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소년 연애 ‘이상적’으로 본 그리스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건 역사적으로도 또 자연적으로도 옳지 않은 일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동성애 반대론자’의 핵심 논리다. 이들은 인류 역사나 자연 생태계를 증거로 대며 “동성애는 매우 예외적인 병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동성애 비판을 위해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든 것인데, 그들이 책을 조금만 더 읽었더라면 자신들의 논리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도 자연적으로도 동성애는 지극히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군인 동성애 “공격은 OK 수비는 NO”
먼저 역사책을 펼쳐본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케네스 도버가 쓴 ‘그리스의 동성애’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대 그리스는 모든 현대 문명의 요람이자 ‘동성애의 성지’였다. 문명이 꽃피운 이곳에서 ‘동성애’는 엘리트의 의무와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왜 동성애를 이토록 장려했을까.
고대 그리스 남성 시민들이 무작정 ‘남색’에 빠진 건 아니었다. 이들의 동성연애에도 불문율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성인 남성(에라스테스)이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않은 소년(에로메노스)과 연애를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다 큰 남성끼리의 동성애는 ‘금기’에 가까웠다. 성인이 돼서까지 수동적인 항문 성교를 하는 남성은 ‘여자’라는 공개 모욕을 받았다(당시 고대 그리스는 여성 혐오 사회였다. 남성을 ‘여자’라고 부르는 건 멸칭에 가까웠다).
성인 남성과 청소년 사이 연애가 장려된 이유는 이 같은 관계가 ‘가장 이상화된 교육 형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대 그리스를 지탱하는 엘리트 남성이 미래의 인재들과 사랑을 나눔으로써 그들의 문화적 소양과 국가관을 전수할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엘리트 성인 남성인 에라스테스들은 소년들에게 멘토이자, 스승이자, 애인인 셈이었다. 교육적인 목적으로 권장되는 행위였기 때문에 소년의 몸에 털이 복슬복슬하게 나고 사내 냄새가 풍길 때가 되면 연애도 끝을 맞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소년 가니메데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 건 이 같은 문화적 맥락에서 비롯됐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머가 쓴 일리아드에서 묘사된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관계 역시 동성애적으로 묘사되고는 했다.
그리스를 계승한 고대 로마에서도 동성애는 금기가 아니었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일부까지 지배한 로마 제국 군인들은 정복된 땅의 피식민지인을 대상으로 성행위를 즐겼다.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았는데 특히 피식민 남성과의 동성애는 ‘왕성한 정력’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연애 관계에서도 ‘정복 정신’이 추앙받은 셈이었다. 동성애로 비난받았을 때는 ‘수비적’인 형태로 항문 성교를 즐겼을 때다. 동성애를 하더라도 남자답게(?) 군인답게(?) 하라는 의미였다. 속된 말로 ‘공격은 하되 수비는 하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동성애가 법적, 종교적으로 탄압을 받은 시기는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였다. 성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는 창세기의 타락한 두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빗대며 성의 방종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은 종교도 누를 수 없었다. 수많은 예술가·종교인·정치인이 동성애를 즐겼다. 르네상스 시대 위대한 거장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남성을 사랑했다는 증거를 곳곳에 남겼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대문호 오스카 와일드도 ‘남색’으로 이름을 날렸다. 동성애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 결코 작지 않은 셈이다. 역사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새끼 더 잘 키우기 위해 동성애 선택한 ‘흑조’
동물 약 1500종이 동성애적 행동한다고 보고
이제 책을 덮고 자연의 세계로 갈 시간이다.
