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새 엄마들은 참 이상하지... 서른 넘으면 내 새끼 아닌데"

전윤정 2024. 1. 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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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은퇴 후 만난 공부의 즐거움...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 쓴 정경아씨

[전윤정 기자]

2024년, 새해 다짐이 작심삼일로 끝났다면, "진짜 새해는 설날(올해 2월 10일)이지~" 하면서 아직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운동하기, 영어 공부, 다이어트, 독서 등 매년 비슷한 새해 계획만 세우고 있다면 '매년 한 가지씩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일 저지르기'를 통해 유쾌하게 살아가는 인생 선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지구 생활 30년을 두 번이나 무사히 마친 K-그랜마(할머니) 정경아씨는 세 번째 30년을 진입한 기념사업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중국어, 춤, 펜화 등 매해 새로운 공부에서 만난 인생의 크고 작은 즐거움을 에세이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세미콜론)에 담아 펴냈다.

매년 새로운 목표를 신나게 달성하는 '경험 부자' 정경아 작가를 지난 4일 서촌 건강책방 <일일호일>에서 만났다.

안 해 본 일 저지르기
 
 인터뷰 장소인 건강책방 일일호일에 전시된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를 소개하는 정경아 작가
ⓒ 전윤정
 
-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나이가 55년 양띠, 68세이고요. 코리아타임스, 주한 미국 대사관 등에서 30년 가까이 일했어요. 지금은 퇴직해서 '일주일에 세 번, 동네 문화센터에 놀러 가는' 할머니로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 책에 '종이신문 신간 리뷰 기사'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이번엔 작가님의 책이 여러 일간지에 실렸어요.

"신기합니다. 동네 문화센터 다니는 것이 자랑거리냐며 놀리는 사람도 있지만요. 그동안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는 사회와 가정에서 열심히 일했어요. 이제 그 역할로부터 해방된 우리를 손주 육아를 위한 예비 인력으로만 보는 것은 부당한 사회적 압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생애 세 번째 '30년' 동안 가슴 설레는 것을 찾아 배우면서 새로움으로 채워보자는 책의 주제를 좋게 봐주신 듯해요."

- 지난달, 이곳 건강책방 <일일호일>에서 북토크도 하셨어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한 독자분은 본인 얘기를 하다 울컥해서 울기도 했고요. 60세가 넘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제 삶이 정답이 아니지만,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내 멋대로 살아보자고 말하니까 힘을 얻었대요. 스스로 자가 발전기를 돌리면서 우리 먼저 행복해지자고 했어요."

- 작가님께 '자가 발전기'는 '매년 한 가지씩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일 저지르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게 마음먹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퇴직하고 나니 우울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시간이 없다, 돈이 없다'라면서 못 해오던 일이 생각났어요. 인생이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겠어요. 그냥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를 경험해 보는 것이죠. 그래서 한 해에 한 가지씩 뭔가 해보자. 어떤 해는 중국어를 시작해보고, 블로그 만들기, 펜화 그리기, 한국 무용도 시작해보고 어떤 해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고, 혼자 독립여행도 가보고요."
 
▲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 책표지
ⓒ 세미콜론
 
- 먼저, '문화센터에 일주일에 2번' 가시는 중국어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중국 여행을 갔다가 나도 중국어로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7년에 올해는 중국어를 배워야지 하고 가까운 동네문화센터에 등록했죠. 동네문화센터는 접근성이 좋고, 수강료가 저렴하고, 동년배도 많아서 부담이 없거든요. 배운 지 2년쯤 됐을 때, 뭐 까짓것 시험 한 번 봐볼까 하고 4급까지 봤어요."

- 시험공부가 어렵지 않으셨나요?

"쉽지는 않았죠. 두 개를 외우면 하나를 반드시 잊어버리니까. 그래도 계속하는 거예요. '노느니 염불이다' 하면서요. 우리 세대는 '시간 부자'이기도 하니까요. 2019년 시험을 보러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제가 시험 감독인 줄 알고 교탁으로 안내하더라니까요. 아니라고 시험을 보러 왔다고 했죠. 우리 때는 OMR 카드 같은 것이 없었으니까 어려웠지만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 문화센터 중국어반 동료들과 뒤풀이도 즐기시면서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결국 사람이 사람을 이끌어가니까요.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공부하고, 어떤 때는 '너 혼자만 너무 잘하지 마' 이렇게 막 서로 견제구를 날리기도 하고요. 자기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해요. 능동적 배움은 이렇게 즐겁구나 싶어요. 5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한데, 중간인 제가 반장이랍니다.(웃음)"

- '문화센터에 가는 일주일에 1번'은 한국 무용 수업이라고요?

"네, 춤 반에 가면 오히려 제가 젊은 축이에요. 한국 무용은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하니까 70대, 80대도 많아요. 무용 선생님 그러는데 무릎에 제일 부담이 덜 가는 게 한국 춤이래요. 한국 춤은 호흡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호흡에 그 동작의 깊이와 무게가 실리는 거니까요. 어떤 면에서 자기 삶의 연륜이 실린다고 할까요.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하는 순간이 좋아요."

