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한 이태원 참사 유족의 절규 "국힘에 뒤통수를 맞았다"

김종훈 2024. 1. 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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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300여 명 시민 "윤 대통령, 인륜 어긋나는 짓 해서는 안돼"... "거부권 거부" 호소

[김종훈 기자]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를 출발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건의한 국민의힘을 규탄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특벌법 공포를 촉구하는 도심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 유성호
 
"시민 여러분 제 머리를 똑똑히 봐주십시오. 제 머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습니다. 제 가슴에도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저희 아이들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진상을 규명하려고, 고통을 참으며 인내하며 견뎌냈습니다. 땅바닥을 기고, 곡기를 끊으며, 우리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를 간절히 원하며 기다려왔습니다. 비로소 국회에서 합법적으로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 여당의, 국민의힘에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20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 이태원참사 분향소 앞에서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절규하듯 외친 말이다. 

이 운영위원장은 "지금껏 하는 집권 여당의 행태는 조사위 행태를 무력하게 하려는 것뿐"이라면서 "유족들은 특별법 거부하는 국민의힘을 거부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 법을 거부하면 우리도 이 정권을 거부하고 맨 앞자리에 서서 정권을 규탄하고 비판할 것"이라고 외쳤다. 

이날 이 운영위원장은 300여 명 시민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참사 특별법) 즉각 공포를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이후 유족과 집회 참가자들은 "대통령 거부권 건의한 국민의힘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종로와 을지로를 거쳐 서울광장 분향소까지 행진했다.

"윤 대통령, 인륜 어긋나는 짓 해서는 안돼"... "거부권 거부하라"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대회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유성호
 
▲ 이태원참사 유가족 “정부 잘못 조사에 국민의힘 이러쿵저러쿵 나서냐” ⓒ 유성호

광화문 집회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윤석열 정부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신속한 공포 등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거부권을 건의한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전국비상시국회의 김상근 목사는 절절한 목소리로 "윤석열 대통령님, 정말로 이태원 특별법까지 또 거부할 것이냐"면서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라고 호소했다. 김 목사는 "거부권 행사는 희생자 159명을 농락하는 짓"이라면서 "폭우 속 행진으로 호소한 유족들의 아픈 가슴에 소금을 뿌리는 짓이며, 질퍽한 눈 위에 몸을 던져 호소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찢긴 가슴을 헤집어 고춧가루를 뿌리는 짓"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륜에 어긋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참사 희생자 고 최혜리씨의 어머니 김영남씨도 연단에 올라 발언했다. 두꺼운 털모자를 쓰고 있던 그는 모자를 벗으며 "아이가 그 좁은 골목에서 마지막 전화를 했다"면서 "지금도 매일 그 좁은 골목에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져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대통령이 하루빨리 특별법을 공포해 달라"라고 울먹이며 호소했다.

이날 현장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최고위원과 정의당 김준우 비상대책위원장,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도 함께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연단에 오른 박 최고위원은 "참담한 심정으로 (이곳에) 섰다"라고 말하며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희생됐다. 진상을 밝히고 추모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책을 세우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 여기에 보수냐 진보냐의 이념의 문제가 어디에 있냐"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박 최고위원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임무를 지닌다"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누구보다 그 책임을 무겁게 져야 하는데 참사가 벌어진 지 오늘로 448일이 되었지만, 여태까지 공식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즉각 수용하라. 국민의 뜻을 거역하지 말라"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김준우 비상대책위원장도 "참사가 일어났을 때, 사회가 알아서 당연히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면 유가족들이 이렇게 견딜 수 없는 수모를 견뎌가며 집회 맨 앞자리에 앉을 이유가 없다"라고 지적하며 "형사처벌에 국한되지 않는,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한 거다. 검찰 수사로 파악되지 않은 많은 것들, 많은 진실들을 우리는 규명하고 기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른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는 같은 당 강성희 의원이 전주에서 윤 대통령을 만났을 때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가 입이 막힌 채 사지가 들려 행사장 밖으로 쫓겨난 사건을 언급하며 "이것은 강성희가 아니라 국민의 입을 틀어막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와 여당은 이것(강 의원의 행동)이 금도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지만 단 한 명의 책임자도 처벌받지 않고 책임 장관이 여전히 고개를 뻣뻣이 들고 돌아다니는 것, 하루아침에 자식 잃고 유족이 된 부모님들이 한겨울 바닥 오체투지까지 하며 만든 진상조사특별법을 집권 여당이라는 자들이 기어코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요구하는 것이야 말로 금도를 넘은 것 아니냐"라고 노성을 터트렸다.

거부권 건의한 국힘 "야당 단독으로 법안 심의, 처리"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대회에 참석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건의한 국민의힘을 규탄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특벌법 공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대회에 참석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건의한 국민의힘을 규탄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특벌법 공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한편 국민의힘은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법안 심의, 처리 과정에서 야당 단독으로 진행된 점 ▲특조위가 야권 7명, 여권 4명으로 구성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 ▲불송치 또는 수사 중인 사건 기록까지 열람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점 ▲국회의장 중재안이 아닌 민주당 안을 의결한 점 등을 거부권 행사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은 국회의장 중재 등을 통해 원안에 비해 여당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시행 시기 역시 총선 이후인 4월 10일부터로 하고, 특별검사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삭제됐다. 유족들의 조사위원 추천권도 국회의장과 관련 단체들이 협의해 추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조사위 활동기간 연장도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축소됐다.

국민의힘이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날, 이 위원장을 포함해 십여 명의 유족들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희생자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삭발하며 강하게 반발한 이유다. 윤 대통령은 조만간 여당 건의대로 거부권 행사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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