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감옥서 180억 벌더라"…마약·도박 '대포통장' 동결 추진
전국 4000개 성인PC방을 활용해 2년간 900억원 규모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총책 A씨(40대 후반). A씨는 지난해 8월 구속돼 대구구치소에 수감된 후에도 국내 운영진과 추가 범행을 모의했다. 죄수복을 입은 채 구치소 접견과 서신을 통해 계속 사이트 운영을 지휘했고, 구속 후 3개월간 180억원에 달하는 불법 도박판돈(賭金)을 추가로 입금받았다.
이게 가능했던 건, 불법 도박 범죄에 활용된 정황이 명확함에도 수사 중 계좌 동결이 불가한 현행 제도 때문이다. 사건을 수사한 권예리 검사(대구지검 강력범죄수사부)는 “총책 A씨는 검거 이후에도 수십 개의 대포통장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최초 검거 당시 모든 불법 계좌를 동결했다면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박‧마약 대포통장, 지급정지 나선다
검찰이 온라인 불법 도박과 마약 거래에 활용된 대포통장을 수사 중 동결(지급정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부장 박영빈)는 오는 4월 총선 이후를 목표로 도박‧마약 범죄에 활용된 대포계좌를 1년 이상 동결하는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불법계좌를 수사 단계에서 즉시 정지시켜 추가 범행을 막겠다는 것이다.
현재 수사 중 불법계좌 지급정지가 가능한 건 보이스피싱 범죄에 국한된다. 2011년 제정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범죄 피해자나 수사관이 금융회사에 지급정지를 신청하면 해당 계좌는 동결된다.
그러나 도박이나 마약은 법적 근거가 없다. 수사기관이 범죄 의심 계좌로 판단해 은행에 계좌 동결을 요청하더라도 지급정지가 불가능한 건 그래서다. 이에 검찰은 관련 법률 개정 추진에 나섰고, 개정안이 도입되기 전에는 은행연합회 등 금융권과 협력해 정보를 공유하고 범죄를 차단할 수 있는 대응법을 강구할 예정이다
계좌 동결 불가 → 추가 범행으로
정지되지 않아 살아있는 계좌는 추가 범죄에 활용될 여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대구지검 강력범죄수사부가 검거한 도박사이트 사건의 경우, 총책 A씨가 구속된 후에도 수십 개의 대포 통장을 통해 불법 도박자금이 지속적으로 입금됐다. 권예리 검사는 “불법 도박이나 마약 거래는 대포 통장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범죄다. 범죄자들은 통장이 살아있는 틈을 타 범죄 수익금부터 빼돌리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도박과 마약은 갈수록 범죄가 늘어나는데,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이들 범죄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연도별 불법 도박 추정액(이용자 기준)은 2016년 70조 8934억원에서 2022년 102조 7236억원으로 68% 증가했다. 마약 범죄도 다르지 않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단속된 마약류 사범은 2만 5188명으로 전년도(1만 8395명)에 비해 6000명 이상 늘었다.
검찰‧금융권, 협력 나섰다
지급정지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검찰은 최근 실무적 움직임에 나섰다.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는 지난 12일 은행연합회와 첫 합동 회의를 열고 지급정지 제도의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참석자에 따르면 명의자의 재산권 침해나 민원 제기에 대한 우려도 일부 있었으나,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계좌주의 모든 통장을 동결하는 보이스피싱과 달리, 범죄에 활용된 특정 통장만 동결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달 중 은행연합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금융권과 본격적인 협력에 나설 방침이다. 은행을 통해 지급정지가 가능해지면 범죄수익의 몰수 및 추징이 강화되고, 추가 범죄로 이어지는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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