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에게 당한 베트남, 박항서 후임 감독에 독설 "선수 아닌 트루시에 때문에 졌다"
(엑스포츠뉴스 김지수 기자) 베트남 언론이 자국 축구대표팀이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인도네시아에게 당한 패배의 책임을 필립 트루시에 감독에게 돌리고 있다. 일본전에서 '졌지만 잘 싸웠다'고 위로했던 여론이 불과 며칠 사이에 완전히 바뀌었다.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지난 19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 위치한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 2차전에서 인도네시아에게 0-1로 졌다.
베트남은 0-0으로 맞선 전반 39분 인도네시아 공격수 라파엘 스트라윅의 박스 안 침투 때 수비스 응우옌 탄 빈이 경합 과정에서 반칙을 범했다. 주심은 지체없이 인도네시아의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베트남 선수들은 거세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시즌까지 K리그2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었던 아스나위 망쿠알람 바하르가 키커로 나서 득점을 성공시키면서 베트남의 골망을 흔들었다.
베트남은 실점 후 동점골을 얻기 위해 파상공세를 퍼부었지만 인도네시아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설강가상으로 후반 추가시간 한 명이 퇴장당하며 수적열세까지 겹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베트남은 인도네시아전 패배로 2023 AFC 아시안컵 본선 24개 참가국 중 가장 먼저 탈락이 확정됐다. 오는 24일 이라크와 조별리그 최종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기더라도 16강 토너먼트에 오를 수 없게 됐다.
D조는 이라크가 지난 19일 일본을 2-1로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2연승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이라크는 베트남에게 지고 일본이 최종전에서 인도네시아를 이기더라도 아시안컵 승자승 원칙에 따라 조 1위로 16강에 오르게 된다.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2019년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에서 8강에 오르는 돌풍을 보여줬다. 하지만 5년 뒤에는 가장 먼저 짐을 싸는 불명예를 안았다.
박항서 감독의 뒤를 이어 베트남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필립 트루시에 감독은 베트남 언론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받게 됐다. 지난 19일 일본전 2-4 패배에도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 무색하게 전술과 선수 기용에서 비판에 직면했다.
베트남이 인도네시아에게 무릎을 꿇은 건 7년 만이다. 박항서 감독 시절에는 경기력이 좋지 않더라도 최소 무승부를 거둬왔다. 인도네시아전 패배가 더 실망스러운 이유다.
베트남 매체 'VOV'는 "트루시에 감독은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 앞서 남은 조별리그 2경기에서 승점 6점을 따겠다고 과감하게 밝혔다"며 "그러나 트루시에 감독의 발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에게 0-1로 지면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혹평했다.
또 "베트남이 인도네시아에 졌을 때 (페널티킥을 내주는 반칙을 한) 응우옌 탄 빈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탄 빈은 실수로 인도네시아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동료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는 데 간접적인 영향을 줬다"며 "그러나 탄 빈은 베트남 패배의 희생양이 아니다. 베트남이 일찍 귀국해야 했던 가장 큰 책임은 트루시에 감독에게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VOV'는 트루시에 감독의 전술과 용병술에 문제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공을 컨트롤하는 플레이에 실패했고 선수 배치 역시 효과저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VOV'는 이와 함께 "베트남이 아시안컵을 앞두고 주축 선수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트루시에 감독에게 돌리기는 어렵지만 트루시에 감독은 자신의 철학, 선수 기용법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베트남이 2026 북중미 4개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에서 인도네시아에게 패해 탈락한다면 대다수의 팬들이 트루시에가 경질되길 바란다는 예언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베트남 매체 'Vietnam net'도 "응우옌 탄 빈도 잘못했지만 트루시에 감독이 틀렸다"며 "트루시에 감독은 일본전이 끝난 뒤 밝은 표정으로 영웅처럼 환호했다. 베트남이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를 쉽게 이길 수 있다고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베트남의 패배는 응우옌 탄 빈의 실수에서 나왔지만 전체적인 평가는 트루시에가 잘못했고 가장 높은 책임이 있다"며 "트루시에 감독 비판에 가세했다.
프랑스 출신인 트루시에 감독은 1997년 나이지리아를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면서 주목받는 지도자가 됐다. 나이지리아 축구협회와 갈등으로 프랑스 월드컵 본선을 지휘하지는 못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지휘봉을 잡고 조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트루시에 감독은 프랑스 월드컵 개막전에서 조국 프랑스에게 0-3으로 패했지만 이후 덴마크와 1-1, 사우디아라비아와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2무 1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지만 사임했다.
트루시에 감독은 1998년 일본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지도자 커리어 전성기를 맞았다. 1999 FIFA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일본의 준우승을 견인한 것을 시작으로 2000 시드니 올림픽 8강, 2000 AFC 아시안컵 우승,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트루시에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 일본이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 등과 함께 H조에 편성되는 행운까지 겹쳤다. 한국이 우승후보로 꼽혔던 포르투갈, 북중미의 강호 미국, 유럽의 복병 폴란드와 D조에서 경쟁한 점을 고려하면 무난한 조편성을 받아들였다.
트루시에 감독의 일본은 벨기에전 2-2 무승부, 러시아전 1-0 승, 튀니지전 2-0 승리를 발판으로 2승 1무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다만 16강에서는 튀르키예에게 0-1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트루시에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 종료 후 일본을 떠났다. 카타르 국가대표팀, 프랑스 리그앙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모로코 국가대표팀을 거쳤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도자 커리어가 하향세를 겪고 있던 상황에서 지난해 '베트남 축구의 아버지' 박항서 감독의 후임으로 베트남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 그러나 부임 초기 경기력과 결과 모두 부진하면서 베트남 언론과 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엑스포츠뉴스 DB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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