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인 대참사 겨우 피했다…요르단에 또 무너진 수비, 공격은 PK·자책골이 전부 [아시안컵]
김명석 2024. 1. 21. 07:03
아시아 우승을 자신하던 클린스만호가 2경기 만에 굴욕적인 참사를 당할 뻔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87위 요르단을 상대로 수비는 와르르 무너졌고, 공격진은 페널티킥과 상대 자책골로만 2골을 만드는 데 그쳤다. 그 여파가 조별리그 최종전까지 이어지게 돼 험난한 여정이 이어지게 됐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일 오후 8시 30분(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알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요르단과 2-2로 비겼다. 선제골을 넣고도 내리 연속 실점을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다가 후반 추가시간 상대 자책골 덕분에 가까스로 패배를 면했다. FIFA 랭킹 87위를 상대로 당할 뻔한 굴욕적인 대참사를 가까스로 피했을 뿐, 선수들 면면에서 나오는 객관적 전력 차를 감안하면 자존심을 구길 만한 결과였다.
출발만 좋았다. 기나긴 비디오 판독(VAR) 끝에 전반 9분 만에 페널티킥이 선언돼 손흥민(토트넘)의 선제골로 이어졌다. 객관적인 전력 차가 큰 맞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첫 과제를 잘 풀었다. 자칫 시종일관 공세를 펼치고도 일격을 맞아 경기가 꼬여버리는 시나리오를 잘 피하는 듯 보였다. 바로 전날 일본이 이라크에 이른 선제골을 허용한 뒤 충격패까지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라 더욱 값진 선제골이기도 했다.
그런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도 한국은 기세를 좀처럼 이어가지 못했다. 오히려 전반 중반 이후부터 급격하게 흔들렸다. 상대는 공격의 핵심인 양 측면 공격을 앞세워 한국을 흔들었다. 왼쪽엔 마흐무드 알마르디(알후세인)가, 오른쪽엔 무사 알타마리(몽펠리에)가 공격을 주도했다. 결국 전반 21분부터 8분 새 요르단의 슈팅 4개가 잇따라 한국 골문을 위협했다. 조현우(울산 HD)가 몸을 날린 선방으로 실점은 피했지만, 전반 중반 이후 분위기는 확실히 요르단에 넘어간 뒤였다.
요르단은 특히 한국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양 측면, 특히 이기제(수원 삼성)가 포진한 왼쪽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요르단의 전반 오른쪽 공격 비중이 무려 50%로 중앙(25.9%) 왼쪽(24.1%)에 비해 높았을 정도였다. 한국 수비가 흔들리는데도 벤치에선 전술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드리블 실패 등 공격이 허무하게 끊기고, 상대의 역습에 흔들리는 장면들이 반복됐다.
결국 전반 37분 동점골을 실점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상대 공격을 막으려던 박용우(알아인)의 헤더가 그대로 자책골로 이어졌다. 코너킥을 허용한 이전 장면부터 이미 수비는 상대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했고, 중원마저 상대에 공간을 크게 내준 모습이었다.
분위기는 이미 요르단으로 넘어갔다. 전반 추가시간 급기야 역전골까지 실점했다. 공격이 실패한 뒤 곧바로 역습을 허용한 게 화근이었다. 이기제가 상대 드리블에 힘없이 무너지면서 위기를 맞았는데, 다행히 상대 공격 실패로 이어져 실점을 면했다. 그러나 후속 상황에서 또다시 수비가 무너졌다. 알타마리가 페널티 박스 오른쪽에서 왼발 슈팅까지 연결하는 순간, 페널티 박스 안에 수비가 5명이나 있고도 뒤에서 달려들던 야잔 알나이마트를 완전히 놓쳤다. 알나이마트는 수비에 맞고 흐른 공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한국 골망을 또 흔들었다.
결국 한국은 전반을 1-2로 뒤진 채 마쳤다. 객관적인 전력의 우세, 이른 선제골이라는 이점에도 슈팅 수는 오히려 8-8로 팽팽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역전을 허용한 뒤에야 하프타임에 변화를 줬다. 이기제와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를 빼고, 김태환(전북 현대)과 홍현석(KAA 헨트)을 투입했다. 이기제가 빠진 왼쪽엔 설영우(울산)의 위치 변화로, 설영우 자리엔 김태환이 각각 자리했다. 지난 바레인전과 똑같은 변화였다.
후반엔 다시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맹공을 펼쳤다. 상대 첫 슈팅이 후반 중반 이후에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한국이 경기를 잘 풀었다기보다, 리드를 잡은 요르단이 전반과 달리 수비에 더 무게를 둔 영향이 컸다. 실제 요르단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하프라인 아래에 섰다. 전방에선 강력한 압박을 구사하고, 후방에선 밀집수비 형태로 한국 공격을 틀어막았다.
그런 요르단의 수비를 상대로 한국은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 못했다. 손흥민의 박스 안 침투를 중심으로 거듭 상대 골문을 노렸지만, 슈팅이나 문전 크로스는 번번이 두터운 수비에 막혔다. 조규성(미트윌란) 정우영(슈투트가르트) 등 문전에서 결정적인 슈팅 기회를 놓치는 장면들도 나왔다. 빠르게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 한국은 좀처럼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전반 손흥민의 페널티킥 득점 이후 전술적으로 직접 만든 골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후반 추가시간에야 가까스로 동점을 만들었다. 교체 투입된 김태환이 특유의 스피드를 앞세워 오른쪽 측면을 무너뜨린 게 시작이었다. 첫 공격 시도는 오현규(셀틱)의 머리에 빗맞으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흐른 공을 잡은 손흥민이 중앙으로 패스를 건넸고, 황인범(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이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날카로운 슈팅이긴 했으나, 이마저도 문전에서 상대 수비에 맞고 굴절돼 골문으로 빨려 들어간 자책골이었다. FIFA 랭킹 87위 요르단을 상대로 넣은 극적인 동점골에 클린스만 감독도, 선수들도 기뻐했다.
남은 10여분 간 역전의 기회들도 있었으나, 끝내 한국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결국 압도적인 전력 우위에도 불구하고 요르단과 2-2 무승부에 그쳤다. 상대가 수비에 무게를 둔 후반전 경기 양상 덕분에 슈팅 수에선 23-12로 크게 앞섰지만 정작 2골은 페널티킥과 상대 자책골로 만들어 냈을 뿐, 전력 차와 슈팅 수에 비례하는 많은 득점을 직접 만들어 내진 못했다. 2실점이라는 기록이 말해주 듯 중원과 수비진의 집중력 역시 경기 내내 기대에 한참 못 미친 경기였다.
참사만 면했을 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무승부. 그 여파는 조별리그 구상마저 영향을 끼쳤다. 만약 이날 요르단을 꺾었다면 한국은 승점 6을 기록, 최종전 결과와 상관없이 16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승부에 그치면서 여전히 요르단에 득실차에서 밀린 2위에 머물렀다. 오는 25일 말레이시아와 최종전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와 최종 순위가 결정된다. 주축 선수들의 체력 안배, 토너먼트에 대비한 경고 관리 등 모든 구상이 꼬인 채 최종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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