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의 비극' 재현, 높아진 한일전 조기 성사 가능성

이준목 2024. 1. 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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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축구, 아시안컵에서 첫 이변의 희생양... 클린스만호도 반면교사 삼아야

[이준목 기자]

지나친 자만심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일까. 일본축구가 아시안컵에서 첫 이변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며 위기에 빠졌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일본대표팀은 1월 19일(한국시간) 카타르 알 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2023 AFC 아시안컵' D조 2차전에서 이라크에게 1-2로 패했다. 2승을 거둔 이라크는 일본(1승1패)을 제치고 조 선두에 올랐다.

일본 축구는 이라크와는 오래전부터 악연이 있다. 바로 일본 축구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경기로 꼽히는 경기는 1993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최종전이었다. 당시 일본은 최종전에서 이라크를 상대로 이기면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경기 종반까지 이라크에 2-1로 앞서가며 월드컵행을 눈앞에 뒀으나 후반 추가시간에 이라크의 자파르 옴란에게 뼈아픈 실책성 동점골을 허용하며 2-2 동점에 그쳤다. 동점골을 허용한 순간 일본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 쓰러지며 좌절했다. 당시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었던 일본 선수 중에는 바로 모리야스 현 감독도 있었다.

반면 한국은 같은 시간 북한을 3-0으로 완파했고 이란이 무승부로 일본의 발목을 잡아준 덕분에 골득실에서 일본에 앞서 극적인 뒤집기로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며 환호했다. 한국에는 '도하의 기적', 일본에는 '도하의 비극'으로 유명해진 장면이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일본은 이라크와 한조에 편성되어 비극의 장소였던 카타르에서 다시 재회하게 됐다. 모리야스 감독은 이라크와의 2차전을 앞두고 당시 '도하의 비극'를 언급하는 뼈있는 질문을 받자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31년 전에 비하여 양국 축구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 상태였다. 현재 일본의 피파 랭킹은 17위, 이라크는 63위에 불과했다. 경기를 앞두고 대부분의 전문가와 축구팬들은 당연히 일본의 낙승을 예상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1993년의 일은 지금의 나와 우리 선수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막상 경기는 모리야스 감독의 호언장담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일본은 전반 5분 만에 골키퍼의 실수로 실점을 내준 데 이어 전반 추가시간에도 다시 한 골을 헌납하며 끌려갔다. 이라크의 아이멘 후세인은 헤더로만 멀티골을 터뜨렸다.

일본은 후반 48분에야 엔도 와타루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이라크는 추가시간 8분을 잘 버텨내며 더 이상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이 이라크에 A매치에서 패배한 것은 1982년 아시안게임 이후 무려 42년 만이었다. 적어도 지지는 않았던 1993년 도하의 비극보다 더 굴욕적인 시즌 2가 된 셈이었다.

일본은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일본은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을 이끈 모리야스 감독과 재계약하며 전력의 연속성을 이어왔고, 2023년 6월 엘살바도르전을 시작으로 베트남과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까지 A매치 11연승 행진을 질주했다. 

일본은 이번 아시안컵 최종명단에서 유럽파만 이번 대회 출전국 최다인 20명에 이르렀다. 조편성도 무난하여 사실상 적수가 없다는 평가였다. 전문가들은 객관적 전력에서 가장 앞선 일본과 한국이 아시안컵 결승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본은 막상 아시안컵에서는 베트남과의 1차전부터 불안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최근 전력이 많이 상승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 수아래로 꼽히던 베트남에게 전반전 세트피스로만 두 골을 허용하며 끌려가다가 간신히 역전승을 거뒀다. 이라크와의 2차전에서도 전반에만 두골을 내주며 단 한번도 리드를 잡지 못하고 끌려가기만 하다가 무릎을 꿇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일본의 가장 큰 약점은 수비 불안이다. 일본의 주전 골키퍼 스즈키 자이온은 가나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혼혈로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2022년부터 A대표팀에 승선했다. 하지만 이제 21세로 첫 메이저대회인 아시안컵에서 경험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며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2경기에서 벌써 4실점을 허용했다.

수비진도 핵심이던 토미야스 타케히로가 부상에서 회복 중이라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수비는 세트피스와 공중전에서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후방 불안과 이른 실점으로 끌려가는 경기가 거듭되면서 덩달아 만회골에 조급해진 공격진의 골결정력마저 흔들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아시안컵은 1라운드까지만 해도 이변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일본-호주-카타르-이란 등 전통의 강호들이 내용을 떠나 모두 첫 승을 챙기며 무난하게 조별리그 통과를 위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듯 했다. 일본의 이라크전 패배는 이번 대회 최초이자 최대의 이변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D조의 16강 진출 판도는 물론이고 향후 토너먼트 대진표까지 혼돈의 나비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종전에서 이라크는 베트남을, 일본은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를 상대한다. 현재로서는 이라크가 3승으로 D조 선두를 확정지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이 만일 인도네시아에게까지 덜미를 잡힌다면 우승후보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이겨도 현재로서는 D조 2위가 더 유력하다. 이 경우 덩달아 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은 바로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다. 현재 한국은 1차전에서 바레인을 3-1로 완파했고, 20일 요르단과 2차전을 치른다. 한국이 2연승으로 E조 선두를 조기에 확정 짓는다면 16강 상대는 일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승전에서 맞붙을 것으로 보였던 최대의 우승후보이자 흥행매치인 한일전이 예상보다 일찍 성사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16강에서의 맞대결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번 대회에서 '우승 아니면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만일 서로에게 패하여 조기 탈락하는 쪽은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설사 이긴다고 해도 남은 경기가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일본의 예상밖 부진은 클린스만호에게도 좋은 자극이자 반면교사가 되어야 할 부분이다. 적수가 없을 것 같던 일본도 언더독들에게 고전할만큼 아시안컵은 만만한 대회가 아니다. 한국도 요르단을 꺾지 못한다면 16강을 장담할 상황이 아니다. 또한 토너먼트에서 일본과 마주치게 된다고 할지라도 일본이 마냥 두려워할 상대가 아니라는 점도 확인했다. 한일전에 대한 걱정은 일단 요르단을 꺾고 16강진출부터 확정된 다음에 해도 늦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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