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청인의 차이 때문에 연애에 실패한 걸까?
[윤일희 기자]
▲ 웹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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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얘기하다 웹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로 흘러갔다. 우리는 농인과 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로맨스라는 흔하지 않은 소재라 마음이 갔다. 그런데 드라마 남자 주인공 정우성에 있어선 약간의 이견이 오갔다.
배우 정우성의 나이를 아는 우리로서는 중장년 남자배우가 아직도 청춘(?) 배역을 맡는 게 불편했고, 이 때문에 인물에 쉽게 이입되지 않는다는 점엔 같은 의견이었다. 반면 그의 농인 연기가 불충분한 수어로 어색하다는 내 의견(농인 유튜브를 즐겨 보며 알게 됐는데, 농인의 수어는 얼굴 표정이나 공간을 매우 크게 활용하고 있었기에)에 반해, 그런 농인도 있지 않겠냐는 지인의 의견으로 갈렸다. 그럴 수도 있겠다.
정우성의 어색한 수어를 꼬집은 내 속내는 실은, 이제는 실제 농인 배우가 남자 주인공 배역을 맡아 연기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가 직접 장애인 배역을 맡아 출연해 경이를 준 이후, 기다리는 장애인 당사자 배역이 나오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스토킹은 사소한 해프닝이 아니다
요즘 드라마는 강렬하지 않은 차분한 대사 전달이 드문데,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침착하고 망설임이 있어 좋았다. 드라마는 청인 여성 모은(신현빈)과 농인 남성 진우(정우성)의 로맨스로 갈래를 잡다, 5회부터 등장한 서경(김지현)으로 인해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서경은 부모가 농인이라 수어가 모어(母語)다. 서경은 진우의 학습 보조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다. 그런데 좀 의아한 것이, 진우는 어린 시절부터 일반 학교에 다니며 줄곧 소외와 학습권 차별을 받았는데, 대학에 진학하며 갑자기 학습 보조자가 등장한다. 장애인 학습권이 불충분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적절한 상황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진우의 학업을 조력하며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진다. 하지만 서경은 남모를 불안을 키우고 있다. 휘파람을 부는 괴한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킹을 당하는 서경은 이를 진우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가 휘파람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럴까. 문제는 진우가 소리를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스토킹 피해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괴한이 서경을 습격하고 방화를 저질러 화재에 갇히게 된다. 이 사건은 생명이 위협 당한 매우 심대한 피해다. 하지만 서경은 주위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싸늘한 냉대와 배신녀 취급을 당한다.
서경은 여전히 휘파람 소리에 온몸이 굳고 정신이 아득해지며 호흡을 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지만, 누구에게도 이 가공할 피해를 말하지 못했고 지금도 말하지 못한다. 그녀가 이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그때의 피해로부터 회복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진우와의 이별에 서경의 트라우마가 결정적으로 타격을 주었음에 틀림없지만, 서경을 비롯한 모두는 이 일을 중요하지 않게 다룬다.
화재 사건을 이별의 단초로 제시하는 드라마의 방식은 서경의 트라우마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다. 서경이 화마에 싸여 구조를 요청하지만 진우는 이를 듣지 못하고 구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진우는 서경을 지키지 못했다는 크나큰 죄책감을 안게 되고, 서경은 듣지 못하는 진우에 절망해 이별을 고하고 유학길에 오른다. 청인인 자신과 농인인 진우의 현실의 격차를 이길 수 없어 도망치고 싶었다는 이별의 변은, 서경조차 자신의 몸과 마음을 타격한 스토킹 범죄의 진상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스토킹 범에게 폭행을 당하고 화재의 현장에 갇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은 없다. 서경이 압도 당할 폭력에 놓여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는 건 당연한 피해의 반응이지만, 서경은 그때에도 지금도 이 피해를 다루지 못한다. 오히려 서경은 그때 자신이 어렸고 이기적이라 자신의 고통밖에 보지 못했다고 회개함으로써 피해자에서 가해자의 위치로 자신을 강등한다. 이는 서경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무능이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피해에 짓눌려 있기보다는 그때 그 사건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고통의 굴레를 벗고자 한다. 농인인 진우가 오인된 배신으로 겪었을 고통은 더욱 쓰라린 것이 되고,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고 성공한 장애인이 된다.
스토킹은 악랄한 범죄다. 그저 쫓아다니는 것으로 끝나는 스토킹은 없다. 스토킹 범죄 10건 중 7건은 성폭력 폭행 감금 등의 폭력을 동반하고, 서경의 괴한처럼 낯선 범죄자보다 대부분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며, 피해자 보호조치 명령은 지켜지지 않는다. 이는 인천 논현동, 분당 흉기 사건 등의 스토킹 참사가 증명하듯, 피해자가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서경이 당한 스토킹과 그 피해가 과거 해프닝으로 사소하게 다루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때 서경이 도망치지 않았다면 그녀는 살아남았을까?
문제는 로맨스 각본에 있다
"꽁꽁 숨어 있는 나(진우)를 찾아준 사람"인 모은의 방황을 다루는 방식도 불편하다. 청인인 모은은 "목소리가 아니라 마음을 들어주는" 진우에게 유대감을 느끼고 청인의 소리만이 대화의 전제 조건이 아님을 깨닫는 성숙한 사람이다. 하지만 연애란, 장애 비장애가 아니더라도, 낯선 존재끼리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마찰과 협상이 벌어지기 마련인 매우 피곤한 관계 작업이다. 이를 할 수 없어 대리만족 연애를 관람하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모은은 전혀 모르던 언어인 수어를 익히느라 힘들고, 농인인 진우와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쓰느라 고단하다. 게다 갑작스런 옛 애인 서경의 등장은 신경을 갉아먹고, 이로 인해 "같은 공간에 나만 듣고 나만 아는 일이 생기며" 마음이 초조해진다. 무엇보다 모은의 연애 갈등의 핵심은 현실에 공기처럼 스며있는 비장애인 로맨스 각본에 있다.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같은 음악을 듣고, 장을 보며 히히덕대고, "소리 내서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청인 로맨스의 '편안함'이 그리운 것이다. '편안함'은 듣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청인의 소통 규범에서 비롯되며, 모은으로서는 살면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관습이다. 모은이 이를 그리워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심리는 일종의 향수나 퇴행일 수 있다. 이 과정을 개인의 미성숙함으로 다루기보다, 청인 중심의 비장애인 사회가 권력화한 언어체계에 대한 성찰로 나아갔다면 어땠을까.
모은이 연애 과정에서 청인 언어 관습의 편안함을 바란 내면의 길항을, 농인인 진우가 해줄 수 없는 걸 바란 철없는 투정이나 욕심으로 반성하는 것이 적절한 드라마적 성찰일까? 모은이 힘들었던 건 과한 욕심을 부려서가 아니다. 비장애인 정상성과 로맨스 이데올로기가 너무 자연스럽고 공고했기 때문에, 이 자연스러움(편안함)을 거스르고 깨부술 시간과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농인인 진우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청인의 경계를 허물어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모은이 농인인 진우의 언어를 습득하려는 노력은 수어를 청인의 언어와 동등한 위치에 놓는 인간 됨이자 동료 시민 됨이다. 좋은 연애란 것이 어디 콧소리 섞는 애교나 가슴 뛰는 욕망만으로 완성되던가. 불완전함을 상호 보족하는 시민 동료애도 필요하다. 진우에게도 필요했던 성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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