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선수 모두 냉정하지 못하면 아시안컵 우승 어렵다

심재철 2024. 1. 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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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FC 아시안컵 E조] 한국 2-2 요르단

[심재철 기자]

 20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2차전 요르단과 한국의 경기. 한국이 요르단 야잔 알나이마트에게 역전골을 허용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지 않은 것이 다행인 게임이었다. 전반에 가운데 미드필더들의 패스 미스로 아찔한 순간을 여러 차례 겪었다. 후반 초반에는 필드 플레이어 대다수가 조급한 마음으로 뛰다보니 옆줄 방향으로 향하는 패스 몇 개가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굴러 나갔다. 김승규의 슬픈 부상으로 대신 들어간 조현우도 첫 골은 코너킥 크로스를 바로 앞에 나와서 쳐냈어야 했다. 감독이 꺼낸 플랜 B는 매끄럽지 못했고 선수들 대부분은 불덩이를 가슴에 품고 뛰는 듯 냉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대로라면 64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20일(토) 오후 8시 30분 카타르 도하에 있는 알 투마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3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E조 두 번째 게임에서 요르단과 2-2로 비겨 1위로 올라서지 못했다.

불덩이는 사막에 묻고 나서야

예상보다 일찍 터진 첫 골에 지나치게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더 높은 곳에 오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흥분한 마음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게임이었다. 시작 후 4분도 안 되어 귀중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미드필더 황인범의 멋진 스루패스를 받은 주장 손흥민이 요르단 주장 에흐산 하다드의 걸기 반칙에 쓰러진 것이다. 

살만 아흐마드 팔라히(카타르) 주심이 꽤 오랫동안 VAR 온 필드 리뷰 절차를 밟는 동안 허벅지 근육을 다친 황인범이 회복할 시간을 확보한 것도 다행이었고, 손흥민의 침착한 파넨카 페널티킥 골 순간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감독이나 선수들이 냉정함을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준비한 만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셈이다.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해 함께 뛸 수 없게 된 김승규를 위해 유니폼 세리머니까지 펼칠 정도로 우리 선수들은 건강한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게임 운영은 점점 흥분의 도가니로 걸어들어가는 것처럼 일부 선수들이 상대 선수들과 휩쓸려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요르단 에이스 알 타마리의 왼발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김민재 말고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21분에 알 타마리의 왼발 발리슛이 날아들 때 우리 수비수 둘이 바로 앞에 있었지만 그 타이밍에 따라가지 못했다. 조현우 골키퍼가 자기 왼쪽으로 날아올라 그 슛을 쳐냈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 이후에도 알 타마리에게만 시선이 쏠리는 바람에 감당하기 힘든 화를 겪어야만 했다.

하루 전 일본이 이라크에게 발목을 잡힐 때 스즈키 자이온 골키퍼의 실수가 크게 부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했다. 37분에 내준 동점골은 요르단의 왼쪽 코너킥 세트 피스에 의한 것이었는데 골문 바로 앞으로 코너킥 크로스가 휘어들 때까지 우리 골키퍼 조현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책골에 고개를 숙였다. 

크로스 궤적이 골키퍼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높거나 각도가 큰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골 라인에 발이 묶인 듯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다. 골키퍼 입장에서 일본이 이라크에게 내준 두 번째 골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 추가 시간이 길게 이어질 때 위험 상황에서 벗어나는 대응 매뉴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비 조직력을 가다듬는 구심점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르단 에이스 알 타마리의 놀라운 드리블 돌파(45+5분) 순간 김민재가 더 놀라운 커버 플레이 실력을 보여준 것까지만 괜찮았을 뿐 곧바로 알 타마리의 왼발 슛이 나오고, 거기서 흐른 세컨드 볼로 야잔 알 나이맛의 오른발 바운드 슛 역전골(45+6분)이 들어갈 때까지 우리 수비수들은 볼과 알 타마리에게만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1-2로 역전 당한 우리 팀의 클린스만 감독이 후반 시작과 동시에 준비한 플랜 B는 두 명의 선수 교체(김태환, 홍현석)로 알 수 있었는데 정작 선수들은 이렇게 바뀐 계획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솔로 플레이 욕심을 보이거나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흥분의 선택을 취하고 말았다. 

