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서로 '별에서 온 그대'입니다
[김동민 기자]
▲ 미래의 기원 책표지 |
ⓒ 인플루엔셜 |
이광형 KAIST 총장의 새 책 <미래의 기원>이 새해 벽두 출판시장에 화제를 몰고 왔다. 책의 장르는 '빅 히스토리'였다. 빅 히스토리는 인류의 역사를 우주의 기원인 빅뱅으로부터 시작해 은하와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 원핵세포에서 시작된 생명의 출현, 양서류와 파충류와 포유류를 거쳐 진화한 호모사피엔스의 출현, 그리고 비로소 인류사회의 역사를 서술하는 새로운 경향이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의 대상은 인류사회의 역사로 제한된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유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고갱의 그림처럼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존재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왔다.
이 질문은 철학의 주요 관심사였지만, 실증적인 사료를 중시하는 역사학은 철저하게 인류사회의 역사로 제한했다. 이 관행을 깨고 과학의 성과를 빌어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인류의 역사를 서술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역사학자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빅 히스토리였다.
빅 히스토리는 호주 매쿼리 대학의 역사학 교수 데이비드 크리스찬과 미국 도미니칸 대학의 교육학과 신시아 브라운 교수, 영국 액서터 대학 사학과 제러미 블랙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김서형의 빅 히스토리 Fe연대기(2017)>와 송만호·안중호의 공저 <사피엔스의 깊은 역사(2022)>가 있다. 필자도 미디어의 역사를 빅 히스토리의 맥락에서 서술한 <미디어 빅 히스토리 입문(2020)>을 내놓은 바 있다.
빅 히스토리의 시원은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197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퓰리처상을 받은 이 책의 제1장 '우주력'을 보면, 우주의 연대기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150억 년에 이르는 우주의 역사(아니면 적어도 대폭발 이후 현재까지의 우주의 역사)를 1년이라는 기간으로 압축"한 우주력을 제시해놓았다. 제러미 블랙(2016)과 송만호·안중호(2022)는 새롭게 계산된 우주 역사 138억 년을 1년으로 환산한 달력을 실어놓았다.
<에덴의 용>은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 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주로 인간의 뇌와 마음에 대한 추적에 비중을 두고 있다. <미래의 기원>과 시선이 같다. 세이건은 책의 서문 첫 문장에서 브로노프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 1973)>를 언급했다. 브로노프스키는 어느 한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예술과 과학, 철학, 심리학 등 학문의 전 영역을 아우른다는 것이다. 세이건 역시 그러했다. 빅 히스토리는 브로노프스키와 세이건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역사 서술의 새로운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광형 총장은 인류의 역사와 미래 전망을 우주에서 시작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혀놓았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원소는 빅뱅 이후 우주의 별과 초신성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주의 대부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소와 헬륨은 빅뱅으로, 헬륨부터 원자번호 26번 철까지는 태양보다 훨씬 크고 온도도 높은 거성에서, 그리고 27번 코발트 이후 92번 우라늄까지의 원소들은 초신성의 폭발로부터 생긴 것이다. 이 중에서 산소, 탄소, 수소, 질소를 합한 질량이 생명체 세포의 99%를 차지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 '별에서 온 그대'인 것이다.
<미래의 기원>을 관통하는 핵심 골자는 불완전한 전자의 이동성이다. 빅뱅 이후 우주공간에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 광자(빛) 등의 입자들이 빽빽하게 엉켜있는, 안개가 짙게 낀 것과 같은 우주구름(플라즈마) 상태였다. 빛도 갇혀있는 상태에서 38만년 가량 지난 후 수소와 헬륨의 원자핵들은 여유가 생긴 공간에서 전자들과 결합할 수 있었다. 원자의 탄생이다. 이렇게 우주의 역사는 불완전한 전자의 이동성에서 비롯되었다.
전자가 안정적이어서 활동성이 없었다면 핵자와 전자가 결합해 원자가 되는 우주 역사의 진전도 없었을 것이고, 인류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원소들이 결합해 생체 분자를 만드는 데도 전자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주가 항상 변화하는 동적 존재인 것은 전자의 불안정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전자기력이 작용하는 전자는 우주에서 가장 동적이고 가장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로서 명실 공히 우주 만물의 주인공이다.
전자의 불안전성은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모든 사고 작용은 뇌세포 속 전자(전하)의 이동에 의한 것이다. 전자가 이동한다는 것은 뇌세포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전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불안정하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에 바로 반응할 수 있다. 인류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서로 협력함으로써 생존과 번식을 지속하며 살아남아 역사가 된 것이다.
지혜로운 인류는 그 전자의 불안정한 이동성을 과학적으로 활용해 2차,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후 4차 산업혁명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전자의 이동을 신호처럼 이용하는 컴퓨터는 인간의 정보처리 속도를 빛의 속도로 바꾸어놓았다"는 것. 이게 바로 매클루언이 간파했던 지구촌의 실체이기도 하다. 전자의 활약이 빚어내는 인류사회의 놀라운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미래학자들의 주관적 미래 전망과는 달리 AI 전문가로서 인류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있다. 생명을 복제할 수 있는 줄기세포 기술, 유전자 기술에 의한 인위적 진화의 시작, 역사를 바꿀 새로운 인텔리젠스로서의 AI,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뇌와 컴퓨터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게 하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 등 격변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물론 "기술이 불러올 수 있는 어두운 면을 제대로 논의해 그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인체 죽더라도 뇌는 살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BCI 개발업체인 뉴럴링크(Neuralink)를 설립해 뇌 속에 칩을 심어 뇌와 컴퓨터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1차 목표는 장애인의 신체적·정신적 결함을 기술로 채우는 것이다. 머스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영생을 목표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의 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 업로드하고 저장했다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에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인체는 죽더라도 복제된 뇌는 살아있는 방식이다.
<미래의 기원>은 한국사와 세계사 서술에서 일부 아쉬운 부분도 발견되지만, 빅 히스토리 연구의 금자탑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인류의 미래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과학적 진단에 따른 의지적인 노력이 담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얘기다.
사람이 지나치게 AI에 의존하게 될 경우 뇌의 사용에 불균형이 생김으로써 사유를 담당하는 전두엽과 기억을 담당하는 측두엽이 위축되는 반면에, 문자 대신 영상에 익숙하게 됨으로써 언어 중추영역이 쇠퇴하고 영상을 처리하는 후두엽이 발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니 연구나 창작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AI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말고 복잡한 문제도 회피하지 않음으로써 뇌세포를 꾸준히 사용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두엽의 퇴화는 인간 지성의 손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육운동을 하는 것처럼 뇌도 사고력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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