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장관님,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건 어떨까요

서부원 2024. 1. 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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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외고와 자사고 등의 존치 결정... 이미 실패한 정책을 왜 되풀이하려 하는가

[서부원 기자]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16일 오후, 자사고 등의 학교 존치를 위한 국무회의 의결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교육부
 
대체 언제까지 'ABM(Anything But Moon :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모두 뒤집는다)'을 지켜봐야 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 16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외국어고, 국제고, 자립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존치를 골자로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일괄 폐지를 결정한 지 4년 만이다.

"2025학년도 이후에도 해당 학교의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 선택권을 돌려드리고자 한다."

이 장관이 밝힌 존치 이유다. 교육 선택권이라는 눈과 귀를 혹하게 할 만한 그럴싸한 핑계를 댔다. 그러나 '입시 명문고', '귀족 학교', '특권 학교' 등으로 불려온 학교들의 존치 명분으론 태부족하다. 내년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 일반고에서도 학생과 학부모들이 희망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선택권이란 학교를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각자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한 다양한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교육부는 서열화한 학교를 존치할 게 아니라 일반고의 교육과정을 다양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선이다. 결국 이번 결정으로 절대다수의 일반고는 다시 한번 열패감을 경험하게 됐다.

집에서 가까운 일반고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데 굳이 '특권 학교'에 가겠다는 건, 맹목적인 선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교육 선택권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이를 방치하는 것을 넘어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정부도 머쓱했는지, 외고, 자사고 등을 존치하는 대신 사회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해 모집 단위가 전국인 자사고 열 곳은 입학생 20%를 지역 인재로 선발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두었다. 서울의 하나고와 지방의 민족사관고, 북일고, 상산고, 포항제철고, 김천고 등이 해당한다. '교육 선택권'과 '사회 책무성'을 대비시키는 건, 정부도 이들이 '특권 학교'임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뜻 아닐까.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정부 

기실 이주호 장관이 취임할 때부터 예견된 것이라 딱히 놀랍진 않지만,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정책마저 완벽히 15년 전으로 퇴행했음을 보여준다. 하긴 회전문 인사에다 대기업 편향의 감세 정책, 강압적 언론 통제, 낡은 문화 감수성 등 어느 곳 하나 온전한 구석이 없다. '이명박 시즌 2'라는 윤석열 대통령 치세에 부끄러움은 오롯이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는 '학교 만족 2배, 사교육 절반'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다양화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고등학교마저 서열화될 것이란 우려가 쏟아졌고 이내 현실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특목고와 자사고 입학을 준비하는 바람이 불어 사교육비가 줄어들기는커녕 되레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가 당시 청와대 교육과학문화 수석비서관이었던 이주호 현 장관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교육부 장관까지 역임한, 말 그대로 교육 분야의 실세 중의 실세였다. 

적어도 그에게서 부작용만 난무한 과거의 잘못된 교육 정책에 대해 반성하는 목소리는 들을 줄 알았다. 헛된 기대였다.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고 교육적 환경과 시대정신이 달라졌는데도 교육개혁에 대한 그의 인식은 그때 그 시절 그대로인 듯하다. 
 
 ‘특권학교 부활 선언 인수위 규탄 교육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이 지난 2022년 4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앞에서 전교조,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지난해 그는 '에듀 테크'라는 낯선 단어를 교육개혁의 핵심인 양 부르댔다.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생뚱맞은 발표를 듣고선, 그의 머릿속에선 물질문명의 변화를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일종의 '문화 지체'가 나타나고 있다는 '웃픈' 생각마저 들었다. 최근엔 '에듀 테크'가 아이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오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 특목고, 자사고, 자공고, 일반고, 특성화고 등으로 한 줄 세워진 고교 서열화 정책이 우리 공교육의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되레 아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사교육을 심화시키고 학벌 구조를 더욱 고착화했다는 혹평이 잇따랐다. 지난 정부에서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여론의 거센 비판 때문이었다.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이 횡행하는 교육 현실은 더욱 강퍅해져만 가는데, 되레 정부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단언컨대, 지금 우리 교육이 당면한 절체절명의 과제는 대입 경쟁을 완화하고 아이들을 극한의 학습 노동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일이다. 집집마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붓고 있지만, 아이들은 나날이 공부에 환멸을 느끼고 건강은 악화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건대,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은 교육 선택권 보장 운운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교육 선택권이 학교의 서열화를 낳고, 학교의 서열화가 아이들에게 비뚤어진 '특권 의식'을 심어주었다. 소수의 '특권 의식'과 다수의 열패감은 동전의 양면으로, 우리 사회의 통합을 저해할 게 불 보듯 환하다. 지금 우리 교육에 절실한 건, '소셜 믹스'다.

15년 전 실패한 정책을 은근슬쩍 다시?

외고와 자사고 등의 존치 결정에 교육 선택권 보장을 근거로 댄 건, '부자 감세' 정책을 민생 안정 대책이라고 소개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다. 온 국민을 바보로 여기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해명이다. '내로남불'의 검찰 권력을 앞세워 혹세무민과 갈라치기로 연명하는 현 정부에 사회적 통합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일지도 모른다.

사족. 김대중 정부 시절 교직에 들어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섯 정부를 경험했다. 교육 정책에 관한 한 어느 정부에도 후한 점수를 줄 순 없지만, 개인적으론 이명박 정부의 그것을 최악으로 평가한다. 박근혜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를 막아낸 여론의 동력도 이명박 정부의 해악을 반면교사 삼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주호 장관께 26년 차 현직 교사로서 간곡히 부탁한다. 15년 전 장관께서 주도해 실패한 정책을 지금 다시 은근슬쩍 껍데기만 바꿔 추진하는 건, '독선적 아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차라리 임기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 안타깝긴 하지만, 그게 내가 현 정부에 바라는 '교육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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