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인간에게 다가오는 일은 매우 특별한 일"
멕시코를 여행 중이다. 길 위에서 조우하는 사람을 인터뷰한다. 아래는 작년 11월 25일에 방문한 회색고래의 출산지, 산이그나시오석호에서의 회색고래관찰 전문가이드 이야기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 비즈카이노 생물권보전지역인 산이그나시오라군 |
ⓒ 이안수 |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Baja California Peninsula)의 라구나 산이그나시오(Laguna San Ignacio)는 사구와 사막, 멀리 산맥의 그림자가 드리운 석호의 아름다운 바다 경관만으로 매력적인 곳이다. 하지만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더 큰 이유는 회색고래 때문이다.
회색고래들은 번식과 출산을 위해 알래스카의 베링해에서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주의 따뜻한 바다로 이동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동물 중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회색고래는 북쪽의 먹이지역에서 충분히 체중을 늘린 다음 남쪽으로 이동해 12월 중순부터 4월까지 이곳에 머물며 분만과 수유를 한다.
엄마와 새끼가 함께 생활하는 장엄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린다. 이 석호의 사막이 생활 터전인 몇 분 어부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자동차길이 나지 않은 오지였죠. 진입로 일부 지역이 포장된 것도 불과 몇 년 전입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 것은 고래관찰투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겨나고 부터죠. 수십 년 전 이 땅은 고래잡이 일본인들이 머물며 고래를 잡아 기름을 만들던 곳이었습니다."
회색고래는 몸길이 12~16m 정도, 최대 무게 45톤의 체중으로 몸체는 회색에 하얀 따개비들이 붙어있거나 얼룩덜룩한 반점이 있다. 이들은 먹이터와 번식지 사이, 16,000~22,000km를 주기적으로 이동한다. 물 밖으로 온몸을 드러내는 브리칭(Breaching)과 물 밖의 상황을 엿보기 위해 물 위로 머리를 수직으로 드는 스파이호핑(Spy-hopping)이라는 개성적인 습관으로 관찰자들을 매료시킨다. 특히 호기심 많은 행동으로 간혹 스스로 배로 접근하여 관찰자의 접촉을 허용한다.
▲ 머리를 수직으로 드는 스파이호핑(Spy-hopping). 우리나라에서는 머리를 물 밖으로 세우고 있다가 사람을 보면 귀신같이 사라진다고 해서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라는 이름을 얻었다. |
ⓒ Gerardo |
우리나라에서 회색고래는 머리를 물 밖으로 세우고 있다가 사람을 보면 귀신같이 사라진다고 해서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이름을 고래 가이드에게 했을 때 흥미로워했다. 회색고래는 태평양의 동부와 서부의 무리로 나누어져 생활하는데 한국의 귀신고래는 서부의 무리에 속한 고래이다.
이 귀신고래는 울산 울주의 선사시대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로 남을 정도로 우리 연안 바다에 흔했던 고래로 1911∼1964년 우리나라와 사할린 연안 등지에서 1천338마리의 포획 기록이 있으나 1964년 5마리의 포획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원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러시아와 일본의 포경회사들의 대량 포획 때문이다. 2008년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원에서는 '귀신고래를 찾습니다!'라는 공고를 냈다.
"일 만년 동안 겨울철이면 한반도 연안을 찾아왔던 귀신고래, 그 이름도 한국계 귀신고래. 1970년대 이래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사할린 연안에서 120여두의 서식이 확인되었으며, 연간 3%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국제포경위원회, 2007), 과거처럼 우리바다에서의 발견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우리 바다에서 귀신고래를 발견하여 제보해 주시면 포상금을 드립니다. *혼획·생존·죽은 귀신고래 신고 시 1천만 원. 사진·동영상 제공 시 5백만 원."
이처럼 고래연구소가 발견자에게 포상금을 걸어놓고 해마다 귀신고래의 회유 시점인 12월~1월에 동해에서 귀신고래 목시조사(선박을 활용해 조사원이 망원경으로 고래의 종류·마리수·행동을 관찰)를 수행하고 있지만 아직 발견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 회색고래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얘기를 듣기위해 이 석호에서 15년째 고래를 만나고 있는 제라르도(Gerardo)씨를 인터뷰했다.
▲ 석호에서 15년째 고래를 만나고 있는 제라르도(Gerardo)와 회색고래 어미와 새끼 벽화 |
ⓒ 이안수 |
내가 그를 만났던 장소는 산이그나시오 석호의 라프레이데라(La Freidera)라는 곳으로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 포경업자들이 고래를 잡고 가공했던 장소였다. 회색고래는 대서양에서 남획으로 먼저 멸종위기에 처했고 이어서 이곳 바하칼리포르니아 석호에서도 거의 멸종 위기까지 갔었다. 다행히 1946년 국제 포경 규제 협약(ICRW ; 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Regulation of Whaling)에 따라 보호를 받게 되었고 1994년에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 이 지역의 이름이 '라프레이데라(La Freidera)'라고 하더군요. 고래와 관련한 특별한 의미가 반영된 이름이라고 들었습니다.
"고래잡이와 관련된 유서 깊은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Freidera'는 스페인어로 프라이팬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래를 잡아 끓여서 기름을 얻는 작업을 이곳에서 했다고 해요. 일본인들이 이곳에 머물며 그 작업을 했고 고래 지방을 끓여서 기름을 추출하는 '렌더링(Rendering 지방정제작업)을 하던 도구들도 발견되었습니다."