- 새로운 공부친구뿐 아니라 오래된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데요.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는 비결이 있을까요?

"말수를 줄이면 돼요(웃음). 경청해주는 '굿 리스너(good listener)'가 되면 다들 좋아해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쟤가 열심히 사는구나, 이런 걸 잘하는구나 싶으면서 먼저 칭찬이 나와요. 나도 너도 애쓰고 살았구나 싶어 서로가 기특해하는 거죠.

특히 학교 친구들과는 성적으로 서로 경쟁하고, 그 다음에 직업, 그다음엔 남편 직장, 애들은 어느 학교 갔나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았잖아요. 이제는 그런 것이 다 없어지고 평등하게 서로 늙어가고 있다는 동지애를 느끼는 거죠. 그렇게 연결될 수록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걸 느껴요."

- 작가님뿐 아니라 같은 세대 분들이 '어르신'이란 단어를 불편해한다고요?

"'어르신'에는 존중의 의미보다 나이를 기준으로 한 신체적인 의미가 더 많은 듯해요. 너무 민감한지도 모르지만, 때론 비하의 느낌도 들어요. 특히 지금같이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서 '어르신'은 무능력하고 소외된 집단처럼 여겨질 때가 많으니까요.

정부나 사회(지자체나 도서관 등)에서 계속 디지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계속 업데이트하는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죠. 기차표도 못 사고 모바일 뱅킹도 못 하면 결국 주위 사람한테 민폐를 끼치잖아요. 특히 자식들한테. 물론 임영웅 콘서트 표는 우리가 아무리 배워도 잘못하니까 그런 거는 예외로 하더라도 말이죠(웃음)."

- 자녀들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TV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를 예로 든 문장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중·노년 엄마들이 자녀의 사생활을 지켜보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다고요.

"맞아요. 자녀가 나이 서른이 넘으면 내 새끼가 아니에요. 사회적 인간관계로 '예의를 갖춰서' 지내야 하는 거죠. 전 자식들 인생에 '최소 개입의 원칙'을 가지고 있어요. 제 아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채로 각각 독립했어요. 독립한 딸 집의 비밀번호도 1년이 지난 후 딸이 말해서 알았어요. 그 전에는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제가 애들 집에 반찬을 갖다주고 싶을 때도 문자에 답이 오면 가요. 오지 말라고 하면 안 가요. 자녀의 생활 공간은 사생활로 지켜줘야지 함부로 들어가고 내 마음대로 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도 똑같이 존중받고 싶기 때문이에요."

나이 들면서 결핍되는 건 '새로움'
 
 지난 12월 8일 건강책방 <일일호일>에서 열린 북토크
ⓒ 세미콜론
 
- 작가님 책을 읽고 '나도 내 책상을 갖고 싶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 자극을 받는 분이 많은 듯합니다. 작가님만의 글쓰기 비법을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사진 메모'에요. 요즘은 누구나 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잖아요. 길을 가다가 어떤 장면이 있으면 꼭 사진을 찍어요. 고양이하고 놀고 있는 아이들이라든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딸려 나오죠.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나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릴 때는 제가 직접 그린 펜화도 같이 실어요(☞ 정경아 시민기자 기사 보러 가기). 친구들이 '그림 되게 못 그린다~' 하면서도 '개성있고 귀엽네' 해줘요. 어째든 열심히 그려요. 그림 또한 나만의 기록이니까요."

- 작가님 글은 호쾌하고 명랑함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 나와서 참 애쓰면서 살잖아요, 길어야 100년인 인생을 어떻게든지 잘 살아보려고. 남편과 자녀들하고 어떻게든 잘 해보려는 예쁜 마음이 있잖아요. 그 마음으로 보면 동네 사람들도 예쁘게 보이고, 동네 고양이도 예쁘게 보이고 '그래, 너도 애쓰는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죠. 그래서 지나가는 초등학생을 봐도 '그래, 잘 해보렴. 화이팅!' 하고 축복의 화살을 날리고 그러는 거죠. 그런 시선이 글에도 담긴 듯해요."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생 같은 건 없다. 늙어가는 것이 낡아가는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점점 결핍되는 건 새로움이에요. 그러니까 새로운 생각을 위해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글도 써보는 것도 좋은 거죠. 하모니카를 배우고 춤도 배우고 이러면서 자기 삶에 부족한 새로움을 채워나가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 아닐까요? 그런 사소하고 자잘한 즐거움이 일상의 루틴이 되고, 그 일상의 아름다운 연속성이 'Life is Wonder-full!'로 만드니까요!"

가슴 설레는 새로움으로 삶을 멋지게 채워가는(Life is Wonder-full) 정경아 작가의 책과 이야기를 통해 노년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유로움을 느꼈다. 노년이란 그저 쓸쓸하게 녹슬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반짝반짝 연마해가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올해는 또 어떤 해보지 못한 일을 저지르며 즐거움을 찾아갈지 정경아 작가의 명랑 노년 탐사기가 계속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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