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믿는 아이들

김성호 2024. 1. 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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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640] <클럽 제로>

[김성호 기자]

지식의 가치가 폄훼되는 세상이다. 주머니에 든 휴대폰 하나로 삼라만상의 지식과 곧장 닿을 수 있는 세상이니 그럴 밖에 없을 테지만, 그 정도가 도를 넘을 때가 적잖다. 상식이 더는 상식이 아닌 것이 되고 무식 또한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변질된다. 지식 따윈 포털사이트 지식백과에 외주를 주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당당하게 활개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지식이 비운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있다. 지식이 흔해질수록 귀해지는 것도 있기는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혜와 같은 것이 그렇다. 표면을 보고 이면을 알고, 하나를 보고 둘을 내다보는 것이 지혜로움이다.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명함까지 나아간다.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걸 구별하며, 그로부터 더 나은 결정에 이른다.

그러나 지식이야말로 지혜의 바탕이 된다는 걸, 습득되고 체화된 지식이 지혜의 뿌리란 것에 주목하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지식이야말로 지혜로운 사고의 바탕이다. 세상 어느 지혜도 그를 받치는 지식 없이 바로 서지 않는다. 반면 지식이 부족한 지혜의 추구가 쉬이 사술이며 사이비로 연결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보게 되지 않는가.
 
▲ 클럽 제로 포스터
ⓒ 판씨네마(주)
 
지식 없는 믿음은 얼마나 해로운가

<클럽 제로>는 지식이 결여된 믿음이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 채 무엇을 안다고 믿을 때, 심지어는 제가 아는 것이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고 여길 때 어떤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한 걸음 떨어져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가 비판하는 일이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도 결코 이례적이지만은 않기에 시사점이 적지 않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로 한국에서도 지명도를 얻은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주인공 노백 선생을 맡아 연기한다. 노백은 섭식 부문에서 제법 명성을 얻은 이다. 돈 많은 이들이 진학하는 엘리트 사립학교 학부모회는 학생들의 교육적 다양성을 위하여 노백을 학교 영양교사로 고용한다. 먹는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속에서 배움을 얻으라는 취지다.

노백 교사는 그저 학생들의 식단을 짜고 급식을 준비하는 일을 제 업무로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학생들이 음식을 먹는, 즉 섭식을 하는 근본부터 바꾸려 시도한다. 그녀는 제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에게 의식적 식사법을 가르친다. 의식적 식사법이란 제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 안에 담긴 것들과 교감하며 음식을 먹는 법이다. 아무 생각 없이 당기는 대로 음식을 먹었던 학생들에겐 낯설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노백의 교습 아래 학생들은 잘게 자른 음식을 포크로 찍어 눈앞에 들고 한참을 들여다본 뒤에 입에 넣어 씹는다.
 
▲ 클럽 제로 스틸컷
ⓒ 판씨네마㈜
 
학생의 결핍을 파고드는 교사

일견 황당하고 우스꽝스런 일처럼 보이지만 노백의 수업은 진지하기 짝이 없다. 음식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가축의 생명을 부당하게 빼앗으며, 더 많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영양불균형을 초래하는 자극적 음식을 지나치게 생산한다는 측면들이 거론된다. 또한 이 같은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함으로써 인간이 병에 걸리고 주어진 수명보다 일찍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도 지목된다. 육류와 설탕, 가공식품을 갈수록 많이 섭취하도록 이끄는 소비중심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야 동의를 표할 수 있겠으나, 노백이 이끄는 길은 그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

노백은 조금씩 학생들을 변화시킨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먹는 일이었으나 다음은 적게 먹기로, 나중엔 거의 먹지 않기로 나아간다. 심지어는 아예 먹지 않는 일이 가능하다고 설파하고 학생들이 그를 선망하도록 이끌어간다.

