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 오브 락’ 반드시 자유로울 것 [쿡리뷰]
촬영 금지, 녹음 금지, 통화 금지, 그리고…‘시체 관극’ 금지. 지난 12일 한국에 상륙한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 공연은 “진지 빠는 즉시 귀가 조치”란 노랫말을 떠오르게 한다. 엄숙을 기본값으로 여기는 한국 관객을 끊임없이 자극해서다. 어린이 배우가 기타 줄을 긁어 ‘지징’ 소리를 낼 땐 손뼉을 치고 싶어진다. “여자는 권력자가 될 수 없나요? 그래 봐야 급여는 남자들의 70%밖에 못 받겠지만”이란 대사엔 환호성이 울컥 올라온다. 예비 관객을 위한 팁이 있다. 긴장을 풀 것. 충동을 따를 것. 시선을 의식하지 말 것. 반드시 자유로울 것.
뮤지컬은 2004년 개봉한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배우 잭 블랙이 주연해 글로벌 흥행수익 1억3100만달러를 거둔 바로 그 작품이다. 주인공 듀이 핀은 위기의 남자다. 자신이 만든 록 밴드에서 쫓겨난 거로 모자라 얹혀살던 친구 집에서도 내쫓길 참이다. 그는 신분을 속여 명문 사립학교에 임시 교사로 취직한다. 술과 록만 알던 듀이가 수업을 제대로 할 리 없다. 그는 학생들과 밴드를 결성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갈 궁리를 한다. 뮤지컬 제목인 ‘스쿨 오브 락’이 밴드 이름이다.
‘권력자에 맞서라’는 록 스피릿을 이식받은 덕분일까. ‘엄친아’ ‘엄친딸’만 모인 듯한 학생들은 점차 자길 억압하는 목소리를 직시한다. 기타리스트 잭은 사업이 바빠 자신에겐 귀를 닫은 부모님이 불만이다. 패션에 관심 많은 빌리는 “풋볼은 우리 집안의 유산”이라는 아버지 으름장에 숨이 막힌다. ‘똑쟁이’ 써머는 “미디어가 현대 여성에게 요구하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꼬집는다. 어린이 배우들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저 들어만 주세요”라고 노래할 때 어른 관객은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이들에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준다’는 학교의 교육방침도 경쟁 지옥에 빠진 한국과 닮았다.
어린이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는 록 음악은 팍팍한 현실에 지친 관객의 기운을 북돋는다. 배우들이 어려서 쉬운 곡만 연주할 거라 판단하면 오산이다. 잭이 무릎으로 바닥을 쓸며 기타를 연주하면,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온다. 목으로 리듬을 타며 베이스 기타를 퉁기는 케이티, 키보드를 앞에 두고 손가락으로 춤을 추는 로렌스, 심장을 울릴 기세로 드럼을 치는 프래디…. 학생들은 “너도 이제 밴드 멤버”라는 듀이의 합격 통보가 나오기도 전에 객석의 박수 소리로 입단 신고식을 치른다. 공연에 ‘합의된 박수 타이밍’ 따윈 없다. 관객은 언제든 흥이 오르면 손뼉을 치고 함성을 보낼 수 있다. 관람에 방해가 되기는커녕 공연 열기만 더 높일 뿐이다.
공연은 마지막 순간 절정을 선사한다. 듀이 역의 배우 코너 글룰리는 한국어로 “소리 질러”라고 외치며 흥을 돋운다. 객석에선 검지와 소지를 편 손들이 출렁댄다. 록을 상징하는 일명 ‘피스 손동작’이다. 배우들은 대사 중간 BTS(방탄소년단)와 블랙핑크를 언급하고 한국어로 “기사식당” “김밥천국”을 말하기도 한다. 한국 관객을 위한 팬서비스다. 영어로 말장난하는 대사가 충분히 번역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듀이가 여성인 교장 선생님을 두고 ‘더 맨’(The Man·권력자)이라고 하자 학생들이 ‘남자’란 뜻으로 알아들어 놀라는 장면 등이 그 예다.
‘권력자에 맞서라’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내겐 너무 섹시한 나’ 등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래 14곡은 영국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썼다. 웨버는 원작 영화에 나온 ‘스쿨 오브 락’ 등 3곡도 뮤지컬로 가져왔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 탄생의 또 다른 주역은 웨버의 아내 매들린 거든이다. 거든이 원작 영화의 뮤지컬화를 제안했고, 7년에 걸친 판권 협상에도 참여했다. 공연은 2015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돼 영국, 호주, 중국 등에서도 관객을 만났다. 한국 공연은 2019년 월드투어 내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오는 3월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볼 수 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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