55분에 골키퍼 조현우의 아찔한 후방 빌드 업 패스 미스를 시작으로 60분에는 이강인이 솔로 플레이를 고집하며 고립을 자초했다. 64분에 골잡이 조규성에게 빈 골문이나 다름없는 동점골 기회가 찾아왔지만 골문 바로 앞 오른발 슛을 높게 넘기고 말았다. 오프 사이드 깃발이 뒤늦게 올라간 것을 핑계로 삼기에는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조규성은 66분에 손흥민으로부터 결정적인 스루패스를 받아 왼쪽 대각선 슛 기회를 만들 수 있었지만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볼 소유권만 빼앗기고 말았다. 87분에 이강인이 왼발로 차 올린 오른쪽 코너킥은 누가 받아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후반 추가 시간 1분 만에 손흥민의 낮게 깔리는 컷 백 크로스를 받은 황인범의 왼발 슛으로 요르단 수비수 야잔 알 아랍의 자책골이 들어가 우리 선수들은 한숨을 돌렸지만 그 이후에도 10분 정도의 추가 시간이 더 이어졌지만 불덩이를 품은 듯 조급한 동작은 반복되었다.

교체 선수 홍현석은 어이없는 패스 미스도 모자라 추가 시간 9분에 이강인의 왼쪽 프리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박진섭의 헤더 패스를 받아 극장 재역전골 기회를 잡았지만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며 시도한 슛이 골문 바로 앞에서 왼쪽으로 크게 벗어나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 선수들은 총 23개의 슛 중에서 유효슛을 7개나 기록했지만 더 결정적인 기회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얻은 승점 1점 덕분에 16강 진출 1차 목표는 어렵지 않게 이루게 되었지만 16강-8강-4강-결승에 이르기까지 이보다 더 어려운 관문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여 가슴 속 불덩이들은 한적한 사막에 고이 묻어두고 냉정한 의식으로 그 다음 게임들을 섬세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오는 25일(목) 오후 8시 30분 알 와크라에 있는 알 자누브 스타디움에서 E조 최약체로 보이는 말레이시아를 만나며, 요르단도 같은 시각에 도하에 있는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바레인을 만난다.

2023 AFC 아시안컵 E조 결과
(1월 20일 오후 8시 30분, 알 투마마 스타디움 - 도하)

한국 2-2 요르단 [골-도움 기록 : 손흥민(9분,PK), 야잔 알 아랍(90+1분,자책골) / 박용우(37분,자책골), 야잔 알 나이맛(45+6분)]

한국 선수들(4-4-2 포메이션)
FW : 조규성(69분↔오현규), 손흥민
MF : 이재성(69분↔정우영), 황인범(90+4분↔박진섭), 박용우(46분↔홍현석), 이강인
DF : 이기제(46분↔김태환), 김민재, 정승현, 설영우
GK : 조현우
- 경고 : 황인범(28분), 오현규(90+5분)

요르단 선수들(3-4-3 포메이션)
FW : 알리 올완, 야잔 알 나이맛(84분↔아나스 알 아와닷), 무사 알 타마리
MF : 마흐무드 알 마르디(74분↔모하마드 아부 하쉬시), 라자에이 아예드(74분↔파디 아와드), 니자르 알 라쉬단(84분↔이브라힘 사데), 에흐산 하다드
DF : 살렘 알 아얄린, 야잔 알 아랍, 압달라 나시브
GK : 야지드 아부라일라
- 경고 : 에흐산 하다드(8분), 무사 알 타마리(18분), 야잔 알 아랍(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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