영화 홍보문구에는 'STEP 1. 깊게 심호흡하고 눈앞의 음식에만 집중해 보세요 STEP 2. 한 번에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어보세요 STEP 3.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세요 모든 단계를 통과한 여러분을 이제 '클럽 제로'의 회원으로 임명합니다!'라는 표현이 적혀 있다.

이 단계가 곧 노백이 학생들을 이끌어가는 과정이다.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좀처럼 따를 것 같지 않은 방법이 아닌가 싶지만, 학생들의 결핍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노백의 솜씨가 그를 가능케 한다.
 
▲ 클럽 제로 스틸컷
ⓒ 판씨네마㈜
 
먹지 않고 살아가는 제로 클럽 가입하기

마침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 여럿이 노백처럼 제로클럽, 즉 아무것도 먹지 않는 그룹의 일원이 되겠다 다짐한다. 기실 무엇도 먹지 않고 삶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노백은 그와 같은 삶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심지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세상의 악의적인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퍼져나갔다고 주장한다. 노백을 신뢰하는 학생들은 이를 굳게 믿고 무엇도 먹지 않는 생활에 돌입한다.

학생들은 저마다 결점을 지녔다. 몸매에 대한 강박으로 거식증을 앓는 아이, 이혼한 엄마와 혼자 살며 고급 사립학교에 남기 위해 장학금을 놓쳐선 안 되는 아이, 학부모회를 이끄는 부모의 간섭에 지친 아이, 제게 무관심한 부모를 둔 아이까지 다양하고 있을 법한 고충을 안고 있다. 노백은 그 결점을 절묘하게 채워주며 학생들 사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제 신념이 마치 정답인양 그들에게 제시한다.

아이들의 정신을, 삶의 방식을, 신체까지를 장악하는 노백의 모습은 마치 사이비 종교며 이념화된 특정 집단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안긴다. 실제 세상에서 얼마든지 있는 세뇌와 맹신의 과정이 노백과 학생들 사이에 이뤄진다. 학생들은 더 이상 바깥의 지식을 자유롭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제가 아는 것이 충분하다고, 그것이 그대로 지혜를 이룬다고 믿는다. 마침 윤리적인 섭식이라는 주제는 제 믿음이 세상에 퍼진 방식보다 낫다고 믿기에 얼마나 수월한가 말이다.
 
▲ 클럽 제로 스틸컷
ⓒ 판씨네마㈜
 
보고 생각하고 토론하게 이끈다

얼핏 도덕적으로 보이는 사상이 인간의 자유로움을 옭아매고 그 삶을 파괴하는 과정을 영화는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각자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에 가까이 다가서 마침내 제게 저항할 수 없는 관계를 만드는 것, 나아가 보통의 대중보다 우월하다고 믿을 수 있는 사상을 공유하는 것이 사이비 종교며 이데올로기의 생성과 전파과정을 보는 듯 흥미롭다.

자극적인 외부의 사건보다 제한된 조직 내 구성원들의 변화에 주목하는 영화다. 교사와 학생, 부모가 등장하는 전부이고, 그들의 관계가 변하는 게 곧 서사가 될 뿐이다. 그로부터 정말 귀한 것에 커다란 문제가 생기기까지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부모들, 과한 요구를 받으면서도 정작 필요한 관심을 받지는 못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도 있는 작품이다. 영화가 그리고 있듯 윤리적 우월성을 가진 듯 보이는 이념 뒤에 이 같은 세뇌며 맹신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 세상이다. 그에 대한 혐오 없이 그를 이해할 단초를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클럽 제로>는 즐기는 데서 끝나는 영화는 아니다. 보고 생각하며 영화가 맺지 못한 여러 질문의 답을 추적하는 데서 그 맛을 끌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함께 보고 나누며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는 작업, 그로부터 더 많은 지식을 받아들이고 사고하는 일의 가치를 알게 하는 영화다. 이와 같은 영화가 흔치 않은 세상이기에 이 영화의 가치가 빛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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