종영 후에도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한지민은 올해 SBS에서 방영될 예정인 드라마 <인사하는 사이>에서 이준혁과 연기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 인디가수 유소정 역의 한지민은 <플랜맨>에서 UV가 만든 OST 4곡을 직접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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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생활계획표를 그린다. 학교를 가지 않는 방학에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겠다며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자 약속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방학 시작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생활계획표의 내용들을 어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생활계획표의 내용들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생활패턴이 완전히 뒤집히곤 한다(그래서 영악한 일부 학생들은 애초에 생활계획표를 작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플랜맨>의 한정석(정재영 분)에게 계획에 벗어난 행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정석은 5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자신의 계획과 행동이 하나라도 어긋날 경우 큰 일이 난 것처럼 평정심이 무너지는 극단적인 J형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예정대로 12시 15분에 찾은 편의점에서 자신과는 완전히 반대의 성격을 가진 자유분방한 즉흥형 인간 유소정(한지민 분)을 만나면서 인생이 크게 변하게 된다.
사실 진지한 듯한 연기 속에 자신만의 확실한 개그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정재영은 이미 <아는 여자>와 <웰컴 투 동막골> <바르게 살자> <김씨 표류기> 등 여러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그 매력을 보여준 바 있다. <플랜맨>의 한정석 역시 캐릭터는 달라도 완전히 새로운 연기라기 보다는 정재영표 코믹연기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플랜맨>은 '정재영표 코미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맞춤형 코미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김준석 음악감독이 총지휘한 <플랜맨>의 음악은 <쿨하지 못해 미안해> <이태원 프리덤> 등으로 사랑 받은 UV가 4곡의 작사·작곡에 참여했고 한지민이 이 노래들을 직접 불렀다. 물론 한지민이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영화 속 유소정이 괴짜 인디 뮤지션인 만큼 한지민은 캐릭터에 맞게 연기하듯 노래를 잘 소화했다. 특히 영화의 주제가 <플랜맨>은 영화에서 오리지널 버전과 발라드 버전, 우쿨렐레 버전까지 세 번에 걸쳐 나온다.
다만 영화 중반까지 극단적인 J형 남자와 P형 여자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보여주던 <플랜맨>은 영화 후반 한정석의 과거사가 나오면서 갑자기 여느 한국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신파가 끼어든다. 이는 초반 흥미로운 전개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가 중반 이후 스토리가 늘어지면서 시청률이 떨어지는 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초반에 보여줬던 흥미로운 설정을 뚝심 있게 밀어 붙이지 못한 부분은 <플랜맨>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 차예련은 '플랜맨' 한정석의 짝사랑을 받는 편의점 알바생 이지원을 연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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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맨>에서 한정석은 자신과 완전히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외모는 배우 한지민을 꼭 닮은 아리따운 여성 유소정과 밴드를 하면서도 편의점에서 일하는 또 다른 여성 이지원을 짝사랑한다(물론 이지원도 배우 차예련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예쁘긴 하다). 이지원 역시 한정석처럼 지나치게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로 한정석은 이지원을 자신과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이지원은 결벽증이 있는 자신의 성격을 매우 싫어한다.
<도가니>의 1인 2역으로 관객들의 미움을 한몸에 받았던 장광은 <플랜맨>에서 재기를 꿈꾸는 왕년의 국민 MC 구상윤을 연기했다. 모든 숫자를 단숨에 외우는 '기억력 소년' 한정석을 발굴해 국민 MC로 떠올랐던 구상윤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한정석이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지방행사를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구상윤은 어른이 된 한정석을 보고 그가 과거의 '기억력 소년'임을 금방 알아채지만 한정석의 '눈물의 고백'을 보고 폭로를 포기했다.
<극한직업>에서 고상기 반장(류승룡 분)의 아내 역을 맡아 코믹한 연기를 선보이며 천만 배우가 된 김지영은 <플랜맨>에서 한정석이 다니는 병원의 정신과 의사를 연기했다. 의사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환자들을 모아놓고 대화를 나누게 하지만 이들의 사연을 듣다가 오히려 본인이 화가 쌓여 폭주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에는 '용기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발표회를 마련해 한정석을 비롯한 환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줬다.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비롯해 영화, 드라마, 뮤지컬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진주는 <플랜맨>에서 한정석의 직장동료 은하 역을 맡았다.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정석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약간의 공주병도 있어 "평소에 나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한정석의 가벼운 질문에도 "선배, 저 남자친구 있어요"라고 정색하면서 대답한다. 물론 한정석에게 특별히 악의가 있거나 나쁜 성격의 캐릭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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