여기 흑빛 윤기가 나는 아름다운 동물이 있다. 바로 ‘흑조’다. 두 수컷이 호수 위를 배회하면서 암컷 한 마리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짝짓기 상대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수컷 두 마리가 한꺼번에 암컷에게 다가간다. 삼각관계의 시작일까. 두 수컷 사이에 전운이 감돈다. 이 녀석들의 교미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두 수컷이 싸우는 대신에 같이 관계를 갖기로 결심한 것. 시쳇말로 하면 ‘난교’, 영어로는 ‘스리섬’. 두 놈들, 아니 세 놈의 화끈한 교미 소리가 호숫가에 울려 퍼진다. 40일쯤 지났을까. 암컷이 알을 낳았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알을 품은 그녀 옆에는 여전히 두 수컷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알이 부화하자 이 녀석들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제 암컷에게 다가가더니 둥지에서 내쫓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산후 조리도 마치지 못한 암컷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쓸쓸히 길을 떠나야했다. 새끼를 데려가려고 했으나, 두 수컷은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둥지도, 아이도, 사랑도 다 빼앗긴 신세가 된 셈. 수컷 두 놈의 전략은 계획적이었다. ‘두 놈’은 동성 커플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던 두 놈은 자신들의 새끼를 낳고 싶었고 알을 낳기 위해 암컷 한 마리를 끌어들인 것. ‘스리섬’을 가진 배경이었다.
또 다른 흑조 동성 커플은 알이 놓인 둥지를 빼앗는 방식으로 새끼도 훔쳤다. 인간으로 치면 유아 유괴다. 게이 커플인 사람들이 이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면 사회면 톱기사에 이름을 올렸을 테다. 동성 흑조 커플은 행복하게 새끼를 키웠다.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먹이를 잡는 법을 가르쳐줬다. 새끼가 둥지를 떠날 때까지 부모 역할에 충실했다. 일부일처로 이름난 흑조는 동성연애일지라도 ‘일부일부’ 원칙을 잘 지켰다.
흑조 세계에서 동성애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커플 중 25%가 수컷끼리의 동성연애다(암컷의 동성애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이 동성연애에 탐닉하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설은 존재한다. 동성연애 이유가 새끼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힘센 동성 커플이 새끼의 생존율을 훨씬 높일 수 있기에 동성 커플이 만연해진다는 이론. 연구진에 따르면 암컷-수컷을 부모로 둔 새끼 흑조가 독립할 때까지 생존율은 30%지만, 수컷-수컷 커플의 새끼 생존율은 80%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들의 둥지를 지켜내기에 수컷이 한 마리 있는 것보다, 두 마리 있는 게 아무래도 생존율이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 중 왜 유독 흑조만 남남 커플이 많은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동성애 반대론자는 여기서 다시 반문할 수도 있겠다. 흑조 한 종의 경우만 갖고 침소봉대하는 거 아니냐고. 줄리아 몽크 예일대 교수가 쓴 ‘동물의 동성 성적 행동과 그 진화에 대한 대안 가설’에 따르면, 동물 1500여종이 동성애적 행동을 한다고 보고한다.
코끼리도 그렇다. 고대 그리스인이 아마 코끼리를 봤다면, ‘지적이고, 철학적인 동물’이라고 칭했을 것이다. 코끼리의 연애 방법이 고대 그리스인을 닮아서다. 무리에서 떨어진 나이 든 수컷은 어린 수컷과 커플이 되고는 한다. 입과 입을 맞대고, 몸통을 부비는 등의 애정 행위는 이성 커플 못지않다. 어린 수컷은 애인인 늙은 수컷과의 연애를 통해 자연을 살아가는 이치를 자연스레 습득한다. 고대 그리스의 남성 시민들이 어린 청년에게 그러했듯이.
과거 생물학은 가르쳐왔다. ‘번식이 아닌, 쾌락을 위한 섹스는 오직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자연은 반증한다. 그들에게도 섹스는 쾌락을 위한 것이라고. 흑조와 코끼리, 그리고 동성애를 즐기는 1500여종이 증거다. 더 설득력 있는 ‘동성애 반대’를 외치기 위해서는 확성기를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정교한 반대 논리를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겠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3호 (2024.01.17~2024.0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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