- 당신이 성인이 되고 난 후, 거의 절반 가까운 해를 회색고래와 지냈습니다. 고래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 당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고래를 보고 고래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살아있는 존재이며 어쩌면 인간만큼 지능적인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제 잠재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었을,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에게 행하고 있는 온갖 나쁜 일들이 의식 속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죠. 이 잔혹행위들은 그들이 우리만큼 지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깨우침이 나를 크게 바뀌게 했고 고래와 함께 일하면서 그들이 나를 더욱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 거미, 전갈은 물론 이 땅의 일부인 모두에게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 이 행성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을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들도 고래가 삶의 영속성을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 이곳에 오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 삶의 일부일 뿐입니다."
- 사람들은 왜 멀리서 고래를 보러 올까요? 그리고 그들이 고래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습니까?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나요?
▲ 지난해 10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한 연구(조슈아 스튜어트 미국 오리건주립대 해양포유류연구소 연구팀)에 따르면 북극해 환경이 달라지면서 북태평양 회색고래 개체 수가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수명이 50~60년에 달하는 회색고래는 포경규제로 개체 수가 늘어났지만 기후변화로 또 다시 감소 위기에 처한 것이다. |
ⓒ Gerardo |
"아주 열린 마음으로 보트를 탑니다. 어떤 특정한 결심을 하는 순간 매번 다른 상황에서 유연한 대응이 힘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래는 사람들에게 친절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언제나 고래를 쓰다듬을 수 있고 뽀뽀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기회가 매번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고래가 인간에게 다가오는 일은 매우 특별한 일이며 그들이 우리에게 가까이 온다면 그들이 그런 마음을 낸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래가 왜 우리에게 다가올 결심을 하는지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가까이 오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주지시켜야 합니다."
- 고래 투어에 있어서 고래와 몇 m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 않습니까?
"이곳의 규정은 선장이 고래로부터 5m 간격을 두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선장은 고래를 쫓거나 어떤 압력도 가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거리를 둔 상태에서 고래가 가까이 다가오는 경우에는 고래를 만지는 것이 허용됩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어떤 고래들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들은 한때 이 석호에서 우리의 배와 유사한 배로 사냥되었고 거의 멸종에 이를 만큼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 누구에게라도 그때의 집단적 기억이 대물림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거의 멸종시킬 뻔했던 그 존재를 왜 신뢰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그들이 우리를 용서해서인지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때때로 어미는 자신의 새끼를 들어 올려 배 가까이로 밀어주고 사람들이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회색고래는 인간이 자신의 새끼를 만지는 것을 믿고 허락하는 그 크기의 유일한 야생 동물입니다. 물론 새끼가 갓 태어났을 때 어미는 보트와 아기 사이에 위치하면서 보호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하지만 아기가 한 달 이상 자라면 배 가까이 다가가도록 격려합니다."
"올해 첫 번째 새끼 고래가 태어났어요"
- 지난 몇 년간 회색고래가 집단 폐사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미국국립해양대기청(NOAA ;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은 'UME(Unusual Mortality Event 즉각적인 주의와 조사가 필요한 심각한 해양 포유류 멸종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로 비정상적인 사망 사건을 의미)' 조치까지 발동했었습니다. 그런 일이 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까?
▲ 회색고래는 인간이 자신의 새끼를 만지는 것을 믿고 허락하는 그 크기의 유일한 야생 동물 |
ⓒ Gerardo |
- 그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새끼를 낳고 기르는 몇 개월 동안 먹지 못한 채 지내다 먹이터인 베링해로 돌아간다는 것입니까?
"회색고래는 바닥먹이생물(Bottom Feeders)입니다. 그래서 이 석호에서도 바다 밑바닥 퇴적물 속에 사는 작은 유기물들을 먹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먹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이곳 해저에는 그 고래들을 먹일 만한 충분한 양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만(Monterey Bay) 이후부터 먹기 시작해 캐나다와 알래스카 쪽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 회색고래는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회색입니까? 그리고 얼룩덜룩한 회색 피부 외에도 많은 유기체들이 붙어있더군요?
"갓 태어났을 때는 검은 피부입니다. 자라면서 피부색이 바뀝니다. 피부에는 따개비들이 붙어있습니다. 따개비는 모든 종류의 고래, 특히 느리게 움직이는 고래의 피부에 달라붙는 기생생물입니다. 회색고래는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고래이고 몸 전체, 특히 머리에 많은 따개비들이 붙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따개비가 없지만 생후 두 달 어미와 지내면서 어미의 따개비 유충이 아기에게로 붙습니다. 또한 물속에 떠다니는 따개비 유충도 있습니다."
지난 1월 13일,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 1월 6일, 마침내 이번 시즌의 첫 번째 회색고래가 이 석호로 들어왔습니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첫 번째 고래는 12월 15일과 25일 사이에 도착하곤했습니다. 더불어 며칠 전에 첫 번째 아기도 태어났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성년자도, 70대도 당했다... 삭발 나선 홍콩ELS 피해자들
- '월세 500만 원' 뉴욕에서 100달러로 이런 걸 살 수 있다
- 원작자도 분통 터뜨린 '고려거란전쟁', 또 다른 문제가 있다
- 맥주 애호가라면, 파스퇴르에게 한 번쯤은 감사 인사를!
- [사진으로 보는 일주일] 대통령 경호원은 왜 가장 먼저 '입'을 틀어막았을까
- 17년 경력단절 끝,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 야당의원 끌어냈는데... KBS 단건처리, SBS '일부소동'
- 2024 동계청소년올림픽 개막, 강릉에 피어오른 성화
- 이태원 참사 1년3개월만에...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불구속 기소
- 일 아베파 '비자금 스캔들'에 해산… 6개 파벌중 절반 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