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어야겠다" 전직 장군의 변신…유죄 판단 뒤집은 대법원
‘구체적 민원 청탁’ 없이 대관 업무 대가로 돈을 받았을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특가법상 알선수재죄는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에 관해 의뢰인과 공무원 사이를 주선하며 대가를 받을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안철상)는 지난달 28일 피고인 A의 알선수재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본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A씨는 1975년 소위로 임관해 33년간의 군 생활 끝에 2008년 소장으로 예편했다. 2010년부터는 2년간 국방부에서 1급 상당의 고위공무원을 지냈다. 이어 B 대학교 산학협력중점교수로 근무하던 가운데 자신의 국방부·방위산업청 등 네트워크를 활용해 방산업체 자문에 응하며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제 A씨에게 손을 벌리는 방산업체가 나타났다. 2015년 1월 국산 기동헬기 제조·납품 업체 C사 관계자는 A씨의 서울시 중구 소재 사무실을 찾아 “회사 애로사항을 군 관계자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헬기 부족예산 현실화 ▶해상작전 헬기 국내 사업화를 통한 수주 ▶의무후송 헬기 납품물량 조정 ▶항공정비단지 사업 수주 등 사실상 사업 전반에 대해 회사 입장을 전달할 채널을 마련해달라는 취지였다. A씨는 C사와 자문계약을 체결했고, 자문료 명목으로 2015년 4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매월 약 300만원씩 총 3600만원을 받고, 또 활동비 명목으로 1980만원가량의 법인 카드 대금을 대납받았다.
A씨는 계약 체결 이후 C사 현안과 관련된 담당 공무원들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당시 A씨의 업무 활동을 기록한 C사의 문건에는 감사원 면담, 국방위원회 위원 면담 및 우호적 관계 구축 등이 적혔다. C사에는 군 출신을 포함한 수십 명의 임원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들 다수가 이런 유사 대관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붙은 A씨는 2015년 10월 방산업체들이 한데 모인 행사장에서 적극 영업에 나섰다. 여기서 기능성 전투화 소재를 군에 납품하는 D사 관계자를 만나 “나를 고문으로 해주면 군에서 D사 제품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고문 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했고 이후 수회에 걸쳐 체결 독촉도 했다. A씨는 결국 2개월 뒤 D사로부터 컨설팅 계약을 따냈다. D사의 의뢰사항은 다소 구체적인 “기능성 전투화 등 D사 제품이 계속하여 군에 납품될 수 있도록 군 관계자를 만나 로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A씨는 그 대가로 1900만원가량을 자문료로 받았다.
쟁점은 A씨가 의뢰인인 방산업체 등을 위해 관청을 상대로 일정한 업무를 하고 대가를 받기로 한 자문·컨설팅 계약 등이 특가법상 알선수재에 해당하는지였다 1·2심은 A씨가 C사와 D사와 맺은 계약에 대해 “(의뢰인 편의를 위해) 군공무원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알선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수수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모두 알선수재에 해당한다고 보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D사와의 계약은 알선수재에 해당하지만, C사와의 계약은 알선수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그 계약이 구체적인 현안의 직접적인 해결을 염두에 두고 체결되었고 의뢰 당사자와 공무원 사이에서 중개하거나 편의를 도모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서 보수가 지급되는 것이라면 이는 알선수재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도 “이와 달리 그 계약이 구체적인 현안을 전제하지 않고, 업무의 효율성·전문성·경제성을 위하여 피고인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둔 편의 제공에 대한 대가로서 보수가 지급되는 것이라면 통상의 노무제공 행위에 해당하여 알선수재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C사와의 자문계약이 구체적인 현안의 직접적 해결을 염두에 두고 체결되었다고 보긴 어렵다”며 “공소사실에 기재된 현안은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하여 사실상 C사가 수행하는 사업 전반에 관한 것인 데다 A씨의 전문성이나 인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C사의 입장이나 의사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거나 현안 관련 정보·설명을 제공하였다고 보일 뿐”이라고 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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