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반 고흐가 사랑한 우키요에 화가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세계 최대의 반 고흐 미술관이 있다. 출장이든 여행이든 암스테르담을 방문한 사람들이 성지 순례하듯 찾는 핫플레이스다.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L교수는 최근 암스테르담에 학회를 갔다가 반 고흐 미술관을 관람했다.
반 고흐 미술관에서 지난해 가을부터 2024년 1월7일까지 ‘포켓몬 X 반 고흐’ 전시회가 열렸다. 게임 캐릭터를 명화와 결합시킨 세계 최초의 전시회였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캐릭터 제국. 이런 일본의 대표 캐릭터가 ‘포켓몬’이다. MZ세대는, 다른 말로 하면 포켓몬 세대다. 어려서부터 피카추, 파이리, 꼬북이, 잠만보 등의 캐릭터들과 울고 웃으며 자랐다.
‘포켓몬 X 반 고흐’ 전시회는 주최 측의 기획 의도대로 MZ세대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포켓몬의 주인공 캐릭터 피카추가 화가로 등장한 홍보영상은 미술관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좋아요’가 30만개 이상이 달렸다. MZ세대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대표작 ‘피카추 자화상’이었다. 고흐의 1887년작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이 전시회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미술관이 반 고흐와 일본 예술의 관련성을 설명하는 온라인강좌를 열었다는 점이다.
“포켓몬은 일본 대중문화의 아이콘이고, 일본 판화는 고흐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세계인문여행' 221회는 ‘일본 판화는 고흐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라는 문장에 대한 해설이다. 일본 미술에 기초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일본 판화는 고흐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는 문장에서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다.
일본 판화란 에도 시대에 크게 유행한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를 말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우키요에를 빼놓고는 서양미술사를 논(論)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학교에서 인상파에 대해 배우면서도 일본 미술의 영향 부분은 통째로 빠졌다.
에도 막부가 미국 페리 제독이 몰고 온 구로후네(黑船) 함대의 위세에 눌려 개항을 선택한 게 1854년. 일본은 선진강국을 배우기 위해 유럽과 미국에 사절단을 파견해 다양한 보고를 받는다. 일본 정부는 1867년 파리만국박람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일본관에는 주로 공예품, 도자기 등을 전시하기로 했다. 당시 일본에서 파리로 가는 뱃길은 (수에즈운하 개통 이전이라) 아프리카 희망봉을 도는 항로였다. 해상 운송 중에 혹여나 도자기, 공예품들이 손상되는 것을 막으려 종이 뭉치로 상자 안을 채웠다.
파리만국박람회 일본관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도자기와 공예품을 감싼 종이뭉치들을 풀어보고 프랑스 예술가들이 놀랐다. 종이뭉치는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였던 것이다. 프랑스 예술가들이 우키요에 감탄했다. 우키요에는 에도 막부 말기 한물간 미술 장르로 취급받았다. 그 우키요에가 파리 미술계를 사로잡다니! 이것이 서양미술과 일본미술의 공식적인 첫 랑데부였다.
일본 미술이 서양에 처음 알려진 것이 네덜란드였다는 주장도 있다. 에도 막부가 쇄국정책을 유지한 가운데도 서쪽 끝 나가사키 항을 네덜란드에 개방했고, 화란(和蘭) 상인들을 통해 우키요에가 네덜란드로 흘러 들어갔다는 설(說)이다.
어쨌든 1878년 파리만국박람회 때 일본관의 주인공은 우키요에였 다. 이 전시회는 프랑스·영국 예술가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이 충격파는 상류층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 열풍이 불어닥쳤다. 자포니즘(Japonism). 인상파 화가들이 경쟁적으로 우키요에를 수집했고, 채색목판화를 흉내 냈다. 1888년에는 ‘일본 예술’이라는 잡지가 창간돼 영어·불어·독일어판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에서 자포니즘 열풍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벨기에 안트웨르펜. 반 고흐가 우키요에를 처음 접한 곳이다. 1885년 파리로 가는 여정에서 잠깐 머문 도시 안트웨르펜에서 반 고흐는 우연히 채색 목판화를 접했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우키요에에 빠져들었다. 없는 돈에 몇 점을 사서 방에 걸어놓고 보고 또 봤다. 반 고흐는 단순한 선과 표현 방식에 매혹당했다.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 그림이 내뿜는 강력한 이미지는 서양미술에서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고흐가 동생 테오와 함께 파리에 온 것은 1886년 봄. 세계 미술의 수도 파리에는 우키요에가 넘쳐흘렀다. 파리에는 아예 우키요에 전문점까지 등장했다. 테오도 형처럼 우키요에를 좋아했다. 형제는 경쟁을 하듯 채색목판화를 수집했다. 한 점 두 점 사들이다 보니 작품의 수량이 많아졌다. 전시하고픈 욕망이 생겼다. 고흐는 자주 드나들던 탕부랭 카페 주인의 동의를 얻어 우키요에 전시회를 열었다.
반 고흐는 1886년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본미술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일본미술은 순수하고 명료하다. 그런데도 결코 단조롭거나 경박하지 않다. 나도 그렇게 그리고 싶다.”
우키요에 화가 중에 그를 매혹시킨 화가는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 北?)와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 廣重)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대표작 ‘가나가와 해변의 커다란 파도 아래’를 보자. 반 고흐는 원근법이 파괴된, 단순한 선과 구도가 빚어내는 웅장한 에너지에 넋을 잃었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게 되면 따라 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고흐가 직접 그려보기로 한 화가는 히로시게였다. 히로시게는 에도의 풍경을 100점 이상 그려 ‘에도 백경(百景)’으로 알려진 화가. 대표작이 ‘오하시(大橋)에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카메이도(龜戶) 매화정원(梅屋鋪)’ ‘간바라의 밤눈’ 등이다.
반 고흐는 히로시게의 채색판화 몇 점을 그대로 유화로 옮겼다. 원화를 응용하거나 일부분을 따온 게 아니라 아예 대놓고 완벽하게 베꼈다. 얼마나 빠져있으면 이랬을까.
‘카메이도 매화정원’을 보면 한자까지 그대로 베꼈다. 비(非)한자 문화권, 예컨대 기독교 문명권 사람에게 한자(漢字)는 그 자체로 그림이다. 하긴 한자가 상형문자에서 비롯되었으니 그림으로 인식하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삐뚤빼뚤 한자를 흉내낸 반 고흐의 지극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히로시게의 걸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교에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꼽겠다. 히로시게는 비(雨)를 주제로 한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갑작스런 비에 놀란 여행객’도 그중 하나다.
여름철 긴 다리를 건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고 상상해보자. 잠시라도 비를 그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우산이 없다면 거적때기라도 둘러써야 한다. 그것조차 없다면…. 반 고흐는 그림에서 장대비 소리를 들었고, 당황한 표정을 읽었으리라. 그대로 유화로 옮기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화가는 기본비용이 많이 드는 직업이다. 물감, 붓, 캔버스, 모델료…. 그림이 팔리면 그나마 재료비라도 건지겠지만 무명 화가의 그림을 누가 사주랴. 반 고흐가 몽마르트르에서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릴 때였다. 미술 재료상 줄리앙 탕기 영감이 가난한 화가를 좋게 보았다. 탕기 영감이 여러 가지 친절을 베풀었다. 고흐가 원하는 물감을 싼값에 주기도 했다. 그는 외롭고 배고팠던 파리 시절 자신에게 잘해준 탕기 영감을 잊지 못했다. 탕기 영감의 초상화를 두 번씩이나 그렸다는 점에서 우리는 반고흐와 탕기 영감의 관계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탕기 영감 초상화의 배경을 자세히 보자. 온통 우키요에 천지다. 그는 이 초상화를 자신의 화실에서 그렸다. 널리 알려진대로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 그림을 한 점 밖에 팔지 못했다. 반 고흐 사후 작품 대부분은 테오가 상속받았다. 반 고흐 미술관은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게르의 노력으로 태어났다. 반 고흐 미술관을 관람한 L교수는 “고흐 초기 작품들이 색이 너무 어둡고 칙칙해서 상당히 놀랐다”면서 “하지만 중후반으로 가면서 색채가 밝고 강렬해졌는데 이것이 우키요에 영향이었다는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고 말했다.
생전의 반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 모든 작품은 일본화의 기초